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도 Oct 19. 2022

00야, 사람들이 이상해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한다

"00야, 사람들이 이상해"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사망한 20대 여성 직원의 남자친구가 보낸 카톡 메시지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안전하게 퇴근하라며 메시지를 보냈고 오늘 마지막 휴식 시간에 안 나왔냐고 다정하게 물었다.


그리고 답이 없는 여자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다 주변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들려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했다...


더 이상은 짐작하지 않겠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동기와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다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서로 약속한 것처럼 "우와, 청춘이다" 한 적이 있다.


아마 국어사전에서 청춘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읽고 AI가 그림을 그린다면 딱 그렇게 그렸을 것 같은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었다.


이들 역시 지나가다가 마주쳤으면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일터에서는 15kg 무게의 통을 쌓고, 뜯어서 소스를 배합하는 기계에 넣고, 롤치킨에 대비해 데리야끼 치킨 500봉을 까고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고 일터 밖에서는 보는 이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연애를 하고...


사고는 2022년 10월 15일에 일어났다. 사고 이틀 뒤에 이들은 2박3일 부산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둘 다 처음 가는 부산여행에 많이 설레서 여자친구가 교통편, 숙박 등을 모두 예약하고 여행 코스를 모두 짰다고 한다.


지금쯤 이들은 부산에 있어야 한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오는 카페나 맛집에 갈 준비를 하며 이 아침에 여행의 피로를 풀고 있어야 맞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SPC는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거다. 이번 산재 사고와 비할 것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여러 작업을 할 때 위험한 순간마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사관과 병사로 마주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직업 군인 대 대학생으로 마주했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을 일들이 '작업'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위험천만하게 행해진다.


SPC의 수많은 공장들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산재 사망 사건이 발생하는 기업들 역시 군대가 굴러가는 사고방식과 전혀 다를 것 없이 직원을 대하기에 생기는 문제다.


그래도 되니까, 월급을 주니까, 회사가 안 망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원래 일은 고된 거니까,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등등의 말도 안 되는 말로 사고를 자행한다.


또 사과한다. 그때뿐이다. 잊을만하면 또 터진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나마 바뀌는 시늉이라도 하거나 진짜 바뀌었을지 몰라도 요즘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산재로 인한 사망사건이 터지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상금을 강하게 물리는 것이 그나마 답일까...


결국 사람이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한다.


브랜딩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할 때 식품 공장 현장이나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의 사무실에 가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지원자가 꽤 있었는데, 요즘은 그 회사에 올라간 리뷰 때문인지 지원자가 줄었어요"라며 눈을 무섭게 부라렸다.


그리고 "요즘 다들 눈높이가 높아져서 '좋은 회사'를 찾아다니는데, 실상 월급 밀리는 회사들도 비일비재해요. 여기는 그런 적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운영해도 회사가 굴러가도 문제없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곳 외에도 HR 플랫폼은 많고 직장에 대한 진솔한 리뷰들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그리고 이걸 본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할지 말지 결정한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한다. 내 사업이 망할까 두려워서라도 안전장치 제대로 설치하고 2인 1조, 3인 1조 같은 규칙 어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김훈 작가의 글을 필사한다.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


이웃에 사는 젊은 후배가 지난 11월21일자 경향신문을 가져와서 보라고 내밀었다. 신문 1면에는 2018년 1월1일부터 2019년 9월 말까지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천2백명의 명단이 실려 있었다.

하단 광고를 들어낸 그 넓은 지면은 별다른 편집적 장치나 해석이 없이 깨알 같은 활자만을 깔아놓고 있었다.

거칠고 메마른 지면이 눈앞에 절벽을 들이대고 있었는데, 강력한 편집자는 멀리 숨어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종이신문 제작에 종사했지만 이처럼 무서운 지면을 본 적이 없다.


‘김○○(53·떨어짐)’처럼 활자 7~8개로 한 인생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1천2백번을 이어나갔다.

이 죽음들은 한 개별적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나락으로 밀려 넣어지는 익명의 흐름처럼 보였다.

떨어짐, 끼임, 깔림, 뒤집힘이 꼬리를 물면서 한없이 반복되었다.


