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힘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호주에서의 7개월...
동남아시아 여행을 무사히 마쳤지만, 호주에 도착했을 때 나에게 남은 건 개미에게 물어뜯겨 고름 진 다리와 현금 5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기 전에 나는 호주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했고, 오직 내가 믿고 있었던 건 바로 호주 북부에 있는 악어농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호주에 대해서 무지했냐 하면 내가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호주는 칼바람 매섭게 치는 겨울을 맞이하였지만, 내가 상상했던 호주는 연중 따뜻한 날씨와 맑은 햇살 아래 뛰노는 캥거루 친구들이 전부였기에 나는 자신 있게 태국 야시장에서 2000원 주고 산 민소매와 집에서 입다가 가져온 반바지만을 입은 채 호주의 겨울을 대면하게 되었다.
이 정도로 호주에 대해서 몰랐던 내가 호주에서 이루고자 한 목표는 아래의 2가지였다.
1. 여행 자금 1500만 원 5개월 동안 모으기
2. 마련한 자금으로 호주에서 보따리 장사해보기
나는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호주 생활기를 겪기 전에는 이 2가지 목표는 금방 그리고 꽤나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크나큰 착각을 했다. 가진 거라곤 하나도 없는 내가 돈 5만 원 들고 호주를 겁 없이 건너갔을 때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첫 번째 호주 도착해서 악어농장에서 일을 시작하면 난 엄청난 돈을 금방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망상, 그리고 두 번째는 여행을 떠나기 전 같이 수업을 들었던 사랑하는 학교 선배(사실 학기 중에는 많은 교류는 없었지만 호주에 있는 사람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학교 선배뿐이어서 더 들러붙은 것도 있다.
하지만 호주 이후로 나는 형을 좋아하게... 아니... 사랑하게 되었다.) 뭣도 모르던 초보 여행자는 딱 이 2가지를 믿고 혼자만의 장밋빛 호주 생활을 그렸다.
우선 학교 선배에게 일주일치 방값은 빌렸지만 당장 악어농장을 가기 위한 비행기 값과 생활비가 필요했기에,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었다, 운이 좋게 도착한 다음 날 바로 건설현장일을 쉽사리 구하였고, 호주에서의 생존기는 그렇게 똥지게에 모래를 짊어지며 시작되었다.
일주일 정도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건설현장을 다녔을 쯤, 동남아시아에서 상처 입은 다리를 제때 치료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이미 발목 양쪽에 생긴 상처는 깊이 파였고 그 사이로 고름이 차오른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일을 쉬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무슨 세균이 내 피부를 갉아먹고 있고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잘 기억은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오직 병원에서 진료만 받았는데도 거의 6~8만 원 정도 나온 병원비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당시 나의 자금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했기에 나는 약국에서 대충 소독제랑 이것저것 사서 셀프 치료를 한 뒤 휴식을 취하다가, 내가 믿어왔던, 나에게 엄청난 돈을 안겨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악어농장 생활을 위해서 호주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다윈이라는 도시로 드디어 떠나게 된다.
다윈이라는 도시를 도착하였을 때 첫 느낌은 시드니와는 너무나 달랐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느낌의 뜨거운 햇살, 생전 처음 보는 호주의 원주민(호주에서는 이들을 에보리진이라고 부른다)들, 그리고 영화 '황해'에서나 나올법한 비주얼의 악어농장 식구들... 모든 게 시드니 도시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였지만, 나는 이런 다윈의 모습이 내가 생각한 호주의 생활과 더욱 근접했기에 살짝 흥분되는 상태로 다윈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중에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이미 갔다 온 분들도 많이 계실 테지만 아마 악어농장에서 일을 해본 사람을 주위에서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악어농장에서 2달 반 정도의 극한 직업 생활기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풀어내 보도록 하겠다.
악어농장 숙소에 들어간 첫날 내가 마주한 것은 숙소 내에 있는 큼직한 수영장과 그 안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던 다들 한 인상하시는 수염이 덥수룩한 악어농장 형님들이었다. 악어농장은 한국, 일본 , 대만 친구들 이렇게 아시아 3국의 노동자들만 일을 하고 있었고 그중에 한국인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악어농장에서 일하는 파트는 총 3가지로 나뉘었다.
