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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섬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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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Jul 20. 2020

불 꺼진 섬, 오후 7시.

섬, 살다.

섬속의 섬, 오후 7시면 가게들이 거의 다 문을 닫는 이 곳 우도로 온지도 벌써 삼주. 섬 사람들은 제각기 하루를 마무리한다. 서울에서는 집 가는 버스를 타는 게 10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나는 저녁 6시면 밥을 먹고, 오늘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책을 읽는다. 매일 매일 딸에게 전화를 하던 엄마도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다. 아홉시 반에 잠이 들고 7시에 일어나는 내가 신기하다.



우도에 오게 된건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퇴사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급하게 우도의 카페에 취업하게 되었다. 자취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막내딸이 2주 후부터 나가 산다고 하니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빠는 대수롭지 않은 척 일하는 곳 정보를 계속해서 묻는다. 하지만 이 중 제일 얼떨떨한 건 나였다. 전 직장에서 매일이 너무 힘들었던지라, 마음 한 켠에 제주를 품고 지원할 때 까지만 해도 진짜 될 거란 생각은 없었다. 얄궂게도 퇴사를 하자마자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남은 날들이 별로 없어서 바쁘게 친구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의 염려와 기대, 부러움을 한 몸에 안고 홀로 제주에 도착했다.


혼자 여행을 하는 건 그닥 어색하지 않았다. 어색한 건 지금까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커다란 캐리어 뿐이었다. 아침부터 갑작스러운 풍랑주의보로 우도 도항선이 뜨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행기 시간을 바꿔야 하는지 숙소를 잡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추천받은 게스트 하우스 정보를 알아보던 중, 12시부터 또 배가 뜬다는 소식에 바쁘게 뒤로가기를 눌렀다. 날씨만큼 오락가락한 시작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성산항에서 배를 타니 드디어 우도로 들어간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 저녁 6시에 배를 타는데 타는 사람은 셋 뿐이었다. 작년 친구들과 여행을 갈때만 해도 꽉 차있던 대합실이 텅텅 비어 있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디어, 우도!


우도에 도착하니 이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버스는 모두 끊긴 상태였다. 이 곳은 택시도 다니지 않으니, 지도가 있으면 뭐하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항구에서 두리번거리는 나를 본 주민분이 선뜻 숙소가 어딘지 물어보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강한 사투리 억양에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여러 번 되묻는 서울 촌년, 그게 나였다. 힘겹게 소통한 결과, 일하기로 한 곳에서 픽업을 오지 않는다면 트럭으로 태워다 주시겠다는 감사한 제안이었다. 그제서야 머리가 좀 돌아가는 듯 해서 급하게 카페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친절한 말투의 사장님께서 항구로 데리러 오신다고 한다. 아, 다행이다. 숨을 돌리고 주민 분께 감사인사를 했다. 이게 바로 시골 인심인가? 서울 사람같은 생각을 하면서 캐리어를 드륵드륵 끈다.


도착한 기숙사 근처엔 편의점 말고 연 가게가 몇 없다. 누가봐도 관광객 같은 모양새로 어정쩡하게 라면 하나를 주문한다. 정말 섬 속에 왔다는 걸 그제서야 피부로 느낀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홀로 걸어가며 오후 7시, 이 작은 섬이 고요하게 잠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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