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dub Mar 06. 2022

인생의 선택, 그리고 내려놓음

할까 말까 싶을 땐 하라고 했건만...

제 나이 서른아홉. 내년이면 마흔이 됩니다.

20대 대학 시절부터 30대의 나이는 곧 아저씨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미 30대의 끝무렵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20대의 마음이 그대로인 것은 주책이겠지요?


조금 어린 친구들과 함께 지내 온 탓에

제 나이에 대한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겠습니다.


전 대학생 이후에는 모든 것이 늦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지만 3년 차의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120명 동기 중 위에서 세 번째 되는 나이였죠.

졸업을 하고 인턴/레지던트 생활을 했지만 시작이 늦었으니 그 뒤로는 더 늦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감사하게도 의대에서 흔하다는 유급 없이 전공의 생활까지 달려왔지만 올해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니 나이가 서른아홉이 되었습니다.

웬만한 막내 교수님들은 저보다 나이가 어릴 정도니까요.

물론 나이를 허투루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지요.


어찌 됐든 제 나이면 사회에서 과장급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된 생활을 하기 마련입니다.

저의 뒤늦은 인생계획 변경으로 제겐 9년이라는(의대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긴 준비기간이 끝나고 이제 뭔가를 시작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만, 의사에게는 이게 끝이 아닙니다.

바로 fellow(펠로우)라고 하는 '강사' 과정이 남았거든요.

물론 필수는 아닙니다.

나름 전문의 자격을 딴 만큼 흔히 local이라고 부르는 동네 병원에 바로 봉직의로 취직을 할 수도 있고

본인 뜻하는 바에 따라 다양한 진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펠로우는 뭐하는 사람이고 왜 하는 걸까요?

쉽게 말하면,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나 staff(교수) 밑에서 연구도 하고 전공의들을 지도하면서 세부 전문 분야에 대한 공부를 추가로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전문성은 인정해주지만 아직은 더 공부와 경험을 쌓는 자리인 거죠.

그리고, 대개는 staff으로 큰 병원에 남고 싶은 사람들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애초에 이런 과정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했거든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병원마다, 과마다 다르지만 '펠노예'라고 부를 정도의 척박한 근무 환경 때문이랄까요?

새벽같이 나와 환자를 보고, 주말도 나오고, 요즘엔 당직도 가끔 서고, 온콜(on call)이라고 해서 언제든 필요하면 나와야 하는 대기조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급여는 전공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1~2년이라고는 하지만, 인생에서 1~2년은 결코 짧지 않죠.

특히, 저처럼 나이 많고 흑수저에 처자식을 먹여 설려야 하는 가장에게는 참으로 고민할법한 과정입니다.


어쨌든 제게 이러한 펠로우의 삶은 계획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의 생활화가 소아과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요.

참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감기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덕분에 소아청소년과의 위기(?)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때마침 저에게도 예정에 없던 펠로우 자리가 눈에 들어왔지요

'어차피 밖에 자리도 없는데 펠로우나 해볼까?'

'이번 기회에 잘만 되면 staff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잘못된 첫걸음이었습니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1~2월 내내 시험공부 이외 제 머릿속을 차지했던 대부분은 펠로우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스스로 다짐해봐도,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대학, 취업, 대학원 등등 모두 '마음' 가는 대로 해왔던 제게 이 길은 '머리'로 결정한 것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용기가 없어서였습니다.

그만두겠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을 하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 행복할까?'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확신 없었던 적이 있었을까?'

어떤 물음에도 yes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민은 수개월이었지만 마음의 결정은 수 분이면 충분했습니다.

다만, 이후의 후폭풍은 온전히 제 몫이었죠.


담당 과에 펠로우 지원 의사를 철회하고

각 교수님한테 일일이 전화드려 죄송함을 전하고

여러 가지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하게 되었으며

같이 펠로우를 할 예정이었던 친구에게는 큰 부담을 주게 되었죠.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지만 제 인생을 위해 조금 이기적인 결정을 했습니다.

조금 더 결정이 빨랐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요.

물론, '인생에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생각으로 패기 있게 회사를 때려치우고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시작하던 때의 마음가짐이 많은 용기가 되었습니다.

전 항상 한 발 늦은 인생을 살아왔으니까요.

그리고 선배 펠로우 한 분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이런 결정을 했지만

아직은 남은 인생이 조금은 두렵긴 합니다.

전문직이라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저는 이제 갓 훈련을 마치고 야생에 남겨진 동물과 같으니까요.

단, 3명의 처자식이 딸린 가장으로서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확실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일요일인 내일 새벽같이 출근할 필요도 없고

온콜로 매일 어떤 전화가 올까 하는 두려움에 떨 필요도 없고

이렇게 깊은 새벽에 잠 안 자고 글을 쓸 수도 있고

적어도 처자식을 먹여 살릴 월급은 전공의 때보다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끝까지 '포기할 여유'가 없었다면 중도하차하거나 스트레스에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랬지요?

갈까 말까 싶을 땐, 할까 말까 싶을 땐 그냥 하라고.

그게 조금 더 안전하고 미래를 대비한 선택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까 말까 싶을 때 안 하면 안 될까요?

10년 뒤에 저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가 아픈데 어느 과를 가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