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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Sep 05. 2018

천천히 적응 중

다름을 인정하기


내방 침대 쪽은 벽 하나를 두고 바로 앞이 부엌이었다.

아침이 되면 딸그락딸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을 뜨기도 했다.

내 방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룸메가 있어서 인지, 누간가와 같이 있다는 기분이 항상 들어 눈이 갑작스럽게 떠질 때도 많았다.

한국에서 매일 일찍 일어나서인지 방이 불편해서인지 브리즈번에 도착해서 늦잠을 잔 적이 없었다.

늦어도 9시 30분이 되면 항상 눈이 떠졌다.

어학원은 5시부터이지만 아침에 눈을 떠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하고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영어 공부도 하고 산책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브리즈번 시티 산책 중 흔한풍경



제나의 혼커
항상 맑은 브리즈번
파란 눈 러버덕




브리즈번엔 도서관이 참 많다. 도서관 건물은 하나같이 다 예쁘다.

브리즈번 강 따라 도서관이 있어 강 뷰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다.

도서관답게 차분하고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이지만 꼭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소리, 사람들이 토론하는 소리 등 다 다 들렸지만 누구 하나 심기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도서관에서 그런 소리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데.. 처음엔 너무나도 거슬려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소리들이 어느새 익숙해져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앉아 있는 모습들도 다 제 각각이었다. 자기가 편하다고 느끼는 자세로 자기 할 일을 했으며, 너무 더운 날엔 웃통을 벗고 책일 읽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엔 너무 놀래서 시선을 회피했지만 이젠 웃통을 벗고 지나가는 사람들이던, 맨발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던 그러려니 하며 지나간다.

배가 살살 고플 때면 싸들고 갔던 샌드위치를 벤치 위에서 먹거나 잔디 위에서 먹었다.

혼자 먹고 있지만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쑥떡 쑥떡 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주위엔 늘 항상 혼자 먹는 사람들이 있는 흔한 풍경이며 일상이었다.

그렇게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던 브리즈번의 봄바람을 맞고 있으면 세상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주말 아침엔 하우스 메이트따라 마켓도 가고 밤엔 불꽃놀이와 축제도 다니며 브리즈번에서의 주말을 보냈다.

더 이상 시티 안에서는 구글맵이 필요 없을 만큼 브리즈번에 익숙해져 갔다.



도서관들
구르미
흔한 브리즈번의 도서관 뷰
알록 달록한 건물이 도서관




불꽃놀이 하던 밤
그림 같아 -
시티 야경








26년간 살면서 어딘가에 항상 소속돼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까지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땐 회사에 소속돼있었다.

약 5개월의 백수 생활이 있긴 했지만, 2달 정도는 여행한다고 바빴으며 나머지 2개월은 롯데 고용 디딤돌- 바리스타 과정을 밟고 있어 거기에 소속되어 있었다.

나머지 한 달 정도는 제주도 여행 뒤 2주 정도의 취업준비 후 취업을 해 또 다른 회사에 소속되었다.

한국에서는 항상 소속감이 드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브리즈번에 어느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정신 차려 보니, 난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난 더 이상 학생, 취준생, 회사원도 아니었다.

어학원도 학교는 아니었기에 크게 소속감이 드는 곳이 아니었다.

하루에 4시간 수업 후면 끝이었다. 거기다가 외국인들과 듣는 수업이었기에 이질감이 더 컸다.

무의식적으로 소속된 곳에서 주는 안정감에 조금은 의존했었나 보다.

호주에 혼자 이렇게 있으니 세상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도 내가 해야 할 것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그럴 때면 침대에 누워서 창밖을 보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정말 쫓기듯이 대학생이 끝나자마자 취업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천천히 가도 됐는데, 왜 그렇게 숨 가쁘게 취업을 했을까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아마도 주변에서 다 하니까. 그게 정답인 마냥 그것만 골라야 하는 줄만 알았다.

24살도 늦었다고 생각했다. 졸업 하기도 전에 취업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줄줄이 다 취업을 하고 있었다.

늦은 것도, 정답도 아니었는데. 그땐 몰랐다. 천천히 가도 되는걸.


브리즈번 초기 때는, 학생-직장인에서 더 나아가야 했는데 다시 뒤로 돌아와서 멈춘 기분이 더 들기도 했다.

그렇게 멈춰서 보니 혼자만 멈춰있고 다들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눈에 보이는 성장을 하고 있는데 나만 뒤쳐지지고 있는 게 아닌지.

내가 지금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대리를 달고 있는 친구가, 자기 가게를 내고 있는 친구가, 3-4년 차 선배가 되어가고 있는 친구를 보며 내심 부럽기도 했다.

나는 지금 조금 천천히 가는 것일 뿐인데 처음엔 불안하고 초초했다.

갑작스러운 멈춤이 이런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내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됐을 때 또 이런 생각을 한다면 26세는 절대 늦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때는 그래도 됐다고. 다 똑같이 살 순 없다고.  

100세 시대에 2-3년 늦은 건 티도 안 난다고.

나는 충분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나의 경험들이 나중에 더 값져질지도!

그 때 그 순간 하지 않은 것들을 후회하는 삶은 최대한 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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