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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블 Jun 14. 2020

빈둥빈둥 보내는 휴일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휴일을 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다.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다소 위축된 풍경이지만 예전이었다면 가족과 외식을 한다던지, 쇼핑을 한다던지, 친구들과 모여서 게임을 즐긴다던지, 영화를 보거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고 여행을 다니는 등 다양한 풍경들이 있었을 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입대 전에도 쉴 수 있는 날은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에서 쉬면서 독서나 게임, 프라모델 등 개인적인 취미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밖에 나가는 경우는 외식이나 쇼핑 정도이고 야경을 좋아해서 종종 밤 산책을 즐기는 정도였다.


이런 생활방식은 내향적이고 도전의식이 약한 성격 탓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휴일에 대한 정의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휴일이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날이라는 생각보다는 한 주간 쌓인 피로를 풀고 재충전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휴일을 활용해서 지인들과 어울리거나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혼자서 편안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입대를 하고 지금의 자대에 오고 나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는데, 내 성격이나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 처해있는 환경 때문이다. 직업군인은 원칙적으로 퇴근 후나 공휴일에는 행동이 자유롭고, 특히 공군의 경우 위수지역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내가 근무하는 부대는 도시에 인접하지 않은 오지에 있다는 것이다. 숙소 주변엔 산과 계곡뿐이고, 읍내에 나가려면 버스로 한 시간, 거기서 다시 주변 도시로 가려면 기차나 버스로 1~2시간을 더 가야 하는 데다 애초에 숙소에서 읍내를 연결하는 버스가 하루에 손에 꼽을 정도밖에 다니지 않아 제약이 상당하다. 단순히 마트에 빵이나 시리얼 같은 식료품을 사러 가더라도 일정을 계획하고 움직여야 하는, 꽤나 성가신 환경인 것이다.


게다가 읍내에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영화관,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대형 여가시설도 없어, 안 그래도 외출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더더욱 외출할 이유를 뺏어가 버리고 말았다. 물론 차가 있으면 행동이 훨씬 자유로워지겠지만, 아직 뚜벅이 신세를 못 면했기에 불편한 대중교통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매일 초록빛에 둘러싸인 풍경만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도 없던 답답함마저 생기게 되어, 비록 가는 길이 힘들고 오래 걸린다고 해도 종종 큰 맘먹고 주변 도시에 다녀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주변지역이 위험지역으로 지정되어 이동이 통제되면서, 요즘엔 나갈 일이 정말 없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휴일 대부분을 침대에 달라붙은 채로, 태블릿으로 독서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며 때우게 되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신체적으로는 피로할 일이 없고, 때문에 휴일은 재충전하는 날이라는 나의 모토에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모습이지만 몇 개월째 비슷한 휴일을 보내고 있으려니 때때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입대 전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입대 후에도 한동안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느라 바빴을 때는 분명 아무리 쉬어도 부족했는데, 요즘엔 나도 모르게 재미있는 일을 찾게 되는 모습에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큰 맘먹고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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