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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Sep 18. 2022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2022

[헤어질 결심]

· 감독 : 박찬욱

· 출연 :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고경표, 박용우, 유태오, 김신영, 박정민 등 

· 개봉 : 2022년

· 장르 : 로맨스/멜로/드라마/서스펜스

· 러닝타임 : 138분

·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 칸 영화제 감독상 


● 리뷰

헤어질 결심 : 눈, 깨어짐과 깨어남 사이에서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다. 어딘가 서늘하면서도 아름답다. 크랭크업 소식이 들렸던 작년부터 약 1년을 기다린 만큼 헤어질 결심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 자연스레 N차 관객이 되었다. 처음 작품을 볼 때 (여러 매체에서 미쟝센의 향연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곳곳에 숨겨진 장치와 의미들을 찾고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2차 관람 때는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보다 화면 구성과 대사에 집중했다. 마지막 3차에는 작품을 복습하듯 이전에 해석했던 부분과 실제 영화를 비교해서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헤어질 결심이라는 하나의 작품을 놓고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이야기한다. N차 관객으로 가장 흥미 있게 보았던 부분은 바로 주인공 해준의 시선과 눈에 대한 것이다. 

   해준은 올곧은 사람이다. 한평생 형사일을 하며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는 점잖은 캐릭터이다. 해준은 사건 현장에 도착하면 인공 눈물을 눈에 집어넣는다. 카메라는 이를 몇 차례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서래의 남편 기도수가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한 현장에 도착했을 때도, 두 번째 남편 임호식의 시신이 있는 수영장에 도착했을 때도 시체를 똑바로 응시하기 전 안약을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 사라진 서래를 찾으러 가기 전, 해변에 세워둔 차 옆에서 다시 한번 안약을 넣는다. 이 행위는 사건의 진실을 보기 위한 해준만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바르고 청렴한 해준의 성격과 더불어, 형사의 눈으로 사건을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기 위한 마음가짐을 표현한다.  

   영화 내내 해준은 무언가 똑바로 응시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이는 이포로 이사 가기 전, 서래의 집을 찾아온 해준의 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붕괴란 무너지고 깨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유지하던 현상이 깨져버린 것이 바로 붕괴이다. 가치관과 신념이 될 수도 있고, 성격이나 취향, 또는 삶의 패턴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자신이 지켜왔던 것들의 붕괴 속에서 해준은 끊임없이 똑바로 보기 위해 안약을 넣지만 보지 못한다. 잠깐 왔다가 이내 사라지지만, 그 순간 모든 시야를 사로잡는 안개처럼 해준은 서래라는 안갯속에 갇혀 허우적거린다. 

   영화 중반부에서 두 사람은 눈 내리는 겨울밤에 함께 호미산을 오른다. 산 중턱에 올랐을 때쯤, 서래는 머리에 랜턴을 쓰고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해준을 쳐다본다. 이때 우리는 서래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강렬한 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해준을 발견할 수 있다. 해당 장면을 통해 그가 아슬아슬한 상황 위에 놓여 있으며, 이미 서래라는 존재에 완전히 눈이 멀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메인 포스터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로 강한 빛이 쏟아지고, 서래 역의 탕웨이 배우는 창문 밖을 응시하지만 해준 역의 박해일 배우는 눈을 감고 있다. 

   처음에는 로맨스 영화라는 박찬욱 감독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끝까지 서래를 의심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관람할 땐 서래의 사랑이 온전히 느껴져 마음이 저렸다. 모든 시선이 서래를 향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자신의 깨어짐에 혼란스러워 깨어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단 한 번도 표현한 적 없지만, 그의 모든 시선과 눈, 태도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사에 관객도 함께 초대한다. 이포에서 해준을 다시 만난 서래가 말한다. “나 못 봤을 때, 억지로 눈 감아도 내가 보였죠. 그리고 시장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다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붕괴는 단순히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어떠한 깨어짐은 또 다른 깨어남으로 이어진다. 올곧은 해준의 삶에 예상치 못한 변주가 된 서래는 그의 삶에 한 줌의 쉼과 숨이 되어준다. 그러나 해준은 자신의 붕괴가 어떠한 의미인지 알지 못하고, 서래가 사라지고 나서야 끝내 자신이 뱉은 말을 되뇌며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깊숙한 곳에”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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