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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dub Apr 08. 2022

소아과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며

전공의,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흔히 보는 의학드라마에는 다양한 모습의 의사들이 등장합니다.

위엄 있게 다른 의사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의사,

중환이 왔을 때 먼저 나타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사,

여기저기 치이면서 추리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의사.

후자 2명과 같은 사람들이 대개 전공의라고 보면 됩니다.

(출처 : 종합병원2, MBC)

전공의는 인턴 및 레지던트 과정을 수련 중인 의사들을 의미합니다.

둘의 차이는 특정 과에 소속이 되어 있는지 여부이지요.

인턴은 소속이 없이 다양한 과들을 1년  돌아보며 수련을 받고 그 과정이 끝나면 자신이 원하는 과에 지원하여 레지던트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의대(예과 2년, 본과 4년) > 인턴(1년) > 레지던트(3~4년)

의사가 되는 과정에 대해 안다면 조금 이해가 쉬운데요,

의대 졸업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일단 의사가 됩니다. 

그리고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비로소 해당 과의 전문의가 되지요. 

즉,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이라고 하는 대학병원 등에서 약 4~5년 간 전공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한 번쯤 들어보셨겠지만 전공의 생활은 참으로 고됩니다.

가장 힘든 것은 근무 강도입니다.

근로자의 근무시간 주 52시간 이야기로 한창 떠들썩할 때도 전공의는 이 법에서 예외였습니다.

불과 몇 년 전부터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하기 시작했으나 그마저도 예외조항까지 들먹이며 꾸역꾸역 88시간을 채우는 것이 현실이지요.

근무시간은 보통 7am~6pm 정도지만 그전에 미리 환자 상태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대개 1~2시간은 일찍 출근을 합니다.

근무시간이 끝나도 환자 인계를 하다 보면 1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그마저도 중환이 있다면 퇴근시간은 기약이 없습니다.

2017년 인턴 당시 첫 당직을 서면서. 5년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사실 전공의에게는 당직이라는 것이 주 2~3회씩 있는데 어느 회사든 숙직이든 당직이든 서게 되면 다음 날은 쉬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전공의에게는 가차 없습니다.

당직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날의 낮 근무가 시작되죠.

그렇게 약 36시간의 근무가 끝나야지만 퇴근을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회사생활까지 하다 온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근무형태이지만, 충분하지 않은 인력으로 인해 이 시스템은 불가피한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최근 1~2년 간은 출퇴근 시간 보장과 당직 횟수 감소 등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긴 합니다.


그럼 전공의들 월급은 어느 정도일까요?

그래도 의사이고, 근무시간만 보면 엄청난 돈을 벌 것 같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출처 : '전공의 평균 급여 370.9만원…', 메디칼타임즈, 2019)

빅 5라고 하는 대형병원의 평균 급여는 저 정도입니다.

저 병원 중 한 곳에 근무했던 제 경험상 현재는 40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적지는 않지만 시급으로 따진다면 최저시급 정도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공의는 노동자이기 전에 수련의 과정에 있는 인력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공의들의 하루 일과는 어떨까요?

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시절을 기준으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6am~7am 출근 및 입원환자 파악

7am~8am 프리 회진(전공의가 미리 회진을 돌며 환자상태 파악)

8am~10am 회진

10am~12pm 회진 정리 및 처방

12pm~2pm 점심 및 휴식

2pm~3pm 오후 회진 준비

3pm~5pm 오후 회진 및 정리, 신환 처방

5pm~6pm 환자 인계


사실 저 일과 에도

외래 환자 진료, 응급실 환자 진료, 각종 컨퍼런스 등 전공의의 업무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물론 연차마다 업무의 범위와 양은 차이가 있고, 연차가 올라갈수록 상대적으로 로딩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죠.

일과 시간에도 바쁜 하루를 보내지만 당직이 있는 날엔 잠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합니다.

낮에 보던 환자의 3~4배가량을 혼자 맡아서 보고 중간에 응급실 호출이라도 오게 되면 1~2시간은 금세 지나가죠.

그러다 크리티컬 타임(critical time)이라고 하는 새벽 3~4시경 중환이라도 생기면 그날 잠은 다  겁니다.

일을 다 처리하고 나면 어느새 오전 회진을 준비할 시간이니까요.


그렇게 5년이 흘러갑니다.

이 시간이 끝나갈 때쯤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오전 6시면 눈이 떠지고 집보다 병원이 편해진 나를 보기 되지요.

전공의 5년이 끝나면 펼쳐지는 전문의의 세계는 또 다릅니다.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받는 대신 스스로의 커리어를 개척해 나가야 하죠.

마치 야생의 세계에 들어선 것과 같다고 할까요?


어쨌든,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힘들었지만 후회했던 적은 없습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만큼 중환도 많이 만나고 소아청소년과 특성상 사연 있는 아이들과 보호자도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너무나 일찍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들도 많이 있지요.

본인이 맡았던 환자가 나중에 expire(사망)했다는 소식을 동료로부터 듣고 충격을 받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평생 몇 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죽음을 너무나 많이 접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 오는 것이 너무 익숙하고

그렇게 싫어하는 주사 맞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아이들과 그런 아이를 케어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일상인 보호자들.

평생을 침대에 누워 보호자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들과 자신의 시간과 체력, 어쩌면 인생을 온전히 아이에게만 바치고 있는 보호자들.

그들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해 준 그 아이들과 엄마 아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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