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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20. 2024

닭 날개 오븐구이

23.09.21(목)

아내는 어제도 오늘도 허접한 인스턴트 면 요리로 끼니를 때웠다. 임산부가 먹는 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영양가가 없었다. 차라리 먹고 싶어서 먹는 거면 몰라도 먹을 만한 다른 게 없으니 하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입덧 때문에 힘들어도 아이들 밥은 챙겨줘야 하니 아이들부터 챙기고 나면 임산부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거다. 몸이 정상이어도 그러는데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요즘은 오죽할까 싶다.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오늘은 서윤이가 많이 징징거린다고 했다. 소윤이가 시윤이에게 ‘학습’을 해 준다고 했더니 자기도 해 달라고 해서 소윤이가 기꺼이 마음과 시간을 냈는데, 정작 앉으니 서윤이가 너무 짜증을 냈다는 거다. 서윤이가 너무 짜증 내서 못하겠다고 했더니 또 그걸 가지고 징징대고.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에게 어찌나 앙칼지게 짜증을 내는지. 애교를 부릴 때는 엄청 부리면서. 지난 주일에도 서윤이는 시윤이에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서윤이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 시윤이가 그래도 의젓하게 서윤이의 치근덕거림을 다 받아줬다고 했다.


아내가 퇴근하기 전에 ‘닭 날개 오븐구이’ 레시피를 메시지로 보냈다. 일 하느라 바빠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저녁에 그걸 먹으면 어떻겠냐는 얘기였다. 아내가 준비하고 만들 수 없으니 내가 해야 하는데


‘여보 오늘 이거 만들어 줄 체력과 기운이 남아 있나요? 가능하면 하고 아니면 안 해도 돼요’라는 의미가 내포된 메시지였다. 대충 밑간만 조금 하고 오븐에 넣으면 되니까 그렇게 번거로운 건 아니었다. 퇴근하자마자 손만 씻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순간 ‘쉴 틈도 없이 이렇게 바로?’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붙잡지 않고 흘려 보냈다. 그런 생각을 붙잡아 봐야 자기 연민이 극대화 되거나 대상 없는 원망만 커질 뿐이다. 이게 내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아내가 임신을 한 데는 내 지분이 있기도 하고. 군말 없이 부지런히 만들어서 맛있게 먹였다.


서윤이는 오른쪽 엄지 손가락이 엄청 아프다고 했다. 어제 시윤이와 놀다가 소파에 부딪혔는데 그 통증이 계속 이어지는 듯했다. 붓기도 엄청 부었다. 수족구의 후유증인지 손톱과 발톱이 빠지려고 하는 듯 누렇게 뜨기도 했고. 하여간 서윤이는 뭔가 항상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녀석이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도 많이 선사하고. 엑스레이를 찍어 봐야 하는지 고민했는데, 막상 퇴근했을 때는 붓기도 많이 가라앉고 서윤이도 괜찮아 보였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고. 일단 더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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