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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다. 좋다고 떠난 휴가지에서 고소공포증을 얻어 왔다. 건물 아래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 아트 뮤지엄에서였다. 언덕에 세워진 뮤지엄은 바다가 발밑으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던 남편은 다리에 힘이 풀린다며 강아지를 내게 안겼다. 올라가는 내내 조심하라며 놓치면 큰일 난다고 신신당부도 했다. 그런 모습이 우스워 장난을 치고 놀렸다. 그런데 점점 몸이 이상해졌다. 식은땀이 흐르고 속이 울렁울렁했다.
본격적인 증상은 집으로 돌아온 뒤 시작되었다. 저녁 시간이 선선해 콧바람이라도 쐬게 하려고 강아지를 안고 베란다로 나갔는데, 순간 머리가 핑 돌며 심장이 요동쳤다. 방충망도 닫힌 상태에서 강아지를 떨어트리는 장면이 마음에 침투했다. 이후 눈만 감으면 높은 곳에서 강아지를 떨어트리는 상상이 찾아와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특정 공포증이란 어떤 대상에 대해 비합리적 공포반응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뱀, 높은 곳, 불, 피에로, 막힌 장소 등 공포증의 대상은 다양하지만 나타나는 양상은 유사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공포 대상은 귀신, 어두움처럼 누구나 두려워할 만한 대상일 수도 있지만, 상자, 모서리, 돌고래처럼 뜬금없고 공감이 어려운 대상일 수도 있다.
원래 공포라는 감정은 우릴 보호하는 기제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밤길에 안타까운 일을 겪을 수 있고, 불을 겁내지 않는 아이는 손에 화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러니까 공포는 우리를 지키는 마음의 슈퍼맨이다. 하지만 슈퍼맨이 적절한 상황에 나타나 지켜줘야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면 곤란하다. 괜찮다는데도 따라다니며 과잉보호를 시작하면 아주 피곤해진다. 그것이 공포증이다.
공포증이 생기는 원리는 고전적 조건형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고전적 조건형성이란 아무 느낌도 없는 중성 자극이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과 짝지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엘리베이터는 그냥 엘리베이터다.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를 편리하게 만드는 은색의 네모난 탈 것일 뿐이다. 그러나 한번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면, 갇힌다는 공포와 엘리베이터가 연결된다. 이후로 엘리베이터만 타면 갇힐 수도 있다는 예상이 찾아오고 두려움 사로잡힌다. 이처럼 대부분의 공포증은 평범했던 자극이 공포를 주는 상황과 연결되면서 찾아온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존 B 왓슨은 고전적 조건형성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말은 그가 대단하다 못해 얼마나 교만한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나에게 건강한 아이 12명을 데려오라. 재능, 기호, 버릇, 적성, 인종과 상관없이 나는 그들을 의사, 변호사, 예술가, 기업가, 전문가로 만들 수 있다. 물론 거지나 도둑으로 만들 수도 있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은 고전적 조건형성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방증한다.
사람에게 공포반응을 학습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그가 마주한 호기심이었다. 왓슨은 앨버트라는 별명을 가진 어린 아기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앨버트에게 흰 쥐를 보여주었다. 앨버트는 신기해하며 쥐를 만지고 놀았다. 쥐는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중성 자극이었다. 그때, 연구진이 쇠망치와 금속 파이프를 부딪쳐 굉음을 들려주었다. 앨버트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연구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절차를 여러 번 반복했다. 쥐와 굉음을 함께 접한 앨버트는 어느 순간부터 쥐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앨버트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강아지를 보고도 울고, 모피코트를 보고도 울고, 심지어 산타클로스의 수염만 봐도 자지러졌다. 공포의 대상이 된 자극과 유사한 자극, 그러니까 흰 쥐처럼 하얀 털을 가진 모든 대상에 공포반응이 전이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포의 일반화다.
왓슨은 역조건화, 그러니까 공포 자극을 다시 원래 상태, 혹은 긍정적 반응을 이끄는 상태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앨버트를 돌려놓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했다. 아마 흰쥐만 봐도 행복해지도록, 즐거운 자극과 흰쥐를 재연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사로 인해 그는 학계에서 퇴출되었고 연구도 자연히 중단되었다. 앨버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수소문 끝에 찾은 앨버트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온갖 흰털만 봐도 공포반응을 일으켰던 작은 아기에게 세상은 두려움 천지였을 것이다. 공포와 스트레스로 긴장 속에서 산 몸이 건강하게 성장했을 리 없다.
한 아이의 인생을 망친 왓슨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마땅한 벌을 받고, 뉘우치며 살았을까? 전혀. 그는 또 다른 곳에서 영향력을 미치며 앨버트를 바꾸듯 세상을 바꿨다. 시내를 몇 걸음만 걸어도 카페 열 개쯤은 쉽게 보인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이 왓슨이라면 믿을 수 있는지. 언제부터 커피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휴식의 일환으로 자리 잡았을까? 과거, 휴식하면 떠오르는 건 담배였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오자는 말은 흔한 인사였다. 그런데 유명 커피 회사인 맥스웰하우스에서 ‘커피 브레이크’라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곧 휴식이라는 관념을 만들어 냈다. 커피 브레이크. 커피와 휴식을 연결하기. 익숙한 원리 아닌가? 그렇다. 이 아이디어의 제공자가 바로 왓슨이다. 쥐를 보면 공포가 생기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면 여유가 느껴지게 만든 사람이 바로 왓슨이다.
