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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Dec 28. 2023

당신의 2023은 성공적이었나요?

게슈탈트 심리학과 미해결 과제




          







샤워 중에 남편이 벌컥 화장실 문을 열었다. “마롱이 면봉 먹어!” 다급해 보이는 그의 태도와 달리 그의 행동은 민첩하지 못했다. 강아지와 가족이 된 지 겨우 2주밖에 안 된 사람의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뭐해! 빨리 빼앗아야지!” 그제야 달려 나간 그에게서 들려온 목소리는 절망적이었다. “삼켰어.”


이물질을 먹은 강아지가 병원에 달려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소화되지 않는 이물질이 장에 껴서 패색을 일으킬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안심이 되었던 것은 마롱이가 삼킨 면봉이 나무가 아닌 종이 면봉이었다는 것이었다. 종이 면봉을 삼킨 사례는 적지 않게 확인되었고, 이 경험의 결론은 대부분은 부드러운 면봉이 구겨져서 응가로 배출된다는 안도감을 선사했다. 우리는 면봉이 안전하게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면봉이 장을 통과하는 데 며칠이나 걸릴까? 곧 나오겠지. 이 마음으로 이틀이 지났다.


이틀간 나는 뾰족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신경이 곤두섰다. 알아서 착착 해내지 못하는 사람의 태도가 답답하고, 바쁜데 지금 뭐 하는지 묻는 친구의 안부도 성가셨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발망치 소리는 평소보다 더 크게 울렸고, 심장 박동은 두근두근에서 쿵쾅쿵쾅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써야 하는 글은 도무지 써지지 않고, 준비해야 하는 강의안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


다음 날 아침, 마롱이는 쾌변으로 아침을 맞이했고, 내 눈에는 초콜릿처럼 사랑스러운 응가 사이에 면봉이 발견되었다. 면봉을 확인하자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고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성가시던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고, 친구의 안부가 반가웠다. 머리가 돌아가고 일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았다. 나 이거 신경 쓰고 있었구나.




우리의 삶에는 현재의 과제와 잠시 미뤄둬야 하는 과제가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면봉은 미뤄두고 글을 쓰는 데 온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처럼. 당장에 무엇이 더 중요하고 급히 해결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하여,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때로는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발목을 잡아 현재에서 초점을 앗아간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마음에 남아 당장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미해결 과제’라 부른다.


아침 일찍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나선 딸은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엄마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과제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고은씨, 뭐해? 내 얘기 안 들려?” 애인과 싸우고 며칠 동안 기 싸움으로 연락하지 않는 동안, 주의가 산만해지고 옆 사람의 부름을 놓치는 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다툼을 종결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해결 과제는 당장에 중요한 것에 주의를 둘 수 없게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인간은 세상을 전경과 배경으로 인식한다. 전경은 지금 나에게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것이고, 배경은 전경으로 인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드라마를 보는 동안 옆 사람의 이야기가 집중되지 않는 것은 드라마의 내용이 전경이 되어 옆 사람의 목소리를 배경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회사 상사의 메시지에 터져버린 사고를 깨달으면 드라마는 이제 배경이 되고 사고가 전경이 되어 수습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 


우리는 이처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 가장 치명적일 줄 알았던 어떤 사건은 더 큰 파도가 밀려오면 뒤로 밀려난다. 전경이 된 문제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으로 중요한 과제가 전경이 된다.


문제가 되는 상황은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과제인지, 당장 해결해야 하는지 아니면 잠시 미뤄둬야 하는지 구분해 내지 못할 때 일어난다. 엄마에게 짜증을 냈어도 출근했다면 일에 집중해야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빠르게 사과 문자를 보내면 될 일이다, 드라마를 보다 사고가 터진 사실을 알아채면 사고를 수습하는 데 집중해야 하고 문제를 해결한 뒤 TV를 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감정을 채워 놓느라 정작 할 일을 하지 못한다거나, 중요한 문제를 앞두고 미뤄야 할 일을 붙잡고 있는다면 이거야말로 크나큰 문제이고,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 것이다.


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경과 배경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삼킨 면봉이 나오지 않을까 봐 불안에 휩쓸렸던 나는 사실 머리로는 시간이 지나면 면봉이 나올 것이라고 여기며 불안을 외면했다. 그러나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 것도 해결된 것도 아니기에 외면의 결과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형태로 드러났다. 


