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하는 산책 육아
나는 육아를 쉽게 하는 편이다. 몸은 부지런히 놀리는 편이나 정신만큼은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육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쉽게 한다고 생각한다.
내 가치관에 맞는 육아 원칙을 소신껏 몇 가지만 크게 정해놓고 그 안에서는 얼기 설기 자유롭게 그물이 이어지도록 내버려두는 편이다.
예를 들면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방식을 할 수있는 만큼 지켜나간다.' 라거나 '큰 욕심을 강요하기 보다는 매일 작은 것을 꾸준히 반복하기', 혹은 '아이들은 빈 공간과 빈 시간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스스로 채워가며 깨치고 자란다.' 처럼 아이들을 9년간 키워나가며 내가 깨달은 것들과 원하는 방향으로의 육아를 뚝심있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쉬운 육아 방법 중 하나는, 원하는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안으로 아이들을 그저 데려가는 것이다.
마음이 느긋한 아이로 자라게끔 도와주고 싶다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공간으로 아이들을 데려가면 된다.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눈 맞출 줄 아는 아이이길 바란다면 큰 자극이 없고 고요한 공간으로 데려가주면 어떨까?
책을 좋아하길 바란다면 손잡고 도서관에 자주 가는 것이 좋겠고
스스로 탐색하고 발견하는 창의성을 바란다면 답이 정해진 활동을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좋지 않을 것이다.
첫째 아이가 돌쟁이일 무렵, 어느 여름 지리산자락 작은 마을을 여행할 때였다. 사방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쌓인 가운데 마을엔 밭과 논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풍광을 마주하고 선 그 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평생 이런 마을에서 내내 이런 풍경을 보고 자란 아이와, 서울 한복판 빌딩 숲을 보고 자란 아이는 과연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상상할 때 과연 어떤 감수성의 차이를 갖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한 후에도 물론 우리는 한동안 도심 한복판에 살아야 했지만 주말 나들이는 쇼핑몰보다는 동네 공원으로, 화려한 키즈카페보다는 뒷산을, 놀이공원보다는 도서관을 더 자주 찾아 다녔다.
지금도 바쁘지 않은 주말엔 아이들과 함께 1일 1산책을 꼭 한다. 그저 가까운 동네 여기저기를 걷거나 때로는 차를 타고 근교 바닷가나 예쁘게 가꿔진 정원을 찾기도 한다. 일상의 잡음들로 시끄러운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는 그 시간이 좋다. 가족간 서로에게 집중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이 좋다. 걷고 눈을 맞추는 그 시간이 좋다. 세상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를 함께 듣고 풍경안에 스르르 젖어드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아이들이 커가며 더 큰 자극에 노출되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산책을 시시하게 생각하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나는 이 가족 취미를 지켜나가려 한다. 걷는 게 지겨운 9세 아들은 자전거를 태워서 데려 나가는 등 다른 방법을 또 찾아가며 독려하고 있다. 뭐 언제까지 통할 지는 모르겠다만 사춘기가 와서 데리고 나갈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지금 이 시간 쌓여가는 추억은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겠지.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육아를, 내가 하고싶은 육아를, 나는 그냥 꾸준히 한다. 내가 좋은 방식이 나한텐 제일 쉽고 딱이니까!
저희 가족의 평소 산책하는 모습을 vlog 로 담아보았습니다~ 작년 가을즈음, 뉴질랜드 타라나키라는 동네 풍경이에요. 자연과 벗하며 사는 아이들을 보며 늘 감사하고 있답니다:)
https://youtu.be/-tnJ8JJ9H0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