과장 없이 말하겠다. 이것은 약육강식하는 식인사회의 킬링필드이다.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처럼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 


11월21일자 경향신문 1면에서는 퍽, 퍽, 퍽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추락, 매몰, 압착, 붕괴, 충돌로 노동자의 몸이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다. 노동자들의 간과 뇌가 쏟아져서 땅 위로 흩어지고 가족들이 통곡하고,

다음날 또다시 퍽 퍽 퍽 소리 나는 그 자리로 밥벌이하러 나간다.


죽음의 자리로 밥벌이하러 나가는 날 아침에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지 이 신문 2면 기사에 실려 있다.

31살의 박○○은 타워크레인 업체에서 면접 보고 온 날 아내에게 말했다.


“26일부터 나오래. 한 달에 이틀 쉬어. 급여는 150만원보다 조금 높아. 6개월에서 1년 정도 부사수하다가 사수 달면 300만원부터 시작한대.” 그는 취업했고, 출근한 지 사흘 만에 지반침하로 무너지는 크레인에 깔려 숨졌다. 


경향신문의 김지환 기자가 이 기사를 썼다. 나는 소설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지만 김지환 기자가 전하는 박○○의 마지막 말 같은 대사를 쓸 수는 없다. 박○○의 말은 대사가 아니라, 땀과 눈물과 고난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한 생활의 고백이다. 팩트만을 전하는 그의 무미건조한 말에는 그의 소망이 담겨 있고, 젊은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과 책임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몇 년 후에 사수가 되어서 아내에게 월 300만 원을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는 사수를 달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두어 줄의 기사로 지면 위에 남아서 그의 소망과 사랑을 킬링필드에 전한다.


이 뿌리 깊은 야만은 이제 일상화되어 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떼죽음하는 이 킬링필드에서 이윤의 집중과 책임의 소멸이 구성되고 작동되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일류 논객들이 명석한 분석력과 날선 문장으로 그 문제점을 규명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서 더 이상의 언설은 이미 필요 없어 보인다.


늘 그렇지만 빛나는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말은 늘 넘치고 넘친다. 이 시대의 말은 짧은 목줄을 차고 이쪽저쪽의 말뚝에 바싹 묶여 있다. 말이 저 자신의 목에 목줄을 채운다. 말들은 양쪽으로 묶여서 서로 마주보며 짖어대는데 그 사이의 현실의 땅바닥으로 사람들의 몸이 떨어져서 으깨진다. 말은 들끓고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노동현장의 안전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많은 재원이나 고난도의 기술이나 정의로운 말이 필요하지 않다.

돈이 없고 기술이 없고 말이 모자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넘치되, 그 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없으니 능력은 있으나 마나다.


능력을 작동시킬 능력이 마비되는 까닭은, 이 마비가 구조화되고 제도화되고, 경영논리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깔끔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십 년 동안, 퍽 퍽 퍽은 계속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다. 말로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참담하다. 노동자들이 몸이 터져서 죽으면 사업체 대표나 담당관리들이 빈소에 와서 ‘명복을 빈다’는 화환을 들이민다.


나는 ‘명복을 빈다’라는 말에 분노를 느낀다.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명복을 빈다니, 노동자들은 명복을 누리려고 고공 작업장으로 올라가는가. 명복은 없다. 경향신문 1면을 들여다보면, 그 1천2백 위의 원혼들이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청와대나 정부청사, 국회의사당이나 사고가 난 작업장 근처의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 묵으면서 밤마다 거리에서 통곡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분하고 억울해서 못 가는 것이다.

내 무력한 글로 지껄이고 따지느니보다 저 여인숙의 원혼들과 끌어안고 함께 통곡하는 편이 더 사람다울 것이다.


나는 대통령님, 총리님, 장관님, 국회의장님, 대법원장님, 검찰총장님의 소맷자락을 잡고 운다. 나는 재벌 회장님, 전무님, 상무님, 추기경님, 종정님, 진보논객님, 보수논객님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운다. 땅을 치며 울고, 뒹굴면서 운다. 아이고아이고.


박○○ 아이고 서른한 살 아이고
OECD 아이고 삼만 불 아이고
내년에도 퍽퍽퍽 후년에도 퍽퍽퍽
대한민국 아이고 공정사회 아이고  


#산재 #사망사고 #SPC #20대 #청춘 #필사 #김훈 #필사의밤

작가의 이전글 찬바람이 불면 <나의 아저씨>를 틉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