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가볼까 하다가 땡볕 자글자글한 바깥을 보고 마음을 접습니다. 불볕더위가 불효를 부추기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원한 냉커피 한 잔을 만들고 냉장고를 열어 봅니다. 며칠 된 도넛 하나가 보이네요. 꺼내 보니 겉이 희끗희끗합니다. 설탕 녹은 것인지 곰팡이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안경을 벗고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다행히 곰팡이는 아닙니다.
몇 주 전에 엄마 집 냉장고에서 발견한 곰팡이 핀 빵이 떠오릅니다.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인다는 엄마 말도 생각납니다. 아무래도 엄마 집에 가야겠습니다.
엄마는 무조건 반가워합니다. 쉬는 날인데 잠 좀 더 자지 왜 왔냐면서도 냉장고에 복숭아 있으니 꺼내랍니다. 나는 복숭아를 꺼내 뽀독뽀독 씻습니다. 쟁반에 접시와 칼과 복숭아를 얹어 엄마 앞에 놓아드립니다. 엄마는 복숭아를 먹기 좋게 잘라 내 앞에 놓아줍니다. 늙어 허리 꼬부라진 엄마가 깎아준 복숭아를 덜 늙은 딸이 받아먹습니다.
둘째 언니가 복숭아를 두 상자나 보내왔답니다. 나 집에 갈 때 몇 개 싸가랍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떠 있습니다.
주말에 다녀간 아들이 용돈을 줬답니다. 지난번에 입고 갔던 초록색 원피스를 또 입고 갔더니 옷 사 입으라고 누런 지전도 한 장 꺼내 줍니다. 이쁜 꽃분홍색으로 사 입으랍니다. 웃으면서 한 장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하니까 한 장 더 꺼내 줍니다. 돈 많다고 자랑하십니다. 기분이 무척 좋으신가 봅니다.
빈손으로 와서 복숭아에 지전까지 받아 챙긴 나는 실없는 농담을 던집니다.
“엄마, 그렇게 좋아? 생일처럼 신나셨어.”
“얘, 내가 올해 아흔이야. 구십 년을 살았으면 이젠 하루하루가 생일이지. 어제도 생일이고 오늘도 생일이고 내일도 살아있으면 생일이야. 안 그러니?”
나는 엄마 말이 맞다며 맞장구를 치면서 깔깔 웃습니다. 엄마는 복숭아씨에 붙은 살을 앞니로 긁어 드시면서 같이 웃습니다. 엄마가 내밀어준 복숭아 과육이 달콤하고 향긋합니다.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쑥스러워서 하지 못 하는 말도 목구멍으로 같이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