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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Jan 09. 2024

의지박약에서 의지력의 신으로!

심리학자의 자기조절력 향상법



틈새로 비추는 햇살이 언제나 다정할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책장의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삼 년 전, 책벌레들의 꿈 중 하나인 ‘세계문학전집 거실에 비치하기’를 이루기 위해 첫 번째 책의 계약금을 털었다. 320권에 달하는 세트를 이루는 책들이 거실 한 면을 차지한다는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설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책을 보관해둘 근사한 책장까지 들이기엔 이미 지출이 컸다. 결국 조립식 책장 세 개를 저렴하게 주문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책장은 제법 그럴싸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세 번째 책장을 조립하기 전까지. 마지막 못을 박는 순간 확실한 느낌이 왔다. 아, 잘못 박았다. 못은 자기 자리를 정확히 찾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갔다. 망치를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못은 더 틀어졌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박히다 만 못을 대충 꺾어 고정했고, 결국 합판과 합판을 간신히 연결하는 정도로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그 작은 못 하나가 큰 사태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세 개의 책장은 마치 커튼처럼 거실에 큰 창을 등지고 자리하며 우리 집을 암실처럼 보호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창틈, 아니 책장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책장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틈은 그리 크지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들어오는 빛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책장에서 책을 뽑는데 무언가 휘청이는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선반을 지탱하던 네 개의 나사 중 하나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세 개의 나사로 서른 권이 넘는 책을 얼마나 견뎌내고 있던 거니? 그리고 바로 어제 와르르, 책이 쏟아졌다. 책장이 무너진 것이다. 엉망이 된 책 무덤을 보는 데 왜 한심한 나의 몸이 떠오르는 것일까?


몇 해 전부터 나의 목뒤에는 혹 하나가 자라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들소라고 불리는 버펄로의 불룩한 혹과도 닮아서 버펄로 험프 혹은 목뒤에서 버섯이 자라는 것 같다고 해서 버섯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현상은 거북목이 일자목으로 진화함에서 멈추지 못하고, 목이 더는 머리를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생기는 문제다. 목뒤에 지방과 근육, 독소 등이 뭉쳐 섬유화가 진행될 때 혹이 생긴다. 이 혹은 살을 빼서도 사라지지 않고, 근육을 뺀다고 없어지지도 않고, 특수한 치료를 받지 않고서야 평생을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다 나의 몸뚱이는 이 지경이 되었는가.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취했던 자세 때문이었다. 책을 쓰고 논문을 보고 TV를 볼 때마다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 고개를 제자리로 당기고 척추를 바로 세우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물론, 바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안다. 그러나 잠깐만 이러고 있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오늘만 이러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이런 마음가짐과 몸의 편안함이 하루하루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비틀어진 못을 보고도,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방치한 것처럼 바르지 않은 자세를 우습게 보고 방치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른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한 해가 시작하면 사람들은 목표를 세운다. 그 목표는 대체로 거창한데, 그래서 거창하게 실패한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나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을 목표로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올해는 새롭게 마음을 먹었다. 조금만 더 버텼다가는 무너진 책장처럼 나의 척추도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했다! 올해의 목표 “바른 자세”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의지력이다. 자기 조절력, 통제력이라고도 불리는 의지력은 쉽게 말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달콤함을 포기할 줄 아는 능력이다. 날씬한 몸매를 위해 눈앞에 치킨을 먹지 않고, 건강한 간을 위해 당장에 술잔을 기울이지 않고, 목돈을 만지기 위해 사소한 소비를 멈추는 것. 이것이 의지력이다. 바른 자세를 위해 지금 불편해도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 나의 의지력이 될 테다.


나는 의지력이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의지력을 책임감으로 방어하며 살아왔다. 스스로 일찍 일어날 수 없기에 아주 비싼 영어 학원을 새벽 반으로 등록하고, 알아서 공부할 수 없기에 자격증 시험을 쉴 새 없이 접수했다. 혼자서는 글을 쓰지 못해서 출판 계약은 이중 삼중으로 잡아 놓고, 무리할 만큼 강의를 잡아 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프리랜서로 살다가 머니가 프리한 상태가 되어 굶어 죽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이 없으면 하지 않는 바로 의지박약자, 우리의 모습이다.


이렇게 책임감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바른 자세를 잡는 것에는 어떠한 책임도 따르지 않는다. 비뚤어진 자세로 앉는다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도(오히려 자세가 비뚤수록 일은 더 효율적으로 해낸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루하루 미루다 눈물 쏙 빼는 방학 일기처럼 되어버린다. 그래서 의지력이 필요한 어떤 일은 나와 같은 의지박약자에게 영영 해결할 수 없는 숙제가 된다.  

