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야생 정글 속으로 지프를 타고 들어서면 수만마리의 얼룩말과 누우 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TV 동물의 왕국에서 늘 보던 바로 그 장면입니다.
*탄자니아/케냐 직접촬영
그런데 처음에는 함께 야생 속으로 들어간 여행자들은 모두 엄청난 규모의 동물들에 깜짝 놀라며 환호성을 지르지만,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육식 동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매우 조용해집니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너무 많은 얼룩말과 누우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금새 신기함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가끔 지프에서 내려 걸어서 동물들 가까이 가볼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이 때 한명은 반드시 망을 보게 하여 혹시 사자나 치타가 인간을 먹이로 착각하고 뛰어오면 알려주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런 절차가 더욱 야생의 현장 속에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탄자니아/케냐 직접촬영
그렇게 야생의 잔디 땅에 첫 발을 딛고 내려서면, 수많은 얼룩말들은 내가 차에서 내린 것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말은 포유류 중 눈이 가장 크고 시야는 350도다) 모른 척 하며 유유히 하던 대로 풀을 뜯고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이미 너무 많이 본 얼룩말이기에 사진 몇 장 찍는 데 그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꼭 한번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말에게 다가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승마를 좋아해서 일반인보다는 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고 있는 말은 모두 순치된 말입니다. (순치된 말은 인간이 탈 수 있도록 수 개월 간 ‘길들이기’를 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말들은 모두 야생마들입니다. 현지 가이드에게 내가 만져보고 싶다고 했더니 시도해 보라고 합니다. 다만 뒷발차기에 맞으면 즉사하니 뒤로 접근하지는 말라고 경고를 합니다. 이건 승용마도 같습니다. 말은 엉덩이 쪽을 제외하고는 다 눈으로 보이기에, 엉덩이 쪽에서 접근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탄자니아/케냐 직접촬영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제가 실제 다가간 말은 위 사진에서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말입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다시한번 말하지만 말의 시야각은 350도다) 무심한 척 풀을 뜯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한걸음 씩 다가가는데 말은 그대로 풀을 뜯고 있습니다.
더 가까이 가봅니다.
아무래도 나한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한걸음을 다시 옮깁니다.
그런데 순간 말이 한 걸음을 물러납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풀을 뜯습니다.
“뭐지? 그냥 저쪽 풀을 뜯으려는 건가?”
나는 다시 한 걸음 가까이 옮겨봅니다.
말은 다시 딱 그만큼 물러섭니다.
우연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이번에는 두 걸음을 가까이 가봅니다.
말은 역시 딱 두 걸음만큼 멀어집니다.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말은 자신의 영역을 보이지 않는 원으로 그려놓고, 그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경계는 하되 방어행동은 하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오면 딱 그만큼 물러나서 다시 그 원에 침범되는 것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생의 세계입니다.
더 다가가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가이드를 돌아보니 씩 웃습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뜻일까요.
그래서 내가 만져보겠다고 할 때 가이드가 ‘만져보라’가 아니라 ‘시도해보라(try)’ 라고 했었나 봅니다.
순치된 말에서는 알 수 없는, 야생의 말에서만 있는 이 특징.
이 일을 겪고 오랜 시간 이 경험이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탄자니아/케냐 직접촬영
말의 순치는 시각적 둔감화, 청각적 둔감화, 순응성, 자극민감도 저하 등을 기본으로 하여 조련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사회에 순치되고, 조직에 순치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 사회에, 그리고 어떤 조직에, 이렇게 나의 영역을 잃고 순치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분명 ‘사회화’와는 다르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억지로 순치되지 않고 자주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영역, 나의 경계를 잘 알고 지켜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