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공방 Nov 03. 2023

[소설로 심리학 읽기] 편혜영의 재와 빨강

몰개성화, 위계욕구, 체화된 인지

오늘은 편혜영 작가의 소설 <재와 빨강> 속 세 가지 장면을 통해 익명성과 몰개성화, 매슬로우의 위계 욕구, 체화된 인지 개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소설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설을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해설입니다. 다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하세요!





소설 소개

편혜영 작가의 소설 <재와 빨강>은 2010년에 출간된 소설로, 전염병이 창궐한 두 나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 속 배경이 코로나 시국과 너무도 닮아있어서, 2023년 개정판이 재출간되었습니다. 소설의 두 키워드는 전염과 쥐인데요. 고전 <페스트>의 현대적 모습처럼 읽히기도, 코로나 시국의 예언서처럼 읽히기도 해서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줄거리

파견 근무를 위해 C국으로 출국한 그는, 콜록거리는 옆자리 승객 때문에 불편합니다. 그리고 C국에 도착하자마자 발열이 확인되며 전염병 의심 환자로 격리되지요. C국은 이미 전염병으로 아수라장인 상태, 파견 근무는커녕 외지에 고립됩니다. 설상가상 캐리어까지 도난당하면서 외롭고 괴로운 날들은 계속되지요.



* 이후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에게는 전처가 있습니다. 전처와 이혼할 당시, 그녀를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그녀의 개를 자신이 키우기로 했는데, 출국하면서 개 밥을 챙겨놓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전처와 재혼했다 이혼한 (친구) 유진에게 개를 챙겨달라고 말하면, 소식이 전처에게 들어갈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유진은 자신의 전처이기도 한 그의 전처에게 연락하지 않고 그의 집으로 곧장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처의 시신을 발견하죠. 그녀는 누가 죽였을까요? 

전처를 죽이고 C국으로 도망간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범인으로 몰릴까 두려워하여 격리 아파트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소설 속의 심리학(몰개성화)



격리 아파트에서 탈출한 그는 노숙자들이 생활하는 공원으로 피신합니다. 노숙자들에게는 이름이 없고, 그들이 차지한 벤치 의자에 번호에 따라 1번, 2번 등으로 불립니다. 그 역시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지요. 함께 생활(?) 하는 노숙자 중 2번이 기침을 하는 것을 본 다른 노숙자들은 고민을 시작합니다. 저 사람을 방치하면 우리도 감염될 거라는 거죠. 그래서 노숙자들은 2번을 처리하기로 결정합니다



"몸은 좀 어때요?"
8번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2번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입을 벌렸으나 뒷말을 들을 수 없었다. 6번이 순식간에 2번의 몸에 이불을 덮었기 때문이다. 2번은 버둥거릴 힘도 없는지 맥없이 결방당했다. 8번이 어디선가 가져온 보디백을 2번에게 뒤집어 씌웠다.

<재와 빨강> p.151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자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의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순간, 그러니까 익명성이 보장되는 순간 평소엔 하기 힘들었던, 공격적이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 몰개성화: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집단에 융화되는 심리적 상태


소설 속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살인자로 몰리면서 어쩔 수 없이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그곳에서 이름도 직업도 없는 그저 벤치 번호로 불러지지요. 그들은 그냥 노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다 한 사람이 전염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니, 살아있는 사람을 보디백에 담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거죠. 만약 자신이 어떤 회사의 ㅇㅇㅇ직원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거나, 저처럼 강의를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거나, 아무튼 자기의 정체성이 알려진 상황이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행동에 동참하는 거죠.



이렇게 끔찍한 상황이 아니어도 몰개성화는 쉽게 일어납니다. 인터넷 환경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죠. 나의 얼굴이나 신분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익명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나, ㅇㅇㅇ'라는 자의식을 잃어버리고 대신 악플러라는 집단의 일원으로 융화됩니다. 그래서 쉽게 남을 비난하는 악플을 달 수 있게 되지요. #악플을다는심리








소설 속의 심리학(체화된 인지)


그에게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미 지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공항에서 의심 환자로 격리를 요청받은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체류할 곳으로 향합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기대하는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는데 얼마나 고단할까요? 그의 파견 근무는 마치 떠밀리듯 조국에서 쫓겨나 버림받은 기분을 던져줍니다.


