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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Jan 06. 2019

2. 영덕으로

자전거 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2010년 7월 14일


#자전거여행은생각보다쉽지않다

밤 11시. 

어두운 밤이다. 바다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날이 지나기도 전에 일어났다. 


자기 전 수민이와 회의를 했다. 자전거 여행 첫날이었지만, 너무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어제 하루 달려본 결과,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게 지쳤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을 중단할 수는 없다.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체크했다. 강원도의 많은 언덕과, 헤매는 길, 그리고 많은 양의 자전거 짐. 이런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다행히도, 경상북도에 진입하면서 잦은 언덕이 많이 없어진 것을 느꼈고, 길은 단순해졌다. 그러나 자전거 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줄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수민이와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힘든 부분은 바로 더위였다. 더위에 약한 나는, 땀을 너무 많이 흘려 탈수 증상이 올 것 같았다. 자전거로 인한 땀이었는지, 더위로 인한 땀이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더위가 땀이 마르지 않게 만드는 건 분명했다. 수민이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보다는 땀을 덜 흘리는 편이었지만, 더위  그 자체 만으로 지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라면 에어컨 바람이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여긴 에어컨 바람을 쐴 곳이 아무 데도 없다.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이나 시원한 음료수를 매번 사 먹기엔 예산이 부족하다. 마실 물도 항상 부족하다. 


“내일도 오늘처럼 밤에 움직이는 게 어때?”

“졸릴 것 같은데, 더운 것보다는 낫겠다.”

“그럼 오늘은 일찍 자고, 밤에 일어나서 바로 출발하자.”


우리는 방법을 찾다가, 해가 뜨기 전에 최대한 많이 이동하고, 정오부터는 많이 쉬면서 가기로 결정했다. 잠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더위보다는 졸린 것을 참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있으면 졸린 것도 모르지 않을까. 



#루트수정

어제 삼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수민이의 치과진료 문제와 일정상의 이유로 국내 루트를 수정하기로 하였다. 부산까지 계획을 했었지만, 수민이는 영덕까지 가는 것으로 생각을 굳혔다. 이 상태가 상당히 안 좋기도 하고, 며칠 후 있을 약속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민이와의 국내 일정이 짧아진 것은 아쉽지만, 수민이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같이 더 가는 것은 무리라 생각이 든다. 



#Take005
- 2010년 7월 14일 저녁 11시 50분 정도
- 이제 나곡해수욕장을 11시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준비하고, 이제 출발하는 중이다. 이제 영덕까지 가면 마지막 라이딩이 될 텐데, 안전하게 갈 수 있었으면 좋겠고, 아마 이것을 듣는 사람들은 이미 내가 저세상에 가있을지도 모르지만.. (하하) 농담이고. 
-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 우리 어머니, 아버지, 엄청 사랑하고, 우리 가족들 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영덕 가서 똥쓰가 맛있는 음식 해준다고 했는데, 많이 먹고 그리고 복귀할 수 있도록. 이상. 
- 하여튼, 야간 라이딩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 탈없이. 영덕까지 갔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상.



2010년 7월 15일


#긴장속의야간라이딩

새벽 0시. 


자전거에 텐트와 짐을 싣고 나곡해수욕장을 나섰다. 미리 준비했던 조명을 앞에다 달고, 후면에 달아둔 붉은색 안전등의 불을 켰다. 우리는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갔다. 


도로에 차가 없다. 도로 전체를 우리가 전세 낸 기분이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량을 피하며, 차선 가운데를 누비며 타고 내려간다. 기온도 적당했다. 낮시간에 달궈진 아스팔트도 충분히 식은 듯하다. 얼굴에 맞닿는 바람에서 신선한 밤공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문제는 어둠이었다. 랜턴에 의지하여 가고 있어, 전방에 놓인 장애물을 발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그 장애물의 코 앞까지 가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7번 국도가 잘 닦여있어 큰 장애물은 없었지만, 간혹 있던 자갈과 나뭇가지들이 나를 위협했다. 자전거 바퀴에 자갈이 걸릴 때마다 흔들리는 핸들을 바로 잡는다. 사소한 떨림에도 크게 흔들린다. 자전거 짐의 무게로 인해 살짝만 흔들려도 크게 휘청거린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야! 좀 천천히 내려가 무섭지도 않냐?”

