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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ub Feb 05. 2022

응급실에서의 어떤 하루

나의 평범한 하루는 누군가의 인생이었다

응급실에 근무하다 보면 수많은 환자들을 만난다.


지금은 소아환자만 진료하는 소아과 의사지만

인턴 시절을 돌이켜보면 성인 응급실에 근무했을 때만큼 긴장되고 흥미진진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역시 성인은 소아에 비해 살아온 인생이 긴 만큼 각자의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마치 응급실이 여러 사람의 인생을 모여있는 소설책과 같은 느낌이랄까?


열이 나거나 배가 아파 내원한 B구역의 흔한 환자들.

부딪치고 넘어져서, 싸우다가 찢어지고 다쳐서 온 C구역의 환자들.

자살 충동으로 손목을 긋고 몇 달째 계속 응급실을 찾고 있 낯익은 환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A구역의 환자들.

수많은 환자들이 다 중하고 급박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밤샘 근무가 끝나갈 이른 새벽 무렵.

분주하던 응급실에 잠시나마 평온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요함은 대개 오래가지 않는다.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랄까?

평온보다는 긴장감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시간이다.


이른 새벽 시간에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생각보다 중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밤새 참고 버티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내원을 하거나

뒤늦게 발견되어 적절한 시간에 필요한 처치를 못 받은 경우,

밤새 술을 마신 후 인사불성의 무방비 상태에서 다치게 되어 꽤 심각한 외상으로 내원하는 환자들도 있다.


그날도 새벽의 고요함을 깨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심정지 환자를 이송 중이라는 119의 연락에 소생실을 준비하는 의료진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외상으로 인한 새벽의 심정지 환자.

왠지 예후가 좋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윽고 CPR(심폐소생술)을 하며 도착한 환자는 바로 A구역의 소생실로 향했다.

환경미화원 옷차림의 그는 얼핏 보았을 때 40~50대의 중년 남성으로 보였다.

여기저기 찢긴 옷처럼 만신창이가 된 환자의 몸은 창백했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119 대원의 손을 넘겨받은 인턴들은 가슴압박시작했고 간호사들은 심전도 붙이고 라인을 잡으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러한 어수선함 속에 매 2분마다 돌아오는 심전도 리듬 체크 때만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하나, 둘, 셋, 넷..."

"리듬 확인!"

(정적)

"Asystole(맥박 없음). Chest compression(가슴압박)"


119 구급대원에 이어 경찰들도 속속 도착했다.

사고 경위에 대해 파악을 하고, 가족에 연락이 닿았다. 

가족이 도착해서 소생실 밖에서 기다리는 30여분 동안 그의 심장은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응급실 전문의가 보호자에게 소생 가능성이 없음을 알리CPR 중단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하지만 가족의 죽음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해달라고 울부짖는 가족 앞에서 CPR을 조금 더 진행해보지만 결국 그의 심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OOO환자, 2017년 6월 3일 새벽 5시 반. 사망했습니다."


환경미화원이었던 그는 이른 새벽 오토바이로 출근하던 길에 뺑소니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나이 50대 중반의 가장이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 남편과의 마지막 인사가 된 아내가 주검이 된 남편을 마주하고 터뜨린 울음이 한동안 응급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의 당직은 끝이 났다.

그날 응급실에선

나의 평범한 하루가 끝이 났고

누군가에겐 인생이 끝이 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인생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가장 슬픈 건

지금 이 시간에도 응급실에서는 이런 하루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2017.6월의 어느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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