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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 Nov 28. 2022

약한 영웅, 넌 잘못한 거 없어(스포 있는 과몰입 후기

감정적 위로와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하고 박지훈이 잘생긴 드라마

원작이라는 웹툰은 본 적 없고 추천으로 보게 된 작품이다. 원래 드라마나 영화를 그렇게 즐겨 보는 편은 아니라서 그냥 밥 먹을 때 볼만한 작품을 찾다가 '아 이거 재밌대'하고 튼 것이었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이제 시즌2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돼버렸다.


전반적으로 배우들 연기도 빠지는 사람 하나 없이 훌륭했고, 스토리와 캐릭터별 서사가 잘 짜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드라마를 추천받을 때 사실 아이돌 주연이라고 해서 뭐 얼마나 잘하려나 했는데 박지훈(연시은 역) 배우는 그냥 아이돌이 아니었다. 프로듀스 101 나온 워너원 멤버, 그 이상의 정보는 전혀 없었는데 작품을 보고 찾아보니 아역 배우 경력이 있다고..! 그냥 주연으로 발탁된 건 아니겠구나 싶었다.


등장인물

흐리멍덩한 광기 연시은

시은이는 첫 화부터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는데 내내 그 은은하게 도라버린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화인 8화에서 그야말로 정점을 찍었다. 애초에 인류애라고는 1도 없는 눈빛을 장착하고 있고 표정 변화조차 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감정선의 변화가 미세하게나마 느껴지는 장면이 나오면 두세 번씩 자꾸만 돌려보게 됐다. 그만큼 박지훈 배우의 눈빛에 가장 집중해서 봤다. 짙은 쌍꺼풀에 약간 처진 눈매에 정말 사람 홀릴 듯한, 사연 한사바리 가진 눈이다. (후에 인터뷰를 보고 알게 됐는데 감독님도 그 눈빛을 보고 캐스팅을 생각했다고 한다.)


시은이가 인류애가 1도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가정환경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겪어온 불화,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 경시대회 상장은 좋아해도 정작 속마음은 어떤지 헤아려준 적 없는 엄마 아빠. "시은이는 알아서 다 잘해"라는 말이 알게 모르게 옥죄어왔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저 못하는 거 많아요"라던지 "언제부터 저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어요?" 하는 말을 내뱉고 나서도 아니에요, 하고 마는 모습에서 왠지 머리가 띵했다. 


그런 시은이가 처음 웃음을 보여준 건 드라마 중반부 수호, 영이와 함께 있을 때였다. 친구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사다 주고는 은근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잘생겼다. 열 번은 돌려봤다..) 마음의 벽이 쪼금은 허물어지고 말 수도 늘어난 기점이 됐다.



관계에 서툰 오범석

같이 주연으로 나온 최현욱(안수호 역), 홍경(오범석 역) 배우도 몰입도가 장난 아니었다. 진짜 이런 친구가 있겠다 싶을 정도의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특히 범석이의 서사가 짠해서 마음이 가기도 하고, 8화 내내 가장 변화가 많았던 캐릭터였는데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시즌 1의 진짜 주인공은 시은이보다 범석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스토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드라마 내내 범석이의 심리를 직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특히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 하나가 돈으로 우정을 얻으려는 장면들이었다. 범석이는 원치 않는 부모 밑에서의 강압적인 삶, 왕따로 인한 상처와 외로움에게 지배당하며 살았던 것 같다. 멈추지 않는 괴롭힘에 전학을 왔고, 이 반에서 가장 쎄 보이는 사람과 친해져야겠다는 일종의 전략을 가지게 됐나 보다. 밥, 노래방, 쇼핑, 유흥비까지 다 내주며 관계를 이어가려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온다. 아마 나와 친구임을 인증할 수 있는 어떤 연결고리가 필요했고 돈을 낼 때마다 치켜세워주는 친구들의 반응과 일종의 우월감이 그 고리가 되어주지 않았나 싶다. 은근하게 좋아하는 범석이의 표정을 홍경 배우가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영이가 끼어들어 친구 셋의 관계를 망쳐놨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영이는 범석이가 가지지 못한 친화력으로 돈이 없는데도 더 자주 만나고 서로를 잘 아는 사이가 됐으니까.. 묘하게 범석이가 소외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꾸만 짠해졌다. 홍경 배우가 여럿 인터뷰에서 범석이를 '누구나 겪었을 법한 학창 시절의 모습'을 그려낸 캐릭터라고 설명하는데 맞는 말 같다. 친구 관계에 서툴 땐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갔을 모습이다.



