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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Jan 04. 2019

1. 삼척에서

여행의 시작

2010년 7월 14일


#삼척에서

창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버스는 가끔 덜컹거린다. 잠을 청해보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것저것 얘기하던 수민이도 어느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작은 마을의 불빛이 저 멀리서 보인다. 덜컹거림이 멈추고 버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삼척에 내리실 분은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에 가방을 서둘러 챙겼다. 자고 있던 수민이 어깨를 툭툭 친 후, 버스 앞으로 손짓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기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버스 화물칸에 실린 자전거와 짐꾸러미를 꺼냈다. 서늘해진 밤공기가 숨을 통해 느껴진다.


버스가 다음 정류장으로 간 사이, 자전거를 세우고 짐을 매달았다. 마지막으로 가방을 등에 메고 자전거 위에 올랐다. 장비와 가방으로 인해 페달의 묵직함이 발끝에 전해진다. 수민이가 준비를 마치고, 터미널 앞에서 기다린다. 페달을 밟아 삼척 버스터미널을 떠난다.



#Take001
- 2010년 7월 14일 새벽 3시쯤. 삼척 정거장에 도착하여 자전거 세팅하고…
- 나랑 처음 출발하는데, 마지막은 니 혼자겠다. 미안하다.
- 미안하기는. 이제 준비 다 끝나고…
- 마지막을 생각하면 아쉬우니까, 기약을 다시 하자.
- 나중에 됐고요 (하하).



자전거 여행의 시작



#7번국도를따라

7번 국도를 따라 라이딩을 하였다.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이다. 시계는 새벽 4시를 알려주고 있었다. 어스 푸르무레하게 밝은 빛이 바다 건너편 하늘에서 보인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야간 라이딩은 처음이다. 자전거에 따로 달아둔 랜턴과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강원도에 고개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느꼈다. 자동차로만 와봤지, 이렇게 몸소 체험해보니 만만찮다. 낮고 높은 언덕이 줄줄이 이어진다.


“여기 아까 왔던 길 아냐?”

“그런 것 같은데… 아니 길이 왜 이리 복잡해.”

“길 찾다가 시간 다 보내겠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난감하네.”


수민이의 투덜거림이 시작됐다. 나도 같은 길을 계속 되돌아오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도도 없이 무작정 부산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왼쪽에 바다를 두고 남쪽으로만 내려가면 되겠거니 했지만, 큰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길이 복잡했다. 오르막을 한 참 오르고 나서, 지나가시는 어르신 게 묻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오길 반복했다.

그렇게 헤매다 7번 국도 이정표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정표를 보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을 가지며 나아갈 수 있었다.



#Take002
- 2010년 7월 14일 새벽 5시. 여행의 첫 태양을 보고 있다. 지금 삼척 앞바다에서 일출을 보고 있는데…
- 지금 같은 길만 세 번 반복해서 옴
- 박수민 씨 소감 한마디 하시죠
- 지금 기분 너무 좋고요, 군대 시절이 떠오르네요, 참 뭐 같습니다. 100km 행군.
저 혼자 자전거 망가져가지고, 혼자 끌고 올라가는데, 지 혼자 살겠다고, 기어 다 올려놓고 혼자 올라가고 진짜.
- 야 니가 죽겠다고 못 올라온 거지, 내가 살겠다는 게 아니잖아. (하하) 이상 끝.



삼척에서 본 일출
언덕 위에서 본 해안가



#용화해수욕장

잠시 만난 평지길엔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풀냄새가 나는 안개가 우리를 삼키고 있었다. 조용하면서 차분한 새벽이다. 잠깐씩 쉬어가면서,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간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간다.


해가 동틀 무렵 구불한 언덕을 따라 내려와 보니 용화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해수욕장에 들어서면서 바로 엎어지듯 쓰러졌다. 강원도의 고갯길을 타면서 벌써 기진맥진했다.  바다 냄새가 코 끝에 닿았다. 새하얀 모래와 그 사이로 드문드문 난 이름 모를 새싹들이 생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거의 없어, 모래와, 파도와, 하늘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긴 말야, 내가 예전에 왔던 곳이야. 기억에 남아서 다시 와보고 싶었거든.”


