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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Nov 27. 2018

드디어 호주 워킹데이

knock?knock?knock? House keeping ~~

어학원에 딱 한 명 있는 한국인 주디랑 조금 친해졌을 때쯤 주디가 물었다.

주디는 브리즈번 시티 한복판에 있는 카지노 타워에서 하우스키핑 일을 하고 있었다.

혹시 하우스키핑 일 할 생각이 있으면 매니저한테 물어봐주겠다고.

어학원 다니는 동안은 최대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집 사람들이나 주위 사람들을 보니 브리즈번에서 일자리 구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뭐든 해보자라는 생각에 알겠다고 했으며 주디는 바로 자기 매니저한테 물어보았다.

한국이 학연, 지연, 혈연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호주는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다.

호주에서 이력서를 넣거나 집 렌트를 하거나 등등을 할 때는 추천인이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으며 없는 것도 보다 있는 게 훨씬 유리하다.

추천인이 있다면 그만큼 더 주변에 신뢰가 쌓였다는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호주에선 추천인은 거의 필수이다.

그래서인지 주디에게 내 얘기를 들은 매니저는 바로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고, 면접도 바로 볼 수 있게 날짜를 잡아주었다.






이력서가 없던 나는 호주 CV를 검색해서 뒤졌더니 쓸만한 이력서들이 많이 나왔다.

하우스키핑, 호텔리어, 웨이터 리스, 세일즈 등등 다양한 이력서 예시들이 쏟아져 나와서 잘 참고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경력이 또 중요한데, 호주 경력이 없던 나는 한국에서 경력을 부풀리기도 하고 호주에서 경력을 있다고 쓰기도 했다.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력서를 통과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호주에서 나의 첫 인터뷰! 그것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면접이라니.

인터뷰하기 전 날엔 무슨 질문을 할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 등  짧은 영어로 생각해두었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카지노 타워로 갔다. 생각했던 말을 기억하기도 하면서 가는 길 내내 떨렸다.

리셉션에서 일하는 오지 여자에게 인터뷰하러 왔다고 하니 엘베로 안내해주고 내가 가야 할 버튼을 눌러주었다.

내가 갔던 층은 지하였다. 깔끔했던 로비와는 달리 지하 느낌이 물씬 나고 지하에 있는 매니저 오피스마저 그랬다.

약간의 충격이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매니저 오피스로 갔더니 키가 엄청 작은 필리핀 아주머니가 있었다.

면접 보러 왔다고 하니 아 니가 주디 친구냐며 앉으라고 하며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했다.

하우스키핑 경력이나 호주에서의 경력을 물어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일하게 되면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지, 아마도 메일이 갈 것이며 메일 확인을 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준비해 오면 된다고 했다.

가게에서 주문할 때, 어학원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 말고는 영어를 듣거나 말한 적이 없었다.

매니저가 필리핀식 영어로 막 말하는데, 대충은 알아들었는데 대충 알아들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봐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매니저가 하는 말을 녹음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영어도 잘 못 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거길 들어갔으며, 하우스키핑이라는 무시 무시한 직업을 하겠다고 한 게 참 겁도 없다.

그리곤 아이디카드에 필요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사진을 찍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쉴라(매니저)의 폰으로.

그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난 그냥 프리패스된 것을.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한 뒤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2017. 10.17. 화요일부터 카지노 타워에서 하우스 키핑을 하게 되었다.

일하게 며칠 전, 하우스키핑 옷을 받을 수 있는 건물에 가서 유니폼을 받았으며 일하러 가라면 검은색 카라티 유니폼과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신발을 착용하고 가야 했다.

하우스키핑 직업상 아침에 일을 가야 했다. 오전 9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2-3시까지 일을 했다.






드디어 첫날! 오랜만의 아침의 출근길. 첫날이라 무척 상쾌했다.

집에서 카지노 타워까지 걸어서 20분 정도가 걸렸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갔던 첫날.

