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뜯어보기> 스파오 편
최근 최고심 작가와의 콜라보로 하루 4억 매출 찍은 그 브랜드
바로 스파오!
2015년 포켓몬 고가 한창 유행일 때 포켓몬과의 콜라보를 시작으로 스파오는 매년 콜라보 프로젝트만 1~20개씩 진행하고 있다. 게다가 펭수 60억, 싹쓰리 10억, 태연 제로 10억 등 출시하는 족족 억대 행진을 이뤘다.
콜라보의 대상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 일러스트 작가, 의류 브랜드, 만화, 가수, 유튜버 등등 점점 대상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콜라보로 생산되는 상품들 또한 다양한데, 특히 파자마가 효자상품이다. 2017년 짱구 파자마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200여 종이 출시됐고 2,900만 장이 판매됐다고 한다. 물론 이외 제품들도 콜라보 대상의 특성을 정말 잘 간파해 반영한 것들로 매 출시마다 반응이 긍정적인 편이다. 이런 공격적인 행보로 '스파오=콜라보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생기기도 했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
종종 스파오를 지켜보고 소비해온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콜라보의 성공 요인은 속도와 피드백,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빠른 트렌드 캐치
빠른 의사결정
빠른 제작
스파오가 가진 세 가지 강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콜라보셀'이 가진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오에서 나오는 콜라보 제품은 콜라보셀의 손을 거치는데, 이 팀은 그들이 타깃으로 하는 2,30대로 구성되어있다. 어제 SNS에서 발견한 핫한 트렌드나 스파오와 결이 잘 맞을 것 같은 브랜드를 오늘 회의 안건으로 올리고, 협업 논의에 들어간다. 생산도 마찬가지다. 협업 제품 전담 생산 공장이 있어 샘플 확인과 생산까지 바로바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콜라보셀이 독자적인 운영권을 갖기 때문이다. 협업할 브랜드가 정해지고 상품화되기까지, 실제 발주되기까지 콜라보셀 팀장 선에서 결정이 되는 등 결재 단계를 많이 간소화했다. 실제로 제품이 판매되기까지 5개월에서 3주 정도까지 기간이 확 줄었다고 한다.(2년 전 기사 내용이었으니까 지금은 더 줄어들었을지도..)
처음에 이 소식을 듣고 정말 감탄했다. 이랜드라는 대기업에서도 이런 스타트업식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니. 회사에서 경력이 길지 않은 직원을 믿고 맡기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들이 개발한 유아 식기', '햄버거 덕후가 직접 차린 햄버거집'이 먹히듯이 MZ세대가 뭘 좋아하는지도 MZ세대 직원이 제일 잘 알 것이다. 팀원들이 소비자가 좋아할만한 브랜드를 잘 캐치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기업문화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팀이 가장 부러운 것은 대기업이기에 가능한 인지도와 생산 인프라를 팀이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제품화의 모든 단계를 거치면서 실무적으로 빠르면서도 밀도 있게 성장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도 되나? 이게 맞나?' 하는 순간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런 과정들이 적은 연차에 하기 어려운 경험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이런 브랜드는 처음 본다. 보통 내부적으로만 공유되는 시안을 전부 공개해 어떤 게 맘에 드는지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하는데, 매 번 수 만 명이 투표를 한다고 한다. 실제로 설문 내용을 보면 많게는 수 십 개의 시안을 두고 골라야 할 때도 있다.
지난 2019년 봄에 출시했던 카드캡터 체리 콜라보 제품들을 예로 보면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됐다.
2018/10/31 스파오 FGI(소수 고객 심층 인터뷰)
2018/11/17 스파오 고객 선호도 조사
2018/12/05 OST 고객 선호도 조사
2019/03/08 스파오, OST 동시 출시
출시 이후 기사 중에 '콜라보 상품 기획 당시 주얼리 상품 부재에 대한 의견이 쇄도해 추가 기획단계에서 OST와 합작했다'는 내용이 있던데, 당초 기획단에서가 아닌 소비자의 요청을 받고 그런 거라면.. 스파오는 진짜 말하면 다 해주는구나. 진정한 덕후잘알 스파오...☆★ 그 뒤로 OST는 카드캡터 체리 콜라보 상품의 반응이 좋았는지 다음 해에도 재출시, 리미티드 에디션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 놀란 점.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은 디테일 살리기다. 기생충에 나오는 물건을 굿즈로 만들기, 명탐정 코난의 범인 캐릭터 특성을 살린 옷, 퀸카로 살아남기 주인공들이 입은 옷 그대로 재현하기 등등 스파오는 정말 진심이다.. 이외에도 자수가 왼쪽이 나은지 오른쪽이 나은지, 포켓이 있는 게 나은지 없는 게 나은지 등 아주 세세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런 디테일을 발견할 때마다 조금씩 더 마음이 가는 느낌이다.
이런 형태의 고객 설문조사는 브랜드에게는 크게 수요 예측과 솔직한 의견 수렴이라는 장점이 있다. 물론 타업체에서 시안을 그대로 베껴 판매하는 등의 단점도 있다고 하나, 그걸 커버할 만큼 소비자를 찐 팬으로 만드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소비자에게는 내가 원하는 제품을 여기서 만들어준다는 만족감과 이 브랜드가 나와 진심으로 소통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콜라보 예고 때마다 소비자들은 트위터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는 설문이 시작될 때부터 실제 출시일까지 계속해서 관심 갖고 지켜본다. 나름대로 '공식 굿즈'일 테니..! 콜라보셀도 대단한 게 전국 덕후들의 마음을 드릉드릉하게 했던 해리포터와 스테디셀러가 된 짱구는 실제로 그들의 덕후였던 팀원들이 밀어붙여 진행한 것이라고 한다. 덕업 일치의 삶, 부럽습니다.
물론 콜라보 외에도 스파(SPA) 브랜드답게 합리적인 가격의 '기본 템'들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SPA : 기획·디자인·생산·제조·유통·판매 전 과정을 제조사가 맡는 의류로 패스트패션이라고도 불린다. / 탑텐, 스파오, 무신사, 자라, H&M 등) 다만 아쉬운 점은 매장 구경을 가도 손에 뭘 들고 나온 적은 없다. 아이템은 많은데 비해 항상 마감이나 재질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구매까지는 가지 않았다. 지금 주 타깃인 10,20대 외에도 30,40대까지 확장하려면,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개인적으로 퀄리티가 향상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SPA 강자였던 유니클로가 불매운동으로 인해 2020년 매출이 반토막난 후, 2021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탑텐 매출이 유니클로를 따라잡았다. 그에 반해 스파오는 몇 년째 3,000억 초반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목표 매출인 5,000억을 달성하기 위해 대표상품 출시와 자사몰 및 오프라인 매장 브랜딩 강화라는 전략을 세웠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결과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스파오는 쉴 틈 없는 콜라보로 매번 좁지만 확실한 고객군을 확보했을 것이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효과를 톡톡히 봤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도 슬슬 콜라보만 하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들어서고 있어 대표상품의 필요성이 특히나 커진 듯하다. 퀄리티와 가성비를 보완해 꾸준한 재구매를 일으킬 수 있는 상품이 나왔으면 한다.
스파오는 '굵직한 가지를 가졌지만 줄기는 얇은 나무 같은 브랜드'다.
단발적인 관심이 장기적인 팬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파오만의 시그니처가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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