그는 한손으로 트렁크를 끌고 한손에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긴 대교를 건넜다. 대단한 물건을 챙기지도 않았는데 트렁크는 온 세상이 담긴 듯 무거웠다.
<재와 빨강> p.20


삶이 너무 고단할 때 우리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여기서 무겁다는 표현은 물리적인 표현인데요. 어쩐지 무거운 물건을 든 것처럼 정말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차갑다'라고 표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거나, 기분 좋은 경험 후에 마음이 '따뜻하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물리적 표현을 심리적 표현으로 대신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표현은 그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 체화된 인지: 몸으로 경험한 감각이 인지적으로 적용되는 것


신체와 정신은 상호작용합니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경험한 것이 정신적인 느낌에 영향을 주는데요. 이를테면, 온도가 낮은 방에 앉아있으면 (춥다는 경험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이 나를 냉대한다고 느끼게 되고, 무게가 나가는 짐을 들고 있으면 (무겁다는 경험 때문에) 현재 상태가 고단하다(마음의 짐)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체화된 인지라고 하는데요. 반대로 내가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에 빠지면 물리적 경험을 해석하는 데 영향을 줍니다. 삶이 고단하면 들고 가는 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외로우면 집이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소설 <재와 빨강> 속 주인공 그는 새로운 인생을 선물받은 기분으로 타국에 오지만, 실상은 격리 환자가 되어버립니다.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때 그가 끌고 가는 캐리어(트렁크)는 별것도 들어있지 않는데,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집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무게감을 그 가방을 통해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소설 속의 심리학(매슬로우 위계 욕구)


재난현장에서 경험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자신의 소변을 먹고 버텼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어떻게 더럽게 그럴 수 있지? 생각하겠지만 그 상황에 처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부랑하는 처지라면 음식에 대해 어떤 자의식도 가져서는 안 된다. 허기에 지쳐 처음으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을 때 울음을 상키느라 냄새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상해서 곤죽이 된 국수를 먹었다. 일단 한입 먹자 계속 먹을 수 있었다. 벌레가 붙어 있다면 벌레를 떼어내고 먹었고 곯았다면 코를 막고 먹었다.
 <재와 빨강> p.125

살인자로 의심을 받은 그는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쓰레기 더미 속 버려진 음식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처음에는 그런 자신이 비통하게 느껴지고, 그런 음식을 먹는 게 거부감이 듭니다. 그러나 생존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그런 의식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때부터 그는 상한 음식도 개의치 않고 먹습니다.



* 매슬로우 위계 욕구 이론: 

인간의 욕구는 위계를 이루고,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다음 욕구가 발생한다는 이론

[생리-안전-인정-존중-자아실현 욕구]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가 위계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위 욕구가 해결이 되어야 상위 욕구가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이 욕구의 위계 중 가장 시작에는 생리적 욕구가 있습니다.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는 모든 것에 대한 욕구이지요. 물, 음식, 잠, 성, 배설 등에 대한 욕구 말입니다. 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경우 그다음 욕구인 '안전 욕구'는 생기지 않습니다. 


밤길을 걷다가 뒤에 누가 따라오지 않을까, 귀신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안전해지고 싶은 욕구가 생긴 상태입니다. 그러나 만약 저녁에 먹은 음식이 상해서 배가 아픈 상태, '급똥'의 기미가 보일 때는 어떨까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빨리 이 뱃속에 있는 배설물을 배출하고 싶은 생각뿐이지요. 우연히 화장실을 발견해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고 나면 그제야 갑자기 무섭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소설 속 인물은 사실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쓰레기 더미 속 음식을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요. 배탈이 날 수도 있고, 큰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의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면 배탈이 무슨 문제일까요? 안전은 다음 문제인 거죠. 그래서 그는 더러운 음식도 열심히 먹기 시작합니다.








전염병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인생이 곤두박질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은 소설 <재와 빨강>. 기괴하면서도 음침하고,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의 그림자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는 느낌에 묘한 위로가 되는 소설입니다. 코로나19에서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는 이 시점에,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심리학 작가 신고은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로 심리학 읽기] 최진영의 <단 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