출근길까지는 어떤 힘듦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

쭈뼛쭈뼛 도착했더니 까무잡잡한 친구들이 "너가 주디 친구야? 안녕" 이라며 말을 걸어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인도, 네팔, 필리핀 남자인 친구들이 말을 걸면 무서웠다.

결국 나도 여기선 같은 외국인일 뿐인데, 그땐 웃으면서 인사는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첫날이라 니샤(슈퍼바이저)가 트레이닝을 해주었다.

원베드 짜리 방 3개와 데일리 서비스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더럽혀진 방에 들어가 내가 치워야 할 것들, 다시 재정비해두야 할 물품들과 청소하는 순서와 하우스키핑의 꽃 베드 메이킹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침대 시트 벗긴 뒤 새로 운 시트를 각 잡아넣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살짝살짝 드는 매트리스는 얼마나 무거운지 새 시트를 또 얼마나 무거운지 서 있는 건 또 왜 이렇게 힘든지 정말 힘들고 힘들고 힘들었다.

오래 서 있거나 몸 쓰는 일을 거의 안 했던 터라 서 있는 것조차 다리가 아팠다.

거기다가 영어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데 뭐라고 하는 건지 참.. 그렇게 4시간? 5시간 정도의 트레이닝이 끝나고 집에 가서 앓아누웠다.

친구가 공항에서 나지막이 건네주었던 파스를 이렇게 빨리 쓸 줄 몰랐다.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더니, 하우스 메이트들이 오늘 일했냐며 물었다.

트레이닝만 했는데 이렇게 힘들다니 당장 내일부터는 혼자 해야 하는데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다음 날부턴 혼자 했는데 처음이라 방도 적고 쉬운 방을 주었는데도 처음 혼자 방에 들어가니 정말 막막했다.

뭐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뻥 졌다.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에 어제 니샤가 가르쳐 주었던 것들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다른 건 어느 정도 했는데 베드 메이킹은 진짜 감이 안 왔다.

시트가 3개나 되고 두나를 언제 넣는 건지 정말 헷갈렸다. 결국 주디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했고 처음엔 주디가 정말 많이 도와주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땀이 주르르르르륵 흘렀다. 처음엔 진짜 눈물도 같이 흘렀다.

모든 청소를 끝내고 나면 매니저 오피스로 돌아가 매니저나 슈바에게 내 방들을 체크를 받고 난 뒤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청소도 힘들었지만 픽스받는 시간이 나에겐 더더 힘든 시간이었다.

일단 먼저 전화나 문자를 해서 청소를 다 했다고 말하면, 만약 내 방 체크가 끝났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바로 집에 갈 수 있었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어느 방에 어디가 잘 안 닦였다, 먼지가 있다, 샴푸를 덜 놔뒀다 등 픽스해야 할 것들을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 정말 눈물을 머금도 다시 돌아가 픽스를 해주고 다시 또 전화를 한 뒤 확인받은 뒤에야 집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이때까지 살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했던 아르바이트들은 힘듦에 속하지도 않았다.

힘든 일을 진짜 싫어하고 끈기도 없어 아르바이트를 3개월 이상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육체적으로 조금만 힘들면 금방 금방 그만둬버린 나였다.

친구가 매니저로 있었던 맘스터치도 하루 만에 그만두고 편의점도 3일 만에 그만두고 영화관 아르바이트도 화장실 쓰레기통 비워야 한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그만둬버리곤 했다.

그나마 오래했던 알바계의 해병대라고 불리는 아웃백이 이때까지 제일 힘든 일이었는데 호주에서 일하자마자 바뀌었다.

한국에서 만약 용돈이 부족했으면 밖에서 덜 먹고, 옷을 덜 사 입고, 엄마가 또 주겠지 이런 생각이 가득했지만 호주에서는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나는 굶어야 하고 방세를 못 내는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어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이렇게 나태했던 한국에서 나 자신을 잠시나마 반성할 수 있었던 호주에서의 첫 잡이었다.

당장 내일 일이 너무 무섭고 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외국에서 일을 하다니!' 신기하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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