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9(화)
요즘은 보통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근한다. 아내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을 때가 많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아침을 차려주고 나오기도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아이들의 ‘배고픔 값’은 항상 일정해서 그 시간 즈음이면 대체로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오늘은 소윤이가 비빔밥을 만들겠다고 했다. 자기들이 먹을 건 물론이고 엄마가 일어나서 먹을 것도 차리는데, 맛은 어떤지 나도 모르겠다. 아내의 반응으로 봐서는 썩 맛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가.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 또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르고 보면 소윤이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그립고 소중하게 느껴질까.
오후에는 윤이를 보고 왔다. 오늘도 온 가족이 출동했다. 평일 늦은 오후에 예약을 했더니 병원에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매우 한적했다. 이번에도 우리처럼 온 가족이 출동한 곳은 없었고, 아이들 자체가 거의 없었다. 감사하게도 윤이는 잘 크고 있었다. 입덧으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제 크기도 꽤 컸고, 손과 발을 비롯한 여러 신체 기관의 형태도 보였다(의사선생님이 ‘이게 이거, 이건 이거’라고 설명해 주시니 보였다). 다행이었다. 그냥 병원에 갈 때마다 항상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 근처에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커피 한 잔 마실까 하다가 입덧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옆에 두고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게 미안해서 얘기를 안 꺼냈다.
“여보. 000 들렀다 갈까?”
아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아내는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마시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듯했다. 아내 스스로는 잘 못 느끼는 듯하지만, 옆에서 내가 보기에는 확실했다. 눈에 띄는 변화라기보다는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기운의 차이였다. 여전히 속은 불편하고 울렁거리지만 그걸 극복하고 남는 ‘기분과 기운, 에너지’ 같은 게 있는 느낌이랄까.
아내는 어제, 오늘 집 근처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몇 개 샀다. 반찬을 할 수는 없고(냄새 때문에) 나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하고, 맨날 있는 것 가지고 먹기에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니 나온 대안이었다. 다행히 맛이 괜찮았다. 일시적으로 반찬류의 고갈을 해결하기에는 적당한 선택이었다.
나도 요즘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이들을 모두 눕히고 집안 곳곳에 산재한 하루살이의 부산물을 치우고 정리할 때.
‘하아. 이거 도와주시는 분 고용하고 싶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잠시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가 고용을 했다. 온갖 물건이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공부방을 볼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그래. 애들도 얼마나 힘들겠냐. 쟤네도 치운다고 치우는데 어질러지는 건 한 순간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스린다. 자가 고용이니 보수는 따로 없다. 다 끝냈을 때의 짧은 성취감이 유일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