이 곳은 출발 전부터 수민이가 꼭 가자고 한 곳이다. 자신의 추억을 신나 하면서 말해준다. 어떤 추억이었는지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지만, 이 곳에서의 추억이라면 나도 하나쯤은 갖고 싶었다.


“알았으니, 바다에 한 번 들어가자. 오랜만에 바다 왔잖아,”

“니가 먼저 들어가면 나도 들어갈게”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놀러 오기를 원했던 사람처럼 바다에 발을 담그며, 빠지기도 하며 놀았다. 결국 나 혼자 옷이 다 젖어 임시 빨랫줄을 만들어 옷을 널었다.


‘급하게 갈 필요는 없지. 조금 쉬었다 가자.’


이곳에서 잠시 텐트를 치고 쉬기로 한다.


늦은 아침을 준비했다. 가스를 버너에 연결하고, 물을 넣은 냄비를 올렸다. 김이 올라오면서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라면을 냄비 넣었다.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여행의 첫 끼로 의미를 두고 먹어서 그런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밥을 먹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깐 누워있으니 그냥 여기 쭉 있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이렇게 있다가는 아예 떠나지도 못 할 것 같다. 애써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텐트와 짐을 다시 자전거에 실었다.



용화해수욕장의 백사장과 수평선



#Take003
- 2010년 7월 14일 오전 10시 14분. 용화해수욕장에서…
- (힘들다)
- 힘들어?
- 뻥이야
- 에라이
- 졸려 죽겠어 지금
- 하긴 새벽부터 라이딩해가지고, 많이 힘들었지. 바다에 나 혼자 빠지고. 발만 적시고 온 박수민. 어쨌든,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용화해수욕장에서 수민이와 함께



#언덕을올라갈땐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것은 만만치 않다. 자전거에 실은 짐들이 있어 페달을 밟아 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은 무리다. 기어를 최대한으로 올려도 언덕 끝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오르막에서는 잠시 내려 자전거를 이끌며 걸어 올라갔다. 조금씩 올라가다 쉬는 것을 반복하였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부분이 여기서 들통난다. 수민이는 매번 나를 앞서간다. 나보다는 체력이 좋은지 쭉쭉 나아간다. 앞서간 수민이가 쉬면서 나를 기다리는 식으로 나아간다.


언덕을 30분간 오르면, 5분도 안되어 내려온다. 내려오는 건 정말 신난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하지만 그 신남을 즐기기엔 너무 짧다. 짧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나면 다시 자전거에서 내려 오르막을 올라간다.


'자전거 여행의 묘미는 내리막에 있는 것이 아닐까?'



#Take004
- 2010년 7월 14일 12시 50분.
- 자전거 엄청 망가져서 한 시간 정도 뻐겼다.
- 한 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인 것 같은데 지금. 시간이 너무 흘렀어.
- 똥쓰가 바람 다 빼버렸다.
- 야 니가 펌프질 안 하니까. 아니, 안 해도 될 걸 하려고 하니 그렇지.
- 다 똥쓰 잘못이다.
- 아이고 참. 남에게 탓이나 미루고 있고.
- 분대장 관찰일지에 써야겠다.
- 그래서 지금 자전거 고친 심정은?
- 기분 좋은데 뒤에 빵빵함이 마음에 안 든다.
- 야 이 정도면 충분히 빵빵해.
- (…)
- 알았어. 이상.



#자전거여행자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같은 방향이든, 다른 방향이든 서로 마주치면 약속한 듯이 인사를 했다.


"힘내세요. 파이팅!"

"파이팅!"


길 위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지만, 반가웠다. 몇몇은 잠시 서서 간략한 일정과 코스를 말해주기도 하였다.

