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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Jun 11. 2022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재현해드립니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무엇일까. 잠깐 고민해봤는데 딱 이거다 하는 기억은 없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면서 불행했다는 건 아니고요. 기억에 콕 박힌 장면이 딱히 없었달까요. 아직 좀 더 살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이 질문을 드린다면 기억의 저편에 고이 간직해온 기억이 있으신가요.


 영화는 올해로 개봉한  21년이 되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작  하나로 1999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세계 최대 리뷰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 1위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사후세계를 감독의 독특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 ‘원더풀 라이프입니다.  


죽은 이들이 꼭 거쳐야 하는 ‘림보'. 이곳의 직원들은 인터뷰를 통해 생전에 가장 좋았던 기억을 영상으로 제작해준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면 도착하는 곳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상의 경계에서 꼭 거쳐야 하는 정류장 같은 곳으로 그들 사이에선 ‘림보’라 부르죠. 죽은 자는 이곳에서 7일간 머무르게 됩니다. 3일간은 림보의 직원들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가장 좋았던 기억을 찾습니다. 이후에는 그 기억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마지막 날에는 제작된 영상을 함께 보는데요. 죽은 이는 생전의 모든 기억은 지워지고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한 채 천국으로 향합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 기억으로 어린 시절 오빠의 앞에서 춤을 추었던 장면이나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합니다.


이 장면을 보다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는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었습니다. 사전 인터뷰를 도와준 일반인 10명을 캐스팅해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 요청한 거죠. 그때 그들의 표정이나 행동, 그리고 새롭게 덧붙여지거나 삭제되는 이야기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냈습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죽은 자들의 인터뷰 장면. 이 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지만,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었다.


반면 3일 내내 기억을 찾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림보’에서 기억을 찾을 때까지 일하게 되는데요. 그중 한 사람이 모치즈키(이우라 아라타 분)입니다. 그는 한 노인을 인터뷰하다 기억을 찾기 어려워하자 인생 전체를 회고할 수 있게 비디오로 보여주는데요. 그 영상에 등장한 노인의 아내를 보고 놀라죠. 알고 보니 그녀는 모치즈키가 죽기 전 정혼자였습니다.


상처받기 싫어 침묵하던 그는 이미 죽은 정혼자의 마지막 기억에 자신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고 깨닫게 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없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기억에 내가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


이렇게 영화는 약 두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먼저 내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기억했으면 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게 하고, 혹시 나와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의 인생에 내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지도 생각해보게 되죠.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기억은 때론 진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과거의 기억보다 자신이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영상으로나마 재현해 주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다양한 물음이 떠오릅니다.  


사후세계를 그린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드라마 ‘호텔 델루나'.


사후세계를 그린 영화나 드라마는 그동안 많이 있었는데요.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른 작품이 있다면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드라마 ‘호텔 델루나’입니다. 한국의 전통 신화를 바탕으로 관객 흥행 몰이한 ‘신과 함께’는 죽은 이들이 재판을 받아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다르죠.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생전에 죄를 지었든 짓지 않았던 유무죄는 따지지 않습니다. 죽은 자가 생전에 범죄자라 해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만을 남겨주죠. 인과응보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이 영화가 조금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홍정은과 홍미란 작가의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죽은 영혼들이 델루나에서 지내면서 생전에 ‘한’으로 남은 것, 예를 들어 못다 한 사랑의 끝을 맺거나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데요. 지상을 뜨기 전 쉬다 가는 곳이란 점에서 이 영화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존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서 감상하시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겁니다.


이 이야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늦은 시간까지 홀로 편집실에서 작업하던 중 문득 ‘내 과거 장면을 상영한다면, 신이 어딘가에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 있다면, 내 인생은 그리움일까 후회일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잠시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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