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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재 VS AI 시대 인재

AI시대에 AI인재가 아니여도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을까

21대 대통령 후보로 나온 각 정당 후보들의 10대 정책 공약 가운데 문화예술 관련 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약은 커녕 정책 영역을 나누는 분류조차도 문화예술 분야는 없다. 정책 영역은 경제/산업, 조세/재정 노동/교육, 복지/연금, 행정개편, 정치/사법 교육/인재, 외교/안보, 기후/에너지, 지역 균형으로 나뉘는 정도다. 그러나 모든 정책 영역의 바탕엔 정책분야마다 갖고 있는 문화가 있다. 그 문화가 어떻냐에 따라 정책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곤 하는데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인재 육성 방향이 AI인재라고 툭 던진다. 과연 AI인재라는 것은 무엇일까?

AI에게 AI인재를 정의해 달라고 물어봤다. 이렇게 답해준다. AI인재란 알고리즘 개발 및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가이며 데이터 분석가와 소프트웨어 개발 인재까지 포함한다고 말한다.

또 AI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전교생 AI 교육을 의무화하고 생성형 AI의 윤리적 활용방안을 교육과정에 통합해 사회적 책임을 함양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전 국민 모두 AI인재가 될 필요가 있을까?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다만 AI 시대에 소외되지 않고 스스로 주도적으로 살아 나가기 위해 AI란 도구를 잘 다뤄야 한다. AI에겐 없는 비전과 철학, 그리고 사람의 됨됨이를 갖춰 AI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인재는 AI 기술 인재뿐만이 아니라 AI에게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소통과 협업을 잘하는 연대와 협력의 인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동시대에선 AI 의무 교육뿐 아니라 AI 교육이 아닌 분야의 교육, 특히 사람의 마음 근력을 튼튼하게 키우는 영역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2019년에 개정된 우리나라 국가 보육과정에서 보육 목표를 인지교육은 기본이고 비인지교육 영역을 강화했다. 교육 목표 또한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감성이 풍부한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았다.

인지 영역은 AI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비인지 영역인 자율성, 감성, 공감 능력, 협업 능력, 감정조절 등은 AI로는 대체 불가하다. 그만큼 비인지적인 역량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더 커졌다.

일부에선 다행히 어린 시절부터 비인지 영역의 교육과정을 설계하여 적용 중이지만

비인지 영역의 교육과정이 중요하다는 대중적 인식과 교육계의 관심이 부족하다.

비인지교육 분야의 중요한 덕목인 감성이나 공감능력, 감정 조절능력, 소통이나 협업 역량을 위해선 다양한 예술활동이 요구된다. 예술을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가 사회 전 분야에서 무르익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술 중심의 AI인재만 강조하고 있다.

AI시대에 AI인재가 아니여도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한편, 문화예술분야에서 발표된 내용을 보면 ‘문화강국’을 외친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강대국인만큼 K콘텐츠를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문화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봉준호감독의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까지 우린 이미 문화강국이라는 존재감을 획득했다. 기쁘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난 문화정책으로 문화강국 어쩌구 라거나 문화경쟁력이란 표현이 왜 그렇게 공허하고 불편하게 느껴질까?

그 이유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양정욱 작가가 인터뷰에서

“주목되는 것들에만 치중되다 보니 문화다양성이란 말이 필요한 시대가 된 거 같습니다

낮고 작고 잘 안보이는 것들의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이 소중합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는 크고, 높고, 넓고 강하고 좋은 것 뿐 만 아니라 작고 낮고 좁고 약한 것까지 모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아주 아주 오래전, 남종화의 대가인 의제 허백련 선생이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압축성장을 몰아붙이던 과거가 아닌 저성장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문화강대국을 외치는 것은 철 지난 감이 있다. 지금 같은 시대엔 대단하진 않더라도 지속 가능하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길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문화가 중요하다. 세계 시장을 선점하는 산업적 도약이 중요한 만큼 이제는 내 삶의 문화, 내 일상의 문화, 내 일터의 문화, 내 동네의 문화 등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정책이 요구된다.


문화는 다양하고 포용적이다. 캐나다는 다문화주의 정책 및 퀘벡문화통합법, 문화포용성 교육을 펼치고 있고, 인도는 ‘다양성 속의 통합’ (Unity in Diversity)을 강조하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 공화국은 ‘문화적 모자이크’라는 정책을 통해 차별금지법, 평등권 보장, 사회정의정책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21대 대통령 선거를 치루게 만든 12.3 계엄의 배경에는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는 오만, 다양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것만 옳고 자기 사람만 쓰는 독선, 편 가르기와 혐오를 조장하는 문화, 소통하지 못하고 불통으로 남아있는 문화가 숨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는 문화부터 바꿀 수 있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온 나라의 행정, 사법 전 부처에 민주주의가 작동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이 우선이다. 정치 민주화에 이어 경제민주화, 그리고 모두를 위한다는 문화민주화, 모두가 주체가 되어 참여하는 문화 민주주의가 말뿐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문화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문화화로 내재화하는 것이야말로 지난겨울, 광장에서 깃발과 응원봉으로, 또 거리의 키세스가 되어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에 대한 예의가 될 것이다.

기술강국은 불편하지 않은데 문화강국은 불편하다. 문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산업, 경제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화도 경쟁력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사람, 생활, 역사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문화는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할 자산이다.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지켜나간다. 우리나라는 이미 국가적으로 문화강국이다.

반면 개개인의 문화 자존감은 썩 높지 않다. 이제 21대 정부에선 문화강국을 넘어 문화포용국, 문화존중국, 문화다양국이 대세가 되기를 바란다. 개개인이 누구나 저마다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고 스스로 사랑하며 굳이 강하지 않아도, 강한 척하지 않아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진짜 대한민국, AI와 함께 ARTS도 필수교육이 되는 진짜 대한민국을 꿈 꿔 본다.



* 나 또한 AI의 힘을 빌어 검색하여 얻은 내용을 일부 활용하였으며 본 원고는 월간 춤지 6월에 실립니다

* 글을 쓸 당시 공약집이 나오기 전인 상태로 써서 실제 문화예술 공약 부분이 있는 것과 상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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