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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Nov 19. 2023

홍콩 여행에서 "시원찮다"를 연발하던 그 어머니

감정은 쉽게 전염된다. 그러지 말자 

침사추이역에 내려 바다 쪽으로 걸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가족과 떠난 해외여행이었고 8년여 만에 찾은 홍콩이었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가 예약한 배를 찾아 떠났다. 


뱃놀이를 위해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을 배경으로 떠다니는 배들 사이에 우리가 탈 배도 있었다. 빛나던 홍콩의 황금기를 연상시키는 옛날 나무 스타일의 배는 눈에 확 들어왔다. 



그 배를 보면서 기대가 커졌고 다 같이 들떠서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으면서 대기 장소에서 기다렸다. 짧은 일정과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넘어올 때 겪은 뱃멀미 때문에 모두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탄 배에서 2층으로 올라갔다. 등을 기대고 눕듯이 편하게 앉아서 맥주와 음료를 마시면서 야경을 보는 뱃놀이에서 푹 쉬면서 세상 편하게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문제는 저녁 8시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A Sympony Of Lights)'가 시작된 뒤였다. 홍콩의 높은 건물들에서 쏘는 불빛들이 밤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 시간에 배에 탄 모든 이들은 거기에 시선을 집중하며 즐겼다. 


그런데 우리 가족 옆에 앉은 모임에서 "시원찮다"라는 말을 한 어머니가 연발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 이모들이 온 것 같은 모임에서 엄마의 시원찮다는 말이 시작되자 딸은 난감해했고 같이 온 자매들의 표정도 굳었지만 그 어머니는 계속 같은 말을 연발했다. 


무시하고 뱃놀이를 최대한 즐긴 뒤에 배에서 내렸지만, 내릴 때 마주한 그 딸의 난감하고 화난 표정과 정반대로 평온하던 그 어머니의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장성한 자녀들이 밥을 살 때, 여행을 데려갈 때, 선물을 줄 때 "그냥 그렇네" "시원찮네" "별 거 아니네"와 같은 말들을 하는 것이 어떤 부모에게는 미덕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홍콩 뱃놀이 속 그 어머니도 시원찮네를 연발하며 속으로 우리 딸 덕에 좋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고맙다" "덕분에 좋았다" "같이 해서 행복하다" 이런 말을 하는 부모가 사랑받는다. 뭐라도 하나 더해주고 싶다. 같이 다닐 때도 좋다. 선물 하나를 할 때도 더 신경 써서 고르고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대하게 된다. 내 아버지는 내가 운동화를 선물할 때마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바로 신어보고 거울에 비춰보며 즐긴다. 그 모습에 내가 더 기뻐진다. 


시원찮다던 그 엄마와 어쩔 줄 몰라하던 딸이 다음 여행에서는 서로 "좋다"를 연발하며 시원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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