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그 이야기
올여름은 유난히도 길었다. 곧 시원해질 밤을 기대하며 얇은 이불 꺼내기도 망설였던 나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콧노래를 불렀다. 물론 바꾼 이불 때문에 긴 여름이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일기 예보 속 숫자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9월에 접어들고도 열대야는 계속되었고,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에 갇힌 것 같았다. 시원한 시절이 있긴 했나?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인간이 패딩을 입고 생활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매우 생경했다. 너무 더웠고, 계속 더웠던 것 같고, 앞으로도 더울 것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봄 여어어어어어어ㅓ름 갈 겨우우우우우울이 될 거라는 괴담은 현실이 되고 있었다. 여름만 존재하는 세상에 사는 악몽을 며칠씩 꿨다.
그러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도 결국에는 꼬리를 내렸다. 가을. 이제 저녁 산책을 위해 긴 팔을 걸치는 것이 거추장스럽지 않다. 창문을 여니 선선한 온도가 코끝을 스쳤다. 시원한 바람이 커튼을 때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모든 일에는 끝이 있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다.
여름은 시련을 닮았다. 괴롭다는 것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도,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반드시 끝난다는 것도. 돌이켜보면 나의 학창 시절은 인생의 여름과 같은 시기였다. 나는 타의 반, 타의 반, 그러니까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등학교를 제때 진학하지 못했는데, 그후 일 년 늦게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서울에서 온 1년 꿇은 깍쟁이는 집단따돌림의 ‘타깃’이 되었다. 어렵게 들어간 고등학교를 다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음엔 오랫동안 생채기가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라는 노래를 였다. ‘참 옛말이란 틀린 게 없더군.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지더군.’ 5년, 10년이 지나면 괴로움이 잊혀질 거라고 믿으며 이 가사를 곱씹고 주문처럼 흥얼거렸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누가 묻는다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마저도 자주 떠오르지 않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그리 좋지 않아 모든 과거를 떠올릴 수 없다. 기억은 단서가 나타날 때라야 떠오른다. 이를테면 향수 냄새를 맡고 어떤 사람이 생각나거나, 노래를 듣고 시절의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을 떠올리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단서는 바로 기분이다. 현재의 기분은 기억을 끌어오는 단서가 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지금의 행복감이 단서가 되고, 덕분에 의식은 즐겁고 기뻤던 순간의 저장고에 빠르게 가닿는다. 기분이 나쁠 때는 불행감이 단서가 되어 우울하고 슬펐던 순간의 저장고로 빠르게 가닿게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기분일치 효과라고 부른다. 현재 기분 상태와 일치하는 기억이 더 잘 떠오른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기억과 현재의 기분이 같은 결을 가지다 보니, 마치 내 삶은 온통 그런 기분투성이인 일들로 가득 찬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언제나 감사하고 불행한 사람은 언제나 불평한다. 그래서일까? 시련의 기간, 인생의 여름을 지나는 동안에는 나에게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찾아온다고 느껴진다.
화불단행, 불행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정말이지 힘든 일은 비행 청소년처럼 떼로 지어 몰려온다. 사실 우르르 몰려오는 불행 친구들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이미 하나의 불행을 인지한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간 불행이라는 친구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중요하지 않다. 일단 그들이 몰려온다! 믿기로 마음먹는다면 무릎을 털고 일어나기는 여간 어렵지 않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라는 축복이 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시간만이 해결해준다. 그래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된다.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한 청년의 중학생 동생이 울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왔단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모양이었다. 청년은 귀여운 동생을 달래줄 요량으로 깎은 사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생떼를 부리며 안 먹는다고 당장 나가라고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잠시 후, 방에서는 아삭아삭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삭아삭.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해지는 마음. 우리의 삶은 이런 일들의 연속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를 가장 괴롭게 했던 건 무엇일까. 끝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아니었을까? 마음 놓고 외출하는 삶이,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는 삶이, 사람과 사람이 흘겨보지 않고 곁을 지나칠 수 있는 삶이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까 봐 우리는 두려웠다. 누군가 만약 3개월 내에 종식한다고, 1년 내에 종식될 거라고 약속해줬다면 우리는 웃으며 견뎌냈을 것이다. 끝이 있는 두려움은 두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끝을 예상할 수 없었기에 영원히 머물 것 같다는 마음에 갇혀 있었기에 우리는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보자. 결국 끝났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끝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다. 끝날 줄 모르는 일도 결국에 끝난다.
시간은 많은 걸 해결한다. 경험적 증거는 많다. SNS에 감정 섞인 글을 쏟고 후회하는 사람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침이 되면 화들짝 놀라 삭제 버튼을 누르고 이미 올라가 버린 조회 수에 좌절하면서도 밤이 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밤에는, 감정에 사무친 순간에는 회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룻밤만 지나가도 슬픔은 떠나간다. 감정에는 끝이 있다.
어떤 일들은 이미 일어나버려서 마음의 회복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회복은 시간이 할 일이다. 그런 일이라면 시간이 흐르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도 괜찮다. 물론 기다리는 시간이 쉽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여름날, 강아지와 산책을 떠났다. 아스팔트가 뜨겁다 보니 요리조리 햇볕을 피해 그늘로만 다니도록 리드 줄을 열심히 끌어당겼다. 그래도 냄새 맡는 데 여념이 없는 강아지는 여지없이 내리쬐는 인도 중앙으로 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덥다는 걸 깨달은 강아지는 걷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몇 걸음만 옮기면 시원한 그늘인데도 미련하게 가장 뜨거운 자리에서 버티고 서있었다. 귀엽고 짠했다. 너무 뜨거울 때는 그늘로 피하면 되는데 말이다.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 한, 더운 날은 그대로 겪어내야 할 운명이다. 무더위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야 한다. 우리는 무더위를 꺾을 수 없다. 그러나 무더위를 피할 수는 있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햇볕이 가장 뜨거운 곳에 고집을 부리고 버티고 있을 것이냐, 그늘에 잠시 숨어있을 것이냐,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시원한 곳에서 잠시 기다리다 보면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생채기가 날 때가 있다. 생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물어간다. 물론 아문다고 해서 흔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흉터는 남는다. 행복한 사람은 흉터를 보며, 예전에 참 아팠는데 지금은 아프지 않다고 감사한다. 불행한 사람은 아물어가는 흉터를 쥐어짜서 다시 상처로 만든다. 그러면서 과거의 아픔을 계속 유지한다. 회복의 시기는 당연히 길어지고 미뤄진다. 인생의 여름이라는 시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흉터가 잘 아물도록 그늘에 머무는 것, 그리고 흉터가 덧나도록 따가운 해 아래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
처서 매직이라는 말이 있다.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처서만 지나면 마법처럼 한풀 꺾인다는 뜻이다. 더위는 서서히 식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떠난다. 어제는 여름이었는데 갑자기 가을이 되어 버린다. 인생의 여름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그때 그랬지! 하며 과거가 되어버려 있다. 죽을 것 같던 순간이 지금과는 뚝 떨어진 세상이 된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 온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온 우리는 제법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다.
힘겨운 시절에 큰 힘이 되어준 시가 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광화문 글판에서 만났던 이 시는 인생의 여름을 지나가는 시기에 나를 위로했다. 그래, 나도 이 시기를 지나면 저 예쁜 대추를 닮아있겠지. 태풍, 천둥, 벼락을 지나 결실이 된 가을 대추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을 징검다리 삼아 밟고 가다 보면 우리 삶은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인생의 처서 매직은 가장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시원한 어느 가을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