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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근노근 Sep 07. 2021

결혼‘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청첩장과 축의금의 사회학

2018년 11월, 결혼을 하고 2주 뒤에 쓴 글이다. 담아 둔다. 참고로 결혼하고 3년차, 난 잘 살고 있다.


1. 결혼에 대한 주변부 이야기

  2018년 11월, 결혼을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결혼한 지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생각들, 차고 넘치나, 지금 이 글은 결혼에 대한 본격  해부 또는 심오한 고찰 따위는 아니다. ‘일부 일처제로써의 결혼’, ‘결혼은 미친 짓인가’, ‘한국의 빌어먹을 결혼 실태’ 따위 좀더 본질적이고 진지한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기로 하자. 행복한 신혼 생활에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튀어나오는 입을 막으며, 그저 결혼과 관련한 주변부 이야기를 내뱉고자 한다.      


2. 타인의 결혼식을 대하는 나의 자세

  대학을 갓 졸업한 어느 날, 동기 중 한 명이 결혼을 한단다. 몇몇은 알지 못했고, 몇몇은 알았다. 몇몇은 연락을 받았고, 몇몇은 연락을 받지 못했다. 연락을 받지 못한 몇몇에 내가 속했고, 누군가를 통해서 듣기는 했으니, 어쨌든 그 동기가 결혼하는 걸 알게 된 몇몇에 속하기는 했다. 그때 나는 딱히 고민이 되진 않았다. 별 고민 없이 그 결혼식을 갔다. 그때 나의 기준은 나에게 결혼 연락이 오느냐 안 오느냐에 있지 않았고, 내가 갈만한 사람인가 아닌가에 있었다. ‘내가 갈만한 사람’이라는 데 아주 엄격한 기준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와 어느 정도의 친분만 있다면, 그리하여 내가 축하해 주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동기는 여성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리감을 제외하면, 그래도 만나면 즐겁고 유쾌하게 대화했던 그런 사이였다. 게다가 졸업한 지 얼마 안 지났으니 괜한 친근감이 더 있었으려나. 그 후로도 내 기준이 크게 바뀐 거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식과 관련한 온갖 잡음들이. 연락 한 번 안 하다가 이럴 때만 연락한다느니, 반대로 친한 줄 알았는데 연락이 안 와서 속상하다느니, 카톡으로 모바일 청첩장만 보내서 성의 없어 보여 안 간다느니. 그런 모든 반응들이 아주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반응들이 본질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축하를 하고 안하고가, 그따위 형식적인 것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어중간한 관계에서 초대해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의 초대에도 당당히 혼자 가서 축하해 주고, 축의금 넣고, 또 당당히 혼자 밥을 먹고 왔다.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더라도, 혹은 서로 알게 된지 얼마 안 됐더라도, 나를 생각해 준 마음은 고마운 것이었다. ‘아 초대해주면 좋았을 걸’ 싶은 결혼도 있었다. 물론, 내가 그 결혼을 꼭 그 사람을 통하지 않더라도 사전에 알았다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예 몰랐고, 그 친구는 이미 결혼을 해버렸다. 그럼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크게 개의치 않고 다음에 만난 자리에서 아무 어색함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 그렇게 나는 서운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쳐먹다 보니 그리 된 건지, 그렇지 않더라. 아주 친하지는 않았으나 결혼을 한다면 그래도 당연히 연락을 줄 줄 알았던 친구의 결혼 소식을, 그 당일 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그래도 정신을 차려, 그 소식을 전해준 이에게 축의금이라도 부탁하려 했는데, 돈이 없단다. 식은 이미 곧 시작. 다른 부탁할 이를 찾기에도 빠듯했다. 그렇다고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그 당사자에게 축의를 하게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는 것도 어색하고 웃기는 일이었다. 결국 그 친구에게 축의는 못 했고, 아쉬움은 내내 남았으며, 그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술에 취해 완곡한 어조로 그 아쉬움을 토로한 기억이 있다. 결국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지 못하니, 그건 또 다른 기분이었던 것이다.      


3. 나의 결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지인에게 내 결혼소식을 알리겠다고. 꿈은 컸고 포부는 원대했다. 나와 인연이 닿은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소중하다 생각했다. 게다가 주변을 보면 은근히 결혼 소식을 듣지 못해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혼 소식을 듣고, 올지 안 올지는 그 사람 몫이었다. 온다면 고마운 거고, 오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정리한 지인 연락 명단이 거의 300명에 가까웠고, 이 사람들에게 모두 연락을 돌리리라 마음먹었다. 이 때만 해도 몰랐다. 이게 허황된 꿈이란 걸.