고전적 조건형성의 힘은 문화와 생활방식을 바꿀 정도로 강력하다. 12명의 아이를 원하는 모습으로 길러낸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처럼. 이런 원리라면 공포증은 누구에게라도 찾아와 삶을 위협할 수 있다.
공포증은 어떻게 해결할까? 꼭 해결해야 하는 걸까? 이를테면 돌고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나 생각해 볼 법도 하다. 살면서 돌고래를 보게 될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느냔 말이다. 그럴 때는 굳이 고통에 직면하면서까지 얻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해본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공포심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형성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연결고리가 끊어진다.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다. 공포증의 대상이 공포를 유발하는 상황과 짝지어지지 않아 연결고리가 마음에서 끊어진다면 어느 순간 대상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공포증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어느 순간 해결된다.
반면에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폐소공포증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거나, 반려 시대에 개가 무서워 공원을 지나칠 수 없다거나, 교통사고 이후 차를 타는 것이 불가능하다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현대 사회를 사는 데 방해가 된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이때는 마음보다 몸을 먼저 다루어 주면 된다. 몸과 마음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에 마주하면 신체 반응이 나타나는데 이때 신체 반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정서가 유발된다. 이를테면, 심장이 두근거릴 때 이를 감지하고 나 지금 무섭구나, 라고 해석하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포 자극을 접하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태세로 자율신경계가 각성된다. 심장이 뛰고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몸의 반응을 통해 심경의 변화가 있음을 알아채고 이를 해석함으로써 정서에 이름을 붙인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떨려올 때, 두렵다는 해석을 하게 되면 공포가 고조된다. 그러나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나 지금 설레는구나? 신체 반응에 대한 해석은 주관적이다. 그래서 신체 반응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보면 요동치는 감정을 다룰 수 있다.
격한 신체 반응이 나타날 때는 이성적으로 마음먹기가 어렵다.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미 부정적 감정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때는 신체 반응 자체를 줄여야 하는데, 긴장에 따른 신체 반응은 거의 통제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음먹는다고 심장 뛰는 속도를 조절할 수 없고, 소화를 촉진할 수 없고, 근육을 이완시킬 수 없다. 자율신경계 반응은 말 그대로 ‘자율’ 신경계 반응이기 때문에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폐다. 숨은 빠르게 마실 수 있고, 느리게 뱉을 수 있고, 잠시 멈출 수도 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실 때 산소는 폐에 가득 차고, 더 깊게 들이마실 때 손과 발, 머리끝까지 퍼진다. 힘이 들어갔던 몸이 이완된다. 다시, 숨을 내뱉으면 몸에 깃든 힘도 빠진다. 숨을 느리게 쉬면 긴장이 풀린다.
물론 갑자기 만난 상황에 호흡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공포 대상을 마주하기 전부터 충분한 호흡 연습이 필요하다. 숨을 깊게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길게 내뱉는 연습.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자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느린 호흡을 통해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면, 이제 공포를 마주할 타이밍이다.
고소공포증을 떠올리자. 높은 곳이라 해도 레벨이 존재한다. 바닥이 투명한 재질로 된 전망대나 그물망으로 만들어진 출렁다리는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한다. 상상 속 옥상이나 귀여운 그림체로 표현된 낭떠러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다. 그럼 우리는 가장 만만한 수준의 고소에 도전해야 한다.
눈을 감고 옥상을 상상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몸이 반응한다. 이때 폐를 다루자. 숨을 깊게 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뱉는다. 여러 번 숨을 쉰다. 어느 순간, 몸이 여름날 길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편안함에 이른다. 옥상을 상상해도 몸이 편안한 상태로 유지된다면 공포 극복 게임의 첫 번째 단계 도장을 깬 것이다. 이제 다음 레벨, 귀여운 그림체의 낭떠러지를 바라본다. 숨을 깊게 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뱉는다. 내 몸이 완전히 이완될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한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극복할 수 있는 공포 수준을 이겨내다 보면 가장 두려웠던 순간을 마주할 힘이 생긴다. 체계적 둔감법이라 불리는 공포증 치료 방법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무엇이든 자주 접하면 자극에 둔감해진다. 개 키우는 사람은 집에 나는 개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고, 공항 주변에 사는 사람은 소음에 무신경해진다. 공포 자극도 마찬가지다. 영화 <곡성>을 처음 본 날은 무서워서 악몽에 시달렸는데 네 번쯤 보니까 재미가 없더라. 예상되는 장면에서는 휴대폰도 만지작거리고, 그날 밤 피곤했는지 기절하듯 잠들었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일 수도, 경험에서 비롯된 좌절이나 상처일 수도 있다. 도망가지 말자. 맞서자. 그러나 무조건 들이대서는 안 된다. 아직 어린 아이같은 당신의 마음이 큰 괴물을 직접 마주했다가는 정말 졸도할지도 모른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만만한 공포에 조금씩 마주하자. 그리고 숨을 마시고 내뱉자. 두려웠던 세상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하자. 공포의 대상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 공포는 한풀 꺾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마음은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