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환경에서 철은 다양한 용도와 방법으로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원전부터 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철의 사용으로 사냥도 하게 되었고, 식사도 도구를 쓰게 되었으니 인류와 금속의 상생 역사는 매우 길다. 현대 도시에서 철 혹은 금속을 접할 수 있는 곳은 다리와 같은 토목구조물의 도장되어 있는 철강재, 건축 현장의 철골건축물 H빔 또는 철근콘크리트구조의 철근, 난간이나 마감재 등의 금속이 있다.
일반인들과 달리 건축인 들이 유난히 열광하는 장면이 있는데, 건축사로서 건축설계를 하고 공사감리를 위해서 현장에 갔을 때 콘크리트 타설 전 철근이 오와 열을 맞추어 가지런하게 배근되어 있는 전경이다. 공장에서 막 생산되어 깨끗한 상태인 철근이 도면대로 정확하게 배근되어 있는 상태는 그대로 건축적 상상을 하게 하기도 하고, 유행하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곧 콘크리트 속에 묻혀 사라질 찰나의 장면이자 집의 성능과 구조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오와 열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어쩌면, 이 보이지 않는 철근들은 건축이나 토목 현장에서 금속으로써 가장 근본적이고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고 자신의 존재는 콘크리트 속에 숨겨버리는 특수요원이다.
지금은 철근콘크리트를 주요 구조로 하는 건축물이 매우 흔하지만,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의 건축물에서 철근콘크리트의 비중이 높지 않았다. 철근생산량은 매우 부족했고, 이형철근보다 원형철근이 일반화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RC로 집을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지난 시간 속에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건축된 서울 중구 남산동에 ‘아파-트’로 불리었던 3층 건축물을 보면 주요 구조부인 수직벽체는 벽돌이고 슬래브만 철근콘크리트인 최소한으로 RC를 적용한 건축물이다. 이 아파트는 남산동에 현존하고 있어 지금도 가볼 수 있지만, 외벽이 외단열미장마감으로 덧붙여져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벽돌이 철근콘크리트보다 저렴하여 건축물이 벽돌조(조적조)를 주요 구조로 지어졌는데,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최근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 대다수 저층 주거지에서 볼 수 있는 1990년대 준공된 ‘빨간 벽돌집’들이 그 증거다. 90년 산 ‘빨간 벽돌집’들은 벽체는 벽돌인 벽식 구조이며, 남산동 ‘아파-트’처럼 슬래브는 철근콘크리트이다. 당시에는 슬래브와 같은 수평재는 온돌 마감도 해야 하는 한국 건축의 특징 상 하중을 부담할 적당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철근콘크리트로 만들고, 벽의 경우는 구조벽인 경우에도 철근콘크리트보다 벽돌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저렴했기 때문에 통상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30년 산 남산동 ‘아파-트’ 이후 90년 산 건축물까지 이러한 공법이 이어져 왔다.
현재 살며 일하고 있는 공간이 90년 산 ‘빨간 벽돌집’을 리모델링한 곳이어서 당시의 하이브리드 공법을 매일 적나라하게 보고 있다. 이 건축물의 수직재는 붉은 외장벽돌 0.5B + 비드법단열재 60T + 시멘트벽돌 0.5B로 되어 있고 수평구조인 철근콘크리트슬래브는 두께 120mm의 철근 D13 @300 간격으로 배근되어 있다. 90년대와 달리 현재는 벽돌 작업자의 노임단가가 오르고 숙련된 작업자들을 찾기도 어려워 수직 내력벽을 과거와 같이 벽돌로 쌓는 것보다는 철근콘크리트로 벽체와 슬래브를 일체타설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공사방법이 되었다.
국토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3년 준공된 건축물 중에서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이 70%를 넘을 정도로 철근콘크리트조 건축물이 일반화되었다. 155층 롯데월드타워가 일부 HD51 철근으로 시공되거나 초고층 아파트도 전체 구조를 철근콘크리트로 시공하는 등 고도의 기술력과 원활한 자재 수급으로 철근콘크리트조 건축물이 경쟁력을 가지고 건축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포항지진은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의 철근배근 조건에 큰 변화를 촉발했다. 1996년 이후 소규모 주거건축물의 주차장법이 강화되면서 1층 전체를 필로티 주차장으로 건축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포항지진에서 특히 이와 같은 필로티 건축물의 기둥이 파손되는 피해사례가 상당히 발생했다. 이에 따라 필로티 소규모 건축물의 내진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둥과 전이보의 철근 배근지침을 강화했고, 스트럽의 135도 갈고리 정착을 의무화하였다. 더욱이 철근배근의 시공이 정확하게 이뤄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건축공사감리자에 더하여 구조감리자 선임까지 추가하였고, 감리자는 구조전이 기둥, 보 배근을 확인하고 동영상 촬영 및 중간보고까지 하여야 하며, 이러한 절차와 감독으로 지진으로 인한 건축물의 안전성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건축공사의 특수요원 철근의 특임은 이러하다. 이제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일반적인 공법이 되면서 우리 도시 대부분의 건축물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 여름 숲의 울창한 나무들의 땅 밑에 밀실 하게 자라난 뿌리들이 나무와 숲을 튼튼하게 하듯, 철근은 대다수의 건축물들의 다채로운 마감재 속에서 굳건히 자리하며 건축물을 지지하고 있다. 안전을 위하여 철근 배근이 강화되고 철근 단가가 올라가면서 이로 인한 공사비 상승을 야기하고 있어 최근 목구조 등 다른 구조체의 필요와 활용이 대두되고 있다. 그럼에도 철근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지지해 주는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사 중 찰나 등장 후 사라져 철거 이전 까지는 존재를 보이지 않아야 하는 우리의 특수요원 철근의 역사를 이야기해 본다.
<KCC 웹진 2024.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