  시작은 창대했다. 정리한 명단을 A4에 뽑고,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완료한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 밑줄을 그어가며.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많았다. 말이 300명이지 그 많은 인원을 직접 만나서 결혼턱을 쏘며 청첩장을 주거나, ‘전화’로 연락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연락을 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직접 전화로 연락을 돌렸다. 모바일 청첩장만 보내는 일은 없었다. 그게 예의라 생각했다. ‘예의’, ‘형식’ 따위 별로 안 따질 것 같던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을 서운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가해지는 예의와 형식에선 자유롭고 싶지만, 예의와 형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예의와 형식을 갖춰주고 싶었다. 그게 나의 균형성이고, 나의 개인주의며, 자유주의다.) 게다가 돌리다 보니, 어느새 나 몰래, 결혼한 사람이 꽤 되었다. 내가 가지 못한 결혼을 한 당사자를 내 결혼에 초대하는 건, 관례상 예의가 아니었다. 뻘쭘할 수 있는 상황속에서도 나는 넉살 좋게 내 결혼소식을 알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맙게도, 축하의 마음을 전했고(나는 진심이라 믿는다), 반가워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다. 너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결혼한 사람들한테까지 돌리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친구들의 결혼 소식을 미리 묻기도 했고,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며 결혼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내가 가지 못한(대부분 아예 연락을 받지 못한) 결혼을 한 지인들의 경우, 연락을 돌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뿐만 아니다. 다 돌리겠다고 (혼자서 몰래) 선언했건만, 미처 체크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왔고, 또 이 사람에게까지 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매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이런 때 아니면 또 언제 연락해보겠어, 하고 돌린 사람이 이미 차고 넘쳤는데, 이런 마음가짐으로도 연락 돌리기엔 고민이 되는 사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겐 돌리기도 했고, 안 돌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300명 가까운 연락 명단에서, 내가 실제로 연락을 돌린 건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창대한 꿈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그래, 이 정도면 난 할 만큼 했다. 나에게 돌을 던질 자, 던지라.     


4. 축의금, 니가 뭣인데

  결혼이 무사히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스쳐 지나간 그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왔는데 얼굴도 못 본 사람들은, 깊은 아쉬움만 남았다. 누가 왔는지, 누가 안 왔는지 모를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축의금 명단을 받았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먼저, 솔직히 고백할 것들을 얘기해야겠다. 우리 결혼식의 식사값은 기본이 54000원이다. 거기에 맥주와 음료수값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대신 1인당 5500원씩 추가가 된다. 그러니까 1인당 전체 식사값은 59500원이다. 거기에 소주나 와인을 먹는다면, 금액은 계속 추가된다. 무슨 말하려는지 알 것이다. 축의금 오만원을 받으면 적자고, 나는 그 오만원과 적자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구질구질하다, 이런 얘기. 이런 얘기가 혹여 오만원을 축의하신 분들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그분들께 결례가 되지 않았기를. (이렇게 얘기해도 결례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보실 분들이 거의 없긴 하겠지만, 혹 기분 상하신 분들이 있다면, 깊이 사과드린다.)


  이것과 관련된 얘긴데, 축의금의 액수를 보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 사람에게 축의했던 금액보다 적게 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 사람에게 축의했던 금액보다 많이 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많이 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적게 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 사람 결혼식 때 축의하지도 않았는데 내 결혼식 때는 축의를 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 사람 결혼식 때 축의했는데도 내 결혼식 때는 축의를 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이 들었겠나. 돈의 금액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고마움을, 어떤 사람에게는 아쉬움을 느끼는 게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니다. 나 아니라도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문제는 나 역시도 그랬다는 것이고,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5. 결혼식 축의금을 대하는 나의 자세

  돈에 일희일비해놓고 이런 말 하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돈에 일희일비하기 싫었다. 돈으로 급을 매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고자 했다. 축의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됐던 사람들, 축의를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했던 사람들에게 가졌던 고마운 마음을 굳이 접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분명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축의를 특별히 많이 하진 않았지만, 축의를 해 주신 모든 분들, 결혼식에 직접 얼굴 비춰준 분들, 축의와 상관없이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주신 분들 모두가 고맙고 또 고마운 분들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축의를 생각보다 적게 한 사람들, 더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축의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내 서운한 마음을 접는 일이다. 사실 생각해보라. 축하를 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을 축하하는 것은 내가 나중에 축하받기 위함이 아니요, 그저 그 사람을 축하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댓가를 바란 축하가 아니라는 말이고, 축하는 그래야 한다. 그 사람이 내 불행을 바라는 게 아닌 이상, 축하를 해주지 않았다고 그 사람에게 서운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축하해 준 사람들에게 그저 더 고마워하면 될 뿐이다.  

    

  나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내 마음 속 찌꺼기들을 털어내기 위해, 미욱하나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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