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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9. 2024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23.09.19(화)

요즘은 보통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근한다. 아내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을 때가 많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아침을 차려주고 나오기도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아이들의 ‘배고픔 값’은 항상 일정해서 그 시간 즈음이면 대체로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오늘은 소윤이가 비빔밥을 만들겠다고 했다. 자기들이 먹을 건 물론이고 엄마가 일어나서 먹을 것도 차리는데, 맛은 어떤지 나도 모르겠다. 아내의 반응으로 봐서는 썩 맛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가.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 또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르고 보면 소윤이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그립고 소중하게 느껴질까.


오후에는 윤이를 보고 왔다. 오늘도 온 가족이 출동했다. 평일 늦은 오후에 예약을 했더니 병원에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매우 한적했다. 이번에도 우리처럼 온 가족이 출동한 곳은 없었고, 아이들 자체가 거의 없었다. 감사하게도 윤이는 잘 크고 있었다. 입덧으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제 크기도 꽤 컸고, 손과 발을 비롯한 여러 신체 기관의 형태도 보였다(의사선생님이 ‘이게 이거, 이건 이거’라고 설명해 주시니 보였다). 다행이었다. 그냥 병원에 갈 때마다 항상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 근처에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커피 한 잔 마실까 하다가 입덧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옆에 두고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게 미안해서 얘기를 안 꺼냈다.


“여보. 000 들렀다 갈까?”


아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아내는 아이스바닐라라떼를 마시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듯했다. 아내 스스로는 잘 못 느끼는 듯하지만, 옆에서 내가 보기에는 확실했다. 눈에 띄는 변화라기보다는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기운의 차이였다. 여전히 속은 불편하고 울렁거리지만 그걸 극복하고 남는 ‘기분과 기운, 에너지’ 같은 게 있는 느낌이랄까.


아내는 어제, 오늘 집 근처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몇 개 샀다. 반찬을 할 수는 없고(냄새 때문에) 나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하고, 맨날 있는 것 가지고 먹기에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니 나온 대안이었다. 다행히 맛이 괜찮았다. 일시적으로 반찬류의 고갈을 해결하기에는 적당한 선택이었다.


나도 요즘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이들을 모두 눕히고 집안 곳곳에 산재한 하루살이의 부산물을 치우고 정리할 때.


‘하아. 이거 도와주시는 분 고용하고 싶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잠시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가 고용을 했다. 온갖 물건이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공부방을 볼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그래. 애들도 얼마나 힘들겠냐. 쟤네도 치운다고 치우는데 어질러지는 건 한 순간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스린다. 자가 고용이니 보수는 따로 없다. 다 끝냈을 때의 짧은 성취감이 유일한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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