  

심리학자들은 의지력을 근육에 비유한다. 어떤 사람은 노력 없이도 적당한 근육질 몸매를 타고나지만, 어떤 사람은 몸이 뼈와 지방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물렁살 옷을 입고 태어난다. 의지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굳건한 의지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연약한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남들에게 별것 아닌 목표도 이들에게는 난이도 있는 과제가 된다. 그러나 멸치 형 인간이 거대한 허우대를 자랑하는 비포 애프터 사진은 쉬이 발견되는 것처럼, 의지력도 드라마틱한 비포 애프터를 만들 수 있다. 어떻게? 마음의 근력 운동을 통해서.


근육이 생기는 원리는 힘을 가해 근육을 찢고, 상처를 회복시키며 부피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근력 운동을 하면 다음 날 아프다. 아파야 회복할 상처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근력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에게 맞는 무게를 아는 것이다. 너무 쉽거나 지나치게 버겁지 않은, 회복될 정도로만 손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의 노력이 필요한 정도의 무게를 선택하여 반복하여 근육에 자극을 주는 것. 이 과정을 천천히 오래 반복하면 어느 순간 물컹했던 지방 아래로 단단한 근육이 자리를 잡는다. 


의지력이 근육과 같다는 말은 근육 키우는 원리로 의지력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 의지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목표의 무게를 아는 것, 너무 쉽지도 금세 지치지도 않을 정도, 가볍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애쓰지 않고 해낼 수는 없는 딱 그 정도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천천히 오래 반복하여 만만해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 조금 더 무거운 목표를 세우면 된다.


나는 수년간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고 한결같이 실패해왔다. 나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고 단기간에 빠르게 체지방을 감량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동기부여가 되면 필받은 상태로 무리한 운동에 몰두한다. 몇 개월 내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몸뚱이로 한 시간을 달리고 각성한 상태로 계단을 20층 오르고, 집에 와서 플랭크까지 도전한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내일 당장 이미 보디 프로필 촬영을 예약해도 될 기세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몸이 아프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몸을 썼기 때문에 근육통이 아닌 몸살이 동반되고, 목 뒤에 자라던 혹이 혹사를 당하면서 뒷골이 당긴다. 편두통과 함께 찾아온 괴로움은 운동의 의지를 꺾고 불타오르던 동기는 불타 없어진다. 결국 다시 필받는 날까지 몸뚱이는 겨울잠에 들어간다. 목표가 언제나 실패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의지력에 걸맞지 않은 목표를 세운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매일 아침 11시까지 늦잠을 자는 사람이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고자 한다면, 이 목표는 그 사람의 의지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가깝다. 하루아침에 다섯 시간 삼십 분을 일찍 일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정도는 가능할지도. 그러나 다음 날부터 리듬이 깨지면서 피로가 쌓이고, 다시는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럼 매일 20분만 더 일찍 일어나기로 목표를 바꾸면 어떨까? 습관이 되어 10시 40분에 일어나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느껴질 때, 그 사람의 의지력은 20분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제 무게를 올릴 차례다. 10시 일어나기로 의지력을 키우고, 편해지면 다시 9시 일어나기로 의지력을 키우고, 목표를 늘려나가며 의지력을 키우면 된다. 의지력은 이처럼 느리지만 반드시 시나브로 강해진다.     


나는 바른 자세를 되찾고 싶다. 그러나 열 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5분 만이라도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을 올해의 목표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이 목표를 과연 내가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의지력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당장, 테스트를 시작해 보려 한다. 


목표를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 가능성이다. 나는 5분 바로서기라는 목표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방금 목표를 실행에 옮겨 보았다. 글쓰기를 멈추고 서재 문에 발꿈치, 엉덩이, 어깨, 뒤통수를 대고 바른 자세로 섰다. 휴대전화로 타이머를 켜고 5분 서 있기를 시도했다. 다행히 성공. 조금 지루했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해냈기 때문에 이 정도가 나의 의지력의 감당 수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더 오래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멈추기로 했다. 무리하면 내일부터 하지 않을 테니까. 


5분 서기는 시간 날 때마다 시도할 예정이고, 5분 서기가 우스워질 때쯤 나는 10분 서기로 목표를 바꿀 계획이다. 그때가 되면 나의 의지력은 5분짜리에서 10분짜리로, 그러다 언젠가는 한 시간짜리로 진화하고, 바른 자세는 자연히 따라오리라.


새해가 시작된 지 일주일 하고도 이틀, 어떤 무리한 목표를 세웠었는지 돌아보자. 자신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진 않았는지, 그래서 벌써 포기하진 않았는지도. 혹은 몇 년간 실패를 반복해서 나처럼 목표 세우지 않기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닌지. 그럴 땐 목표를 조금 더 우습고 만만한 것으로 낮추자. ‘애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거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겠느냐, 무시하지 않아도 된다. 팔로 덤벨 운동만 한다고, 근육이 덤벨용으로만 발달하는 건 아니다. 한번 생긴 근육은 가방을 들 때도, 손잡이를 잡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줄 때도 사용될 것이다. 오늘 당신이 키우게 될 약간의 의지력은 보잘것없는 목표뿐만 아니라 당신의 삶의 모든 순간 곳곳에서 역량을 발휘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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