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반복의 굴레 아래서.
엄마와 제주에 갔을 때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사려니 숲길은 입구가 배리어프리로 잘 조성이 돼 있고, 초입 1~2km만 걸어도 원하는 사진은 찍을 수 있다. 그날은 비가 온 뒤였다.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다들 돌아서는 길목에서, 엄마와 나는 봤다. 운무 속에서 표표히 모습을 드러낸 진짜 사려니숲길의 모습을. 거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우리는 조금만 걸어볼까 하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4km가 넘어가자 되돌아가기가 애매해졌다. 앞으로 남은 건 절반,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경로를 지나쳤다. 진흙을 밟으며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6km가 넘어갈 즈음 우리는 지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계속해서 아빠와 통화를 했다. 집 문제였다. 엄마가 자꾸 뒤처졌다. 고관절이 아프다고 했다. 곳곳에 멧돼지 출목 구역이라는 푯말이 너무 무서웠고, 우리 둘 말고 아무도 없는 길이 아주 많이 낯설었다. 10km를 끝까지 걸어 드디어 맞은편 출구에 당도했을 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내 핑크색 컨버스는 진흙범벅이었고, 땀이 흘렀다 식기를 반복해 오한이 났다. 그럼에도 편백의 치유능력이란 실로 놀라웠다. 몸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가벼웠다. 엄마를 생각하면 조금 미안했지만, 끝까지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딸과 단둘이 여행을 와서도 아빠와 집안일로 수시로 통화해야 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인생이 징하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관계가 진절머리 난다. 어차피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을 알면서 꼼짝없이 계속 가는 건, 결국은 끝이 날 걸 알기 때문인가? 호흡이 다하는 순간에 어차피 모든 것은 끝날 테니까. 아니면, 지금 당장 끝장을 내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건가?
사람들은 밤이 되면 잠들 텐데도 매일 아침이면 일어난다. 툴툴거리면서도 회사에 가기를 계속한다. 집에 가면 지울 화장을 매일 아침 정성들여 한다. 또 더러워질 것을 알면서 청소를 한다. 숙취에 시달릴 걸 알면서 술이 깨면 또 술을 마신다. 헤어질 걸 알면서 연애를 시작하고, 다시 만날 걸 알면서도 싸우고 헤어진다. 꽃은 겨울이면 질 것을 해마다 봄이면 피어나고, 나무는 먹힐 것을 알면서 매번 새 열매를 낸다. 잔디는 깎아줘도 계속 자라고,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건데 아프면 매번 병원에 가서 여기저기 고쳐댄다. 자기 삶을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아이들을 낳는다.
프로메테우스를 만나면 묻고 싶다. 당신의 결정에 후회는 없냐고. 쪼아 먹혀도 다시 차오르는 새 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냐고. 시지프스는 그래서 영원히 행복할 수 없었을까? 아니면 돌을 굴려 올리는 와중에 변하는 주변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생겼을까? 종종 마음에 드는 꽃을 밟지 않으려 우회하기도 했을까? 가끔은 물소를 만나 도움을 얻기도 했을까? 구덩이에 빠져서 옴짝 달짝할 수 없이 지옥 같은 순간도 있었을까?
연애라는 게 그런 건가 생각해 본다. 매번 같은 걸로 싸울 것을 알면서도 매번 조금씩 다른 결로 고통받기를 택하는 것. 나는 연애의 소소한 싸움마저 사랑해서 계속해보고 싶었다. 이건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만약 결혼식을 올릴 상황이 내 생에 온다면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 주례 대신 각자 편지를 읽는다. 그 편지 안에는 서로가 생각하는 서로의 단점과 우리가 싸웠던 수많은 이유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써넣었다. 각자 써온 편지를 읽는다. 아주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다 빠짐없이 읽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물을 것이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스므 레터를 빠짐없이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적어둔다. 제가 최근에 이별해서 또 이렇게 미련 철철 넘치는 글을 쓰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