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아빠 육아팁
감사하게도 저는 지금까지 유럽 자유여행을 다섯 번이나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14년 전 대학 2학년 여름 방학에 처음으로 러시아로 해외 여행을 다녀왔고 이후에 졸업할 때까지 매해 여름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유럽은 쉽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유럽 여행을 떠날 때의 설레고 두려웠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자유여행이다 보니 여행 책자, 인터넷 카페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요, 처음 두 번의 여행은 참 무리해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한 도시에 1박 2일 ~ 2박 3일 정도밖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박물관도 가고, 성당도 가고, 시장도 가고, 공원도 가는 일정을 짰었으니까요.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 생각하면 토나오는 일정을 그땐 힘든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습니다.
세 번째 여행부터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로코코 양식이건 바로크 양식이건 관련 지식이 빈약한 제 눈에는 그냥 다 똑같은 성당이었고 무리해서 짠 일정을 맞추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여유 있게 머무르면서 그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을 좀 더 느끼기로 한 것입니다.
마지막 유럽 여행은 스페인이었습니다. 첫아이가 생기기 전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자유여행이었는데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보니 동선을 최소화하고 관광지도 하루에 한 곳, 많아야 두 곳 정도로 줄여 여행을 떠났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만족스러웠습니다. 톨레도, 그라나다, 알카사르 등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무리한 일정에 서두르지 않고 가족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유 있게 돌아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과 외출하거나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나들이를 갈 때도 있고, 결혼식이나 다른 모임에 갔다가 주변에 아이들과 갈만한 곳을 찾아갈 때도 많은데요,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고 나가는 과정에서 별것 아닌 일로 언성을 높이거나 서두르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주말에 사람들 붐비는 시간을 피해 과학관이나 동물원에 다녀오고 싶은데 아이들이 밥을 늦게 늦게 먹거나 양치 안 하겠다고 버틸 때, 결혼식 시간 늦지 않으려면 지금 출발해야 하는데 갑자기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신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잠깐만 잠깐만 하면서 자꾸 시간을 지연시킬 때 그러는 경향이 있습니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목소리 톤이 올라가거나 '지금 옷 안 입으면 나중에 간식 없다'라는 식의 아이가 공감할 수 없는 강제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요. 장거리 여행 시 이곳도 보여주고 저곳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일정을 바쁘게 짜거나 저녁에 지인과의 저녁식사 등 고정된 일정을 잡아 두었을 경우에도 여행 중간중간에 빨리 움직이자며 서두르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좋고 저도 좋자고 밖으로 나가는 건데 왜 나는 서두르고 인상을 쓸까?'
곰곰이 살펴보니 아이들이 원인이 아니라 계획과 준비 자체가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아이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운 5살, Crazy 4라는 말이 있듯이 이 시기에는 아이들의 변덕이 죽 끓는 듯하고 고집이 센 것이 굉장히 정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한 여름에 갑자기 털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가겠다는 아이의 모습은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시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에 아빠 말에 따라 알아서 옷을 입고, 시간 맞춰 준비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계획과 준비하는 과정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외출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더 많이 잡고 미리미리 준비합니다.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것들 (부모 외출 준비, 가방 싸기 등)을 먼저 마무리 짓고, 아침 식사도 평소보다 일찍 하는 등, 아이들에게 서둘러야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려면 제가 부지런해야 하는데 천성이 게으르다 보니 쉽지만은 않습니다 ^^) 결혼식 등 정해진 시간이 있어 제시간에 출발해야 하는 경우엔 미리 아이들에게 상황 설명을 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내일 아빠랑 정말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하는데, 우리가 늦게 가면 아빠 친구가 슬퍼서 엉엉 눈물을 흘린대, 우리가 일찍 도착해서 아빠 친구 행복하게 해주자~)
여행을 다닐 때도 일정을 확 줄였습니다. 아이들과의 여행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계획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부모님과 유럽 여행 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동을 최대한 줄이고 일정을 여유 있게 계획합니다. 이번에 못 가는 곳은 나중에 또 가면 되니까요. 얼마 전 거제도 여행에서는 2박 3일간 아무 곳도 가지 않고 리조트 안에서만 머물렀는데요, 아이들에게 '빨리빨리'를 외칠 일도 없고 상당히 만족스럽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제 기준에 맞추어 바라보지 않고 발달 단계를 이해하고 준비와 계획 단계에서 개선할 점을 찾아 수정하니 전에 비해 서두르는 빈도가 확실히 많이 줄었습니다. (첫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정말 말도 안되는 고집에 욱 하다가 참는 빈도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 네 사고의 흐름을 한 번 이해해보자 하면서요.. ^^;)
심한 미세먼지로 인해 주말에 가족들과 나들이 가기도 쉽지 않은 요즈음입니다. 평일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미안함을 달래고자 주말이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려고 하는 직장인 아빠님들이 많으실 텐데요,
단순하게 계획하고 여유 있게 움직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나들이, 끝까지 즐겁게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