1. 해처리 : 악어 알 관리부터 새끼악어들을 관리하는 파트
2. 싱글 팬 : 악어가죽을 벗기기 전 독방에 악어를 가둬 놓고 가죽 상태를 체크하며 이물질을 청소하는 파트
3. 아웃도어 : 악어 우리에서 악어를 옮기고, 싸우고 하는 뭐 그런 다이내믹한 파트
나는 덩치가 꽤나 있는 편이어서, 악어농장 형들은 나를 보자마자 아웃도어 파트로 분배하였고, 드디어 악어 농자에서의 2달 동안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새벽 6시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전날 저녁에 먹이로 주었던 썩은 닭머리들을 치우기 위해서 30분 구보로 악어농장의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 첫 일정이 끝나면 만주벌판처럼 넓게 펼쳐진 얼린 닭머리들을 300개(?) 정도 되는 박스에 퍼 나르는데, 아침부터 몇 천 개의 닭머리를 보는 것은 적응하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비위가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천 개의 닭머리를 공복으로 마주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닭 머리 친구들과 오전 일과를 보내고 나면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다윈의 태양이 떠오르고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된다.
경력이 좀 되는 형들은 전기충격기를 매고, 나머지 일한 지 얼마 안 된 아기 노동자들은 마음의 준비를 한채 악어 우리로 향한다. 여기서 말하는 악어 우리는 동물원 같은 악어 우리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야외 사육장을 지칭하는데 악어를 옮기기 전 작은 호수(?)에 있는 물을 다 빼고 난 뒤에 챙겨 온 전기충격기로 악어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스럽게 피카추 백만 볼트를 먹인 뒤 악어가 깨기 전에 빠르게 옮기는 작업을 한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악어 한 마리당 보통 100kg은 기본이고 타는 듯한 더위에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7~8명 정도 되는 인원이 악어 100~150마리를 옮기는 것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처음 일주일은 매일 포기하고 도망(일명 빤스 런) 갈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힘들었던 악어농장일도 한 달이 지나니 나름 적응을 하기 시작했고, 일이 끝나고 나면 농장 식구들과 같이 밥 먹고, 수영하고 노는 농장의 생활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달 정도 됐을 무렵 왼쪽 손목 인대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병원을 가서 진단을 받은 결과 손목 인대가 많이 늘어나 있어서 한 2주 정도는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사실을 농장 측에 알리자 돌아오는 통보는 fire(해고)였다... 하지만 이미 이전에 다쳐서 오래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형들이 잘리는 것을 본 사례가 있기 때문에 나도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악어 농장에서의 2달 반 동안의 생활은 많은 추억과 강력해진 멘탈을 얻은 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목표한 금액을 다 모으기 전에 난 순식간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고, 같이 부상을 입고 악어농장에서 해고당한 동생 (조 oo)과 같이 다원을 벗어나 멜버른으로 향하기로 의기투합을 했다. 그다음 도시를 멜버른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선 시드니는 싫었고, 농장생활이 아닌 도시 생활을 하고싶은 이유였다. 멜버른에 가기 전 우리는 바로 직업을 구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는가? 우리의 악어농장 경험을 높게 산 호주 소공장의 매니저가 우리에게 바로 일자리를 주었고, 나는 농장에서의 생활을 뒤로 한채 공장에서의 생활을 그리고 나름 도시생활(?)을 멜버른에서 하기 시작했다.
멜버른에서의 나의 생활은 그야말로 워커홀릭이었다. 나는 짧은 시일 안에 다음 여행을 위해서 목표한 경비를 마련해야 했기에, 멜버른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돈에 집착해 돈만을 바라보며 3개월을 보냈던 것 같다.
평일에는 새벽 6시부터 3시까지 소공장에서 일을 하고, 소 공장에서의 일과를 마치면 바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서 두 번째 직업인 한인식당에서 저녁 11시까지 키친 핸드 일을 했다, 또한 주말 오전에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또 한인식당에서 미친 듯이 일한 결과, 멜버른에서 일한 지 3개월 즈음 내가 목표한 금액 15000만 원에 근접한 14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다 모을 수 있었다.
통장에 내가 목표한 금액을 확인한 순간, 이 세상의 어디라도 다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그때 마침 호주 서쪽에 위치한 프리맨틀이라는 곳에서 원양어선을 2달 동안 타면 30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동료직원한테 듣고 나서, 멜버른이라면 빠질 수 없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 여행을 즐기며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3번째 도시인 프리맨틀로 향하게 된다.
호주에서의 그다음 이야기는 2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