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0(수)
오늘은 늦은 퇴근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걸 아내에게 미리 말하지 못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이들에게 엄마에게 대신 좀 전해달라고 했다. 메시지로도 남겼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아내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괜히 미안하기도 했고 걱정도 됐다.
소윤이는 피아노 수업이 있었는데 데려다 줄 사람이 없었다. 가르쳐 주시는 집사님이 집으로 와서 데리고 가 주셨다. 누나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면 언제나 속이 상하는 시윤이에게는, 출근하기 전에 충분히 이야기를 했다. 시윤이가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서 또 괜한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윤이는 피아노 수업이 끝난 뒤에도 집사님의 딸(소윤이와 동갑)과 놀고 왔다고 했다. 집사님이 점심도 사 주시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한참 동안 놀았다. 오후를 다 보내고 돌아왔다. 그동안 시윤이와 서윤이는 엄마와 함께 나름대로 시간을 잘 보낸 듯했다. 아내도 이전의 날들보다는 움직일 기력이 조금 있는 듯했고 시윤이와 서윤이도 노력하는 듯했다. 아내가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기특하다’는 표현을 쓴 걸로 봐서는, 분위기가 좋은 듯했다. 아내가 다큐멘터리도 보여줬다고 했다. 서윤이는 역시나 팝콘을 찾았지만 팝콘은 없었다. 대신 과자와 견과류를 제공했다고 했다.
아무리 아이들이 잘 지내도 정상이 아닌 몸으로 혼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에 ‘조금 있으면 남편이 온다’라는 희망도 없는 날에는 더더욱.
“하루가 참 길다 여보”
아내가 이 메시지를 보낸 시간이 오후 4시였다.
퇴근했을 때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아내는 깨어 있었다. 물론 매우 수척하고 기운이 없는 상태로. 입덧과 나 홀로 육아가 잘 버무려진 하루를 보낸 결과였다. 심지어 오늘은 집도 깨끗이 치워놨다. 입덧이 엄청 심할 때에 비하면 아주 좋아졌지만, 그 남는 기력을 집안일에 쓰지 말고 잘 간직하면서 쉬라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자꾸 움직이려고 한다. 주부의 본능이자 남편을 향한 미안함 때문에.
생전 영양제라고는 잘 챙겨 먹지 않는 내가 요즘 영양제를 꼬박꼬박 먹고 있다. 그런 거에는 둔해서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일단 먹고 있다. 여기서 최악은, 나까지 드러눕는 거니까 어떻게든 이 입덧의 터널은 무사히 빠져나가야 하니까.
사실 뭐가 됐든 좀 덜 먹어야 그게 최고의 영양제이긴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