애인과 다툰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내면의 한구석이 꾸겨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버린 딸은 죄책감을 직면하기 싫어 못 본 척하려 하지만, 상황은 사라지지 않기에 가슴 아린 느낌이 족쇄가 되어 지금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든다.


당장 나에게 중요한 문제를 전경으로 삼으려 해도 미해결된 일들은 자꾸 전경으로 떠오르고, 진짜 전경과 가짜 전경이 섞여 마음은 혼란스러워진다.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와 뉴스가 화면에 동시에, 혹은 번갈아 나오는 것처럼 정신이 사나워지는 것이다. 이럴 때는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미해결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채고, 빠르게 털어내야 한다.






올해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부분이 한 해를 시작할 때는 뜨거운 의욕을 가지고 찬란한 목표를 설정했을 테다. 1월의 나는 12월의 내가 투두 리스트 한 줄, 한 줄에 체크를 완료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했을 테다. 그러나 1년의 끝자락이 다다른 현재, 우리의 모습은 1월 1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혹은 그때보다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을 미뤄두고, 해내고 싶었던 일에 실패하고 이 상태로 한 해를 뒤로하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도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그 찝찝함을 선사하는 것이 무언지 알 수 없다면 새로운 오늘에 집중하기에 실패하게 된다.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완결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를 짠다. 그러나 완결하기 위해 짠 목표는 늘 완결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괴로워진다. 목표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어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본다. 필요 없는 목표였다고 여기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뒷전으로 하거나. 그렇다고 하지 못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찝찝한 마음이 새로운 시작을 방해할 것이 뻔하다. 그러니 올 한 해를 돌아보고 완결하지 못한 것이 미해결 과제로 남지 않도록 전경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미해결 과제가 전경에 오르내려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우리는 예민해진다. 사소한 일에도 곤두서게 된다. 그러나 나를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 무언지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빠져있다면 해결하지 못한 무언가에 내 마음의 발목을 잡힌 것이다. 지금에 집중하길 원한다면, 내일을 살아가길 원한다면, 새로운 과제에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 과제를 흘려보내야 한다.



미해결 과제를 흘려보내는 첫 번째 방법은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한 해 동안 이루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해내지 못한 일은 무엇인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을까? 만약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다면, 실패를 못 본 척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통제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은 자신의 게으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게으름 때문에 실패한 것은, 게으름만 극복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실패를 외면하지 말고, 세웠던 목표를 없던 채 말고 다시 한번 극복해낼 과제로 삼자. 그래서 내년에는 이 과제를 반드시 해결하기로 마음먹자.


물론 세웠던 과제가 게으름으로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수준의 과제였는지도 모른다. ‘체지방 10kg 감량하기’처럼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은 완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과제는 완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무능하고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이때 우리는 완결할 수 있게 과제를 작게 쪼개야 한다.


책 한 권 읽기라는 목표는 이루기가 어렵지만, 책 한 챕터 읽기는 해낼 수 있다. 나의 목표가 한 권이 아니라 한 챕터로 쪼개어진다면, 성공 가능성은 커진다. 실행은 적게 했지만 완결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과제를 하나하나 수행하다 보면, 성공이 쌓이고 쌓여 처음에 목표했던 대성공에 닿게 된다. 큰 꿈을 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미해결 과제가 영원히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일 때도 있다. 몇 해를 도전해도 합격하지 못하는 시험, 매번 떨어지는 오디션, 아무리 잘하려 노력해도 나를 비난하고 따돌리는 조직, 나 혼자 노력하는 관계, 내 길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다양한 도전의 영역들. 이때 미해결과 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포기다. 포기는 무책임한 도망이 아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는 결론이 내렸을 때 가장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답안지이다. 다른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다. 이 선택에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 여태까지 들였던 시간과 비용을 모두 놓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삶은 포기했을 때 더욱 잘 풀린다. 사람을 놓고, 직장을 놓고, 꿈을 놓을 때, 그것은 인생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문을 열기도 한다. 모든 일이 최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많다. 그럴 때는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그렇게 전경을 치우고 새로운 전경을 맞이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우리가 손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뿐이다. 그러니 지나간 한 해가 채워 놓은 족쇄를 풀자. 그 열쇠 또한 나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그리고 이제 내일을 향해 달려가자.





**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 해가 아쉬운 여러분들과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위로와 용기가 되었길 바랍니다 :)


2023 남은 모든 날이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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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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