 

그중 한 사람이 기억난다.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뒤편에서 따라붙어 우리를 추월하면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엔 지역 주민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에겐 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신문지에 쌓아 놓은 옷가지 한 벌이 다 였다. 전국을 일주하고 있다는데, 밤이 되면 가까운 찜질방에서 잠을 청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찜질방에서 씻고 자고 하면, 짐이 그렇게 많이 필요 없겠다 싶다. 하지만 나는 예산을 아껴야 했기에, 찜질방 비용도 아쉬웠다. 아무튼, 짐이 적어 가볍게 다니는 모습을 보니, 내 자전거에 실린 짐들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짐의무게

이번 언덕은 상당히 길다. 한참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오르막을 오른 지 벌써 한 시간 넘게 지난 것 같다. 오르막에 지쳐 잠시 쉬고 있는데, 뒤에서 확성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행렬에 방해되지 않게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자전거를 다시 이끌고 올라간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몇 백 명 되어 보이는 행렬은 우리를 앞질러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행군하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옛 기억이 난다.


입대 전 활동하던 사진동아리에서 주기적으로 10일간의 출사를 갔었다. 그때도 동아리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걸어서, 히치하이킹을 하며 다녔었는데. 배낭을 등에 매고, 걷는 것 자체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즐거웠다. 그래서 힘든지 모르고, 그렇게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나도 짐 없이 걸어 올라가면 편할 텐데.’


지금은 배낭 없이 행군하는 저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여행은 즐겁지만, 끝없는 오르막에서는 즐겁지 않다. 짐을 던져 버리고 싶다. 하루 종일 숨이 차서 인지, 정신이 없다. 내가 여행 짐을 너무 많이 가져온 것이 아닌지, 내 체력이 너무 약한 건지.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본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버릴 것이 없다. 흐음.



#오르막차로끝

해안도로를 따라 언덕을 쭉 따라 한참 올라가니 ‘오르막차로끝’ 이란 푯말이 보인다. 오르막차로가 끝났다는 건, 내리막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올라왔으니, 내리막이 엄청 길지 않을까? 내려갈 생각만 해도 너무 즐겁다.

오르막 끝 지점에서 다른 이정표를 발견한다.

 

‘경상북도’


이렇게 우리는 강원도를 지나 경상도에 들어왔다.


내리막은 끝없이 이어진다. 여기가 오늘 내려왔던 내리막 중에서 최고다.

페달을 거의 밟지 않고 내려가던 중 앞서 가던 국토대장정 행렬을 지나쳤다. 조금 전의 부러움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고생과 힘듦은 내리막에서 모두 날아갔다. 이제야 주변의 산과 바다 풍경이 눈에 다시 보인다.



'오르막차로끝' 푯말



#길위의집

내리막을 거의 다 내려오니, 해가 지고 있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만난 ‘나곡해수욕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모래사장 위에 각자 챙겨 온 텐트를 쳤다. 수민이와 같이 장만한 텐트다. 여행 전 남대문시장을 돌아다니며 이 여행을 위한 장비를 샀었다. 이 텐트도 그때 같이 구매한 것이다.


1평 남짓되는 공간이 모래사장 위에 놓여진다. 크진 않지만 혼자 눕기에는 충분하다. 텐트에 달린 후크를 닫으면 나만의 작은 공간이 생긴다. 안락하진 않지만, 길 위에서 휴식을 취하기에는 문제없다. 텐트 안에 누우니 녹색 천으로 된 천정이 보인다.


‘앞으로 계속 자다 보면 텐트에 익숙해지겠지?’


컵라면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운 후, 잠을 청하기 위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이 쑤신다. 모래알 바닥은 눕기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피곤해서인지 졸음이 몰려온다.




나곡해수욕장에서 잔 곳

#정산0714
고속버스 : 25,700원
컵라면 : 800원
생수 : 750원
봉지라면 2개 : 1,500원
부탄가스 : 1,000원
#자전거일지0714
달린거리 : 62.42 km
누적거리 : 62.42 km
일본누적거리 : 0 km
평균속도 : 13.20 km/h
최고속도 : 57.30 km/h
달린시간 : 4:48:10



*Take를 누르시면 녹음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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