아메바 같은 안수호

반면 수호는 비중이 큰 역할인데도 그만큼의 부연설명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떠올리다 보니 수호 성격상 단순한 서사가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학교에 그다지 정은 안 들지만 할머니가 졸업장은 따라고 해서 다니고, 일 외엔 잠과 밥이 가장 중요한 아주 1차원적인 캐릭터다. 그래도 의리와 정의와 '선은 넘지 말자'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 극 중 문제 해결에 가장 큰 도움들을 주기도 한다. 중간중간 개그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게 다른 캐릭터들과 확연히 다른 매력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보여줘서 삶에 굴곡이 얼마나 많았기에 저런 노련함을 갖췄을까 싶기도 했다.



치밀한 스토리와 연출

스토리를 보자면 일반적인 학교 드라마이지만 디테일적인 요소가 정말 많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학교 폭력뿐 아니라 도박과 마약에 쉽게 노출됐다는 요즘 학생들의 실상, 선생님이나 경찰이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돼주지 못하는 모습, 가출팸의 현실 등등.. 그 속에서 일진들의 괴롭힘에 오히려 정면돌파로 나서는 주연 캐릭터들이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찬찬히 쌓여가는 우정이 보기 좋았다. 특히 시은이가 싸움하기 직전 뉴턴의 제2법칙이니 뭐니 혼자 외면서 뇌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런 부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선대사 후싸움은 볼 때마다 희열이 느껴질 정도ㅎㅎ 시은이 개똑띠해..


살짝 아쉬운 점을 꼽자면, 시은이 설정이 좀 많이 사기캐인 것ㅋㅋㅋ 전교 1등에 체력은 반 꼴찌지만 현피가 체질인 캐릭터라니..! 웹툰 원작이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은 들지만, 무슨 17대 1로 싸워도 다음날 기말고사라면 등교는 잘할 것 같은 HP와 정신력을 볼 때면 살짝 몰입이 깨진 적도 있다.ㅎㅎ 몸이 약하게 태어나서 공격력을 키워서 자신을 지키려고 한 건가 생각이 들기도..



"넌 잘못한 거 없어"

드라마에서 이 대사가 세 번이나 나왔다. 석대가 영이에게, 시은이가 범석이에게, 그리고 시은이 아버지가 시은이에게.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어디선가 그 말이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을 당한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일진에게 당한 만큼 되돌려주는 사이다 액션씬에 이런 대사로 마무리하다니.. 뭔가 울림이 있는 흐름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약한 영웅 class 2

약한 영웅 class 1 마지막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캐릭터들은 class 2에 더 풀어주길 기대해본다. 영이나 전석대는 나중에 길수한테 더 붙잡히지 않고 잘 살아가는지, 이미 막장인생 살고 있는 일진들은 얼마나 더 막장이 될지, 마지막화 쿠키(?)에서 나온 문신남의 정체는 뭔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점이 너무나도 많다. 약한 영웅 시즌2 언제 나오나요? 저 이거 때문에 웨이브 결제했어요 감독님



마무리

한 회에 40분, 8화밖에 안 되는 이 짧은 드라마에 이렇게까지 과몰입했던 건 스토리나 연기력뿐 아니라 개인의 공감이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다. 몇몇 행동들이, 상황들이 언젠가 느꼈던 것들이어서 더 몰입할 수 있었고 여운을 남기게 해 주었다. 

원래 재밌게 봤던 작품도 두 번은 안 보는데, 약한 영웅은 정주행을 토요일에 한번, 일요일에 또 한 번 했다. 그리고 박지훈의 그 눈빛이 자꾸 어른거려서 유튜브에서 프로듀스 101 시절 영상과 연애혁명 클립을 찾아보고 말았다..� 큰일이다 입덕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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