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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블 May 22. 2020

나는 왜 군인이 되었는가

현실적인 욕망과 군인의 본질

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나에게는 언제나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나는 왜 군인이 되었는가?


부사관에 지원하고 선발절차 중의 하나로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지원동기를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라고 대답했고, 면접관은 그 '동경'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보았다.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좀 더 어렸을 때만 해도 군에 대한 열망이나 동경 따윈 없었으니까. 나의 어릴 때 꿈은 호텔리어, 제빵사, 골프선수, 자동차 정비사 등 다양했지만 그중에 군인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군인이 되었는가? 나의 꿈이 현실적인 목표로 바뀐 것은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시점부터였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인문계로 진학, 수도권의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하여 최종적으로는 유명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게으른 학생이었고, 당연히 성적은 좋지 못했다.


결국 재수를 선택했지만, 학창 시절에 하지 않았던 공부가 졸업했다고 잘 될 리 없었다. 실망한 부모님은 공무원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현장 강의에서 맨 앞줄을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학원 앞에 박스를 깔고 앉아서 문제를 풀거나, 사사로운 욕망을 모두 버리고 기숙학원에 투신할 정도의 열의도 없었다. 한마디로 미래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상태였다.


그즈음 고등학교 동창 중 몇 명이 부사관 지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재수를 할 생각도, 공무원을 할 생각도 별로 없었던 나는 부사관이 편리한 대안이는 생각에 도달했다. 부사관의 선발절차는 공무원에 비해 어렵않다고 느꼈고, 장교처럼 학사 이상의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체력 정도였다.


결국 약간의 사회부적응과 깊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나는, 단지 안정적인 직업을 비교적 쉽게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불순한 동기로 군인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2시간 동안 연병장에서 좌굴러 우굴러를 반복한 끝에 빙글빙글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입안 가득한 모래먼지를 느끼던 나는, 이미 자신의 선택에 대해 돌아볼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나의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은, 지옥 같은 기초훈련이 끝나고 자대에 배치된 이후였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군생활에 대한 회의감만 가지고 있었을 뿐, 군인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계기는 그로부터 2년쯤 뒤였다. 업무 중 얼마간의 여유가 생겼고, 나는 이미 십수 년의 군생활을 경험한 선임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선임이 나에게 군에 지원한 동기를 물었고, 나는 평소 생각하던 대로 안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서 지원했다는 대답을 했다.


내 대답을 들은 선임은 살짝 웃더니, 자신이 예전에 친지의 가족과 식사를 함께 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친지가 본인의 자녀에 대한 불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공부도 못하고 게으르다며, 한심하다는 투로 한참을 이야기하고는 아들을 빨리 입대시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갑자기 입대는 왜요?"


선임이 묻자, 불평을 늘어놓던 친지는 군대에 가면 사람이 고쳐진다, 자신의 아들도 입대를 시키면 나아질 것이다 하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선임이 친지에게  대답은 이러했다.


"물론 군생활을 통해서 해서 생활습관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자부심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군대가 마치 불성실한 사람들을 갱생시키는 곳인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럼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취급하시는 겁니까?"


이 말을 들은 선임의 친지는 얼굴이 빨개졌고,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까지 군에 대한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나에게 모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선임의 친지와 내가 군에 바랐던 점은 다르지만,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인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바람만 생각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들의 변화를 바랐던 선임의 친지나, 안정적인 수입원으로만 생각했던 나나, 군의 본질을 가슴 깊이 새기고 생활하는 수많은 군인들에게는 모욕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다. 어렵고 힘든 군생활을 이상만으로 버틸 수도 없다. 다만 군인이 이해타산 만으로 할 직업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안정된 고용, 괜찮은 수입, 다양한 복지 정책 등 물질적인 매력도 분명하지만 군인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다. 나 또한 비록 군에 발을 들인 첫 동기는 달랐지만, 결코 군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이 글을 읽는 미래의 직업군인 분들도 본인이 군인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이 군인의 본질에 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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