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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치사냥꾼 Feb 19. 2022

스티커사진은 추억을 남기고

테이 노래가 유행하던 그 때 그 시절

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서랍 깊은 곳에 스티커사진 한 장 쯤은 간직하고 있다. 그 때 그 시절 유행하던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웃음이 날 수도 있고 잊고 있던 옛사랑과의 조우에 미소가 번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이란 결국 과거의 한 때를 잡아두어 미래의 자신에게 선물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거리에 나가면 스티커사진 가게가 참 많이 보인다. 특히 10대 20대 친구들이 많이 찾는 거리라면 하나 건너 하나마다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그 말이 딱이다. 변한게 있다면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과 사진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사진과 함께 촬영영상을 모바일기기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한가지가 더, 더 이상 우스꽝스러운 가발이나 신데렐라 코스튬은 없어졌다는 거. 그리고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스티커사진은 좋아하는 사람과만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내와 나는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첫 결혼기념일을 집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무날이 지난 오늘에서야 결혼 1주년을 기념하는 데이트를 했다. 원래의 나라면 결혼기념일을, 더군다나 '첫' 결혼기념일을 허투로 보내지 않았을 텐데 이미 지나가버린 날이라 여겨서인지 특별한 데이트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좀체 생기지 않았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여서인지 아니면 INFP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생각이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맛있는 밥이나 먹으러 나가기로 했고 대신 스티커사진을 찍기로 했다. 스티커사진을 찍자는 말을 꺼냈을 때 아내는 다소 의아해했다. 아마 아내는 내가 스티커사진을 애들이나 찍는 유치한 행위로 여겨 질색할 거라고 예상했나 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스티커사진 가게를 볼 때마다 왜들 저렇게 찍는거야라고 삐둘어진 의문을 갖긴 했다. 허나 의외로 유치한 것에 이끌리는게 나라는 인간임을 아내는 알지 못했나보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고 스티커사진을 찍으러 안국역으로 향했다. 스티커사진 가게야 어딜가나 있기 마련이지만 유독 눈에 띄었던 가게가 북촌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독도서관가 계동 사이에 있는 하얀색으로 페인트칠된 스티커사진 가게인데, 도서관에 들릴 때마다 그곳에 늘 젊은 여자친구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싶었고 오늘 그 비밀을 풀고자 했다. '반타이'라는 태국음식점에서 언젠간 떠날 태국여행을 소망했고 가는 길에 아리랑 사장님을 우연히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눴고 드디어 스티커사진 가게에 도착했다. 역시나 어린 여자친구들이 줄을 서 있었다. 물론 런던베이글뮤지엄만큼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리고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그 가게에는 3가지 색상의 포토월이 있는데 그 중 하늘색 포토월이 사람들에게 인기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답은 단순하기 마련이다. 주식도 내려갈 때 사고 올라갈 때 팔듯이, 우리는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분홍색 포토월에서 찍기로 했다. 우스꽝스러운 가발은 없었지만 절대 인생에서 쓰지 않을 법한 색안경을 챙겨서 포토부스에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 놀랍게도 카드결제가 됐고 QR코드를 통해 모바일기기로 다운까지 받을 수 있었다. 오 놀라워라 그대, 기술의 발전. 총 열컷을 찍었는데 역시나 삼십대 중반 아재와 삼십대 초반 아즈마이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젊은 친구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포즈를 취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아주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어냈다. We did it!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아내와 사진을 보며 깔깔대는 와중에 문득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값비싼 백을 사준 것도 아니고 단지 5천원짜리 스티커사진을 같이 찍은거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아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나보다 나은 사람임을 또 한 번 느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미빛 미래를 위한답시고 매일밤 거실에 혼자 앉아 재테크만 공부하며 나 자신에게만 과몰입하지 않았나 싶다. 정작 아내에게 장미 한 송이 전하지도 못하는 남편이 되버리다니. 눈 앞의 행복도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이 저 멀리 행복을 챙길수나 있으랴. 장미빛 미래는 나 혼자서도 만들어 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행복이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철학자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에 나오듯, 맹목적으로 미래만을 좇으며 조급해하지 말고 그저 머무를 줄도 아는 것, 지금 그것을 상기할 때이다.



스티커사진은 좋아하는 사람과만 찍을 수 있다. 유행이 돌고 돌아도 이 사실만은 변한지 않을 것이고,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도 변한지 않을 것임을 사진 대신 글로 남기며 오늘의 밤을 마치도록 하겠다. 오늘의 사진과 이 글이 미래의 아내와 나에게 선물이 되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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