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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블 May 22. 2020

군인이기에 할 수 없는 것들

관종 악마와 월급쟁이 천사의 아슬아슬 줄다리기

인이 되고나서 나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타인과 대화를 하거나 채팅을 할 때 한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다. 갑자기 인생의 중대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이다.


난 직업군인이다. 군인에게 당연히 따라붙는 문제는 바로 보안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라고 하지만, 적어도 현직에 있는 나에게는 부대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가족과 친구에게 풀어놓고 싶어 진다. 만약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어떤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대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나는 군인인 것이다.


부대 내 장비의 배치, 훈련이나 행사 일정 등은 모두 보안에 접촉되는 사항으로서 결코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내용을 떠벌리진 않는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민감한 내용을 말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대화중에 일어나는 실수는 적당히 무마하면 그만이지만 채팅이나 sns에 올린 게시물들은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은 흔적이 남을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나의 관종 끼는 입대 이후로 상당 부분 봉인되어야 했다.


내가 입대 이후 가장 유혹을 느꼈던 부분은 sns에 올릴 프로필 사진이었다. 실제로 인터넷에 검색하면 군복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수많은 질문들이 있다. 이름만 안 나오면 되는 것인가, 계급까지 가리면 되는 것인가, 특기나 부대마크도 가려야 하나 등 하나같이 면책을 바라는 질문들이지만 군 내의 기조는 결국 '지양'이다.


이렇다 보니 이젠 단순한 풍경 사진 하나에도 민감해지게 된다. 부대 밖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이라도 혹시나 부대시설물이 찍히진 않을까, 부대 인원이 찍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게 된다.


군인으로서 답답한 또 한 가지는 주변국의 도발이나, 정치적인 이슈 등 시사적인 부분이다. 군인의 말 한마디가 군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와전될 수 있기에, 군인들은 결코 민감한 시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필자도 짧은 군생활 동안 다양한 군사적•정치적 빅 이벤트를 겪었지만, 그런 사안들에 대해 외부에 구체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군인은 주어진 임무를 책임감 있게 완수하면 그만일 뿐, 정치•사회적인 문제들은 군인이 참견할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군인이기 이전에 개인으로서 때때로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더구나 때때로 사생활의 영역까지 통제당하니, 관종끼가 다분했던 나로서는 유혹을 참기가 어려웠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로 직장을 잃을 수는 없는 법. 결국 나는 군대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덜어냈다. 덕분에 그들은 군대라는 지루한 주제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나는 내 일상에 공감해 줄 사람이 사라진 셈이 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엔 말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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