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다'
오래전 인사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제가 맡았던 업무 중의 하나가 면접을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날은 좀 특별히 청각 장애를 가진 분들을 채용하는 날이었는데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복리후생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명했죠.
보통 면접자들은 중간에 질문하거나 설명하는 도중 같이 온 사람과 작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날은 이런 과정 사이에 작은 공백이 생겼는데요. 이 모든 이야기를 수어로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런 공백이 생길 때면 저는 멀뚱히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어 철저히 외부인이 되었죠. 한편으로는 장애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반대로 그들 사이에선 오히려 제가 장애를 가진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장애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는데요. 이 경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몇 장면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코다'의 이야기입니다.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청각 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를 말합니다. 청각 장애를 가진 가족의 입을 대신해 그들과 청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데요. 이 영화에선 17세 소녀 ‘루비’가 코다입니다. 영화 속에서 청인과 농인 사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루비를 보며 그때 고요 속에 서 있던 제 생각이 났거든요. 오늘은 루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생계를 위해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가족들과 함께 고기잡이배에 오르는 루비. 일이 끝나면 그제야 학교에 갑니다. 이로 인해 항상 지각하는 건 일상이 되었죠. 친구들은 루비에게 생선 비린내가 난다는 이유로, 또 가족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루비를 따돌리죠.
그런 루비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이자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바로 ‘노래’인데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그저 음악을 듣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루비는 짝사랑하는 친구 마일스를 따라 합창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특별하다고 해주는 선생님 ‘미스터 V’를 만나면서 노래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게 되죠.
덕분에 처음으로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가져보는데요. 가족들은 자신이 어렵게 꾼 꿈을 응원하기보다 ‘네가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냐’며 걱정부터 합니다. 루비는 가족과 자신의 꿈을 놓고 고민에 빠지는데요. 그녀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영화 ‘라라랜드’로 그래미상 2관왕을 차지한 음악감독 ‘마리우스 드 브리스’가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얼마나 귀를 즐겁게 해 줄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영화 후기를 보면 하나같이 ‘음악영화인 줄 알고 즐기러 갔다가 눈물 흘릴 줄 몰랐다’는 평이 대부분인 것처럼 스토리도 큰 감동을 주는데요. 저도 이 후기에 공감했습니다.
루비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가족들을 보호해야 하고 더군다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엄청난 무게감을 가지고 있죠. 동시에 농인 가족들 사이에서도 청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끼지 못해 외로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렵게 꾼 꿈을 가족들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까웠죠.
합창부 발표회 날 초대되어 딸이 나와 노래를 불러도 그저 옷이 잘 어울린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박수치기 바빴죠. 영화는 노래하는 중간에 루비 가족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데요. 가족들이 얼마나 답답할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훌륭한 연출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영화를 찍을 땐 청인 배우들이 수어를 익혀 연기하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실제 농인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루비의 가족이 실제 농인 배우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더욱 현실감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루비 엄마 재키 역의 말리 매트린은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연소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베테랑 연기자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루비의 아빠 역을 맡은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가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엄마 아빠 역의 배우들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셈이죠. 이번 시상식에서는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우리나라의 윤여정 배우가 시상을 해 더 화제가 되었는데요. 수상자를 먼저 확인한 윤여정 배우가 수어로 트로이 코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끝으로 ‘코다’를 보면 어떤 영화가 떠오를 수도 있는데요. 2015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입니다.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 바로 ‘코다’라고 하네요. 프랑스 버전의 ‘코다’는 어떨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