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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27. 2024

먹을 게 없어

23.10.01(주일)

이사 오기 전에 예배를 드리던 교회에 가기로 했다. 차로 30분은 가야 하니 평소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여야 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됐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계셨으니까. 아내와 나는 아내와 나는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었다. 물론 아이들은 진작에 아침을 먹었고.


오랜만에 간 교회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두 가지였다.


“우와. 엄청 많이 컸네?”

“우와. 엄청 까매졌네? 많이 놀러다녔나 봐”


여름에 바다에 가서 열심히 논 덕분이었나 보다. 매일 보니 인지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본 사람에게는 많이 까맸나 보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아내는 약속이 있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교회 근처의 파스타 가게에서 만난다고 했다. 아내를 약속 장소에 데려다 주고 커피 한 잔을 사서 다시 처가댁 근처로 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의 점심은 중국음식이었다. 어제는 소윤이가 좋아하는 월남쌈, 오늘은 시윤이가 좋아하는 탕수육.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음식 탕평책에 따른 선정이라고나 할까. 밥을 먹고 나서는 카페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위한 음료도 따로 주문했고(물론 각 일 잔은 아니었지만) 케이크도 주문했다.


아내는 나와 헤어지기 전에 친구들과 3시간 정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짧은 거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친구들만 만나고 있을 수도 없기는 했다. 출발할 때 일부러 아내에게 연락을 안 했다. 혹시나 만남이 길어지게 되면,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만날 수 있도록. 혹여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 조급해 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 아내가 먼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자리를 옮겨서 친구 집에 갔다고 했다. 나에게도 잠시 올라오라고 했지만 난 너무 졸렸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에도 애를 먹었다.


“아, 여보. 나 신경 쓰지 말고 더 얘기하다 내려와. 난 주차장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게”


눈을 감은지 얼마 안 돼서 다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내려온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30분이 넘게 지난 뒤였다.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잠들고, 달콤하게 자는 건 감사한 일이다. 아내는 친구들과의 시한부 만남을 마치고 다시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처가댁 근처의 공원에 있다고 했다. 아내를 데리러 오기 전에 다 함께 집에 들렀고,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간단히 준비만 해서 바로 공원에 나가신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 소윤이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셨다고 했다. 그야말로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다. 소윤이만 있었을 때, 아니 시윤이가 있었을 때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거뜬하셨다. 웬만한 상황에는 아이들의 요구에 기꺼이 응해주셨다. 이제는 아닌 거다.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도 컸다. 예전 같았으면 잠시의 휴식도 용납하지 못하고 ‘얼른 나가자’, ‘바로 나가자’ 라고 하면서 성화였을 텐데, 이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다릴 줄 안다(실상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내와 나는 곧장 공원으로 갔고 거기에는 한껏 신이 난 세 녀석과 육신은 피로할지언정 손주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고 계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있었다. 심지어 장모님은 소윤이, 시윤이와 캐치볼을 하고 계셨다. 아내와 내가 도착하고 얼마 안 돼서 공원에서의 시간을 마쳤다.


“저녁 어떻게 할래?”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지만 ‘어? 또 밥 먹어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들과 장인어른은 푸짐한 반찬이 가득한 집에서 저녁을 먹는 걸 원했지만 장모님은 생각이 다르셨다.


“집에 먹을 거 없어”


명절의 ‘레토릭’이다. 할머니의 말을 들은 시윤이가 즉각 답변했다.


“할머니. 먹을 게 없다는 건 좀…”


나도 사위 생활 10년 차지만


“강서방. 차린 거 많지? 마음껏 먹어”


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실제는 ‘차린 게 많은 정도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 아니 항상 그랬지만.


두부요리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배가 안 고플 만한 상황이었다. 공원에서 각종 간식을 끊임없이, 많이 섭취한 듯했다. 나도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다. 아내가 제일 열심히 먹었다. 모두 미적지근한 식사 태도인 걸 인지하고 ‘나라도 맛있게 먹어야겠다’라는 듯, 부지런히 먹었다. 아이들은 졸리기까지 했다. 엄청 일찍 일어나서 밀도 있는 하루를 보냈으니 그럴 만했다. 저녁을 먹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쉴 새 없이 움직이셨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싸 줄 각종 반찬과 과일 등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아주 이른 새벽에 출발할 계획이어서 실을 수 있는 짐은 미리 실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잠시 거실에 앉아 장인어른, 장모님과 대화를 나눴다. 일찍 출발해야 하니 오랫동안 앉아있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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