“나 먼저 갈 테니 밑에서 보자”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없이 내려가는 수민이를 보니, 이런 걱정은 나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야간 라이딩 중 잠시 점검시간



#또다시추월당하다

날이 밝아온다. 새벽부터 정말 쉴 틈 없이 페달만 밟았다. 누가 쫓아오거나, 급한 것도 아닌데.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 해가 뜨고 나니 더위와 졸음이 찾아온다. 영덕까지는 아직 거리가 남았다. 도로 위를 다니는 차를 피해, 도로변에 자전거를 놓고 쉬기로 했다. 


언덕배기에 앉아 도로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온 도로 저 너머에서 익숙한 실루엣의 자전거 라이더의 모습이 보인다. 어제 만났던 홀로 여행하는 라이더였다. 그 라이더는 우리 앞으로 지나가다 우리를 발견하고 다시금 인사를 하였다. 


“어?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안녕하세요. 어제도 우리 뒤에서 지나가시더니, 오늘도 마찬가지네요.”


우린 잠깐 서서 짧막히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 몸 조심히 목적지까지 잘 가길 빌며, 가벼운 인사와 함께 길 위에서 바로 헤어졌다. 그 라이더가 간 후  우리는 조금 더 쉬었다 일어났다. 




#뜻밖의복숭아

이제 이정표에 ‘영덕’이란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날은 다시 더워지고, 우리는 목마름과 허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도로가에 화물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트럭 안에는 복숭아가 가득히 실려 있다. 뒤에 복숭아 농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농장 직영 판매를 하는 것 같다. 앞서가던 수민이를 잠깐 불러 세워 복숭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부터 배고프다 하던 수민이도 고갤 끄덕이며 복숭아 트럭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복숭아 앞에서 잠깐 서서 먹을까 말까 고민을 하였다. 그런데 고민하던 게 티 났나 보다. 복숭아를 파시던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보고 자전거 여행을 왔냐고 하시며, 살짝 깨진 복숭아 세 개를 천 원에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 말에 망설임 없이 복숭아를 샀다. 깨졌다고 하지만 문제없다. 달달하면서 시원한 복숭아다. 더위와 지친 체력을 채우는데 손색이 없다. 정말 허겁지겁 먹었다. 복숭아 세 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영덕에 도착



#영덕에서의쉼

영덕에 도착했다. 바닷가에 있는 작은 집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이 집은 친척들과 같이 쓰는 별장과 같은 곳이다. 마침 집이 비어있어, 우리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단 하루를 밖에서 잠을 잤음에도, 집이라는 공간이 정말 반갑고 그리웠다. 이러한 생각 끝에 걱정이 들었다. 일본에 가서 과연 길 위의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내가 그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일단 가보는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든다. 겁이 나지만.


집에다 자전거 짐을 풀어놓고, 장을 보러 나섰다. 가까운 마트를 찾아 자전거로 한참을 달렸다. 이번 여행에서 수민이와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자전거로 달렸던 고단함이 풀린다. 가볍게 넘어가는 술 한잔이 정말 기분 좋았다. 


방을 정리하고, 내일 일정을 체크하였다. 영덕 집에서 가장 가까운 터미널을 영해 터미널이다. 터미널에 전화하여 버스 일정을 확인했다. 아침 7시 즈음에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나는 그 뒷 시간에 있는 부산 버스를 확인하였다. 가장 가까운 터미널이지만, 그래도 거리가 꽤 있었다. 여행 출발 전에 영해 터미널로 가는 길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 없었다. 길에서 헤매다 버스를 놓칠 수도 있었기에 우린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정산0715
고기 : 10,000원
복숭아 : 1,000원
음식 : 7,000원
#자전거일지0715
달린거리 : 98.49 km
누적거리 : 160.91 km
일본누적거리 : 0 km
평균속도 : (미기록)
최고속도 : (미기록)
달린시간 : 11:52:48


*Take를 누르시면 녹음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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