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종이다.
나에게는 두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해외에서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는 열등감, 해외에서 다시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아쉬움.
국내에서도 이만큼 잘 배워왔다는 자부심, 이제 다른 사람에게도 영어를 나누고 싶다는 주제넘음.
나는 영어가 좋았다.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6학년때 원어민 선생님 앞에서 행맨게임을 처음 하면서 우리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내가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좋았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다보니 영문과에 들어갔고, 용돈이 좀 많이 부족해서 과외를 시작했다.
과외를 하다보니 마음에 드는 교재가 없어서 문법교재를 직접 만들었고, 그렇게해서 애들 영어교과서 외우게 시키고 문법문제 만들어서 풀게하다보니 학생들이 늘었고, 경력도 쌓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재미가 없었다.
학생들의 실력이 어느순간부터 늘지 않았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문법쪼가리를 "우려먹고"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영어는 이게 아닌데...
그래서 나는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된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첫 영어회화수업시간에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들의 주목을 한번에 받았던 일,
고등학교때 대학생들과 같이 회화수업을 받으면서 칭찬을 받았던 일,
중학교때 회화학원에 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업을 받았고, 예쁜 누나가 잘생긴 원어민 선생님을 학교축제로 초대하고 싶다는 말을 통역해주었던(그래서 나도 여고 학교축제에 초대받았지만 용기가 없어서 가지 못했던) 일.
결국은 회화였다.
나는 남들이 하지 않던(당시에는 그랬다)회화를 중학교1학년때부터 했다.
물론 문법도 하고, 단어도 하고, 교과서도 외웠지만,
그건 남들도 했던 거고,
나는 남들과 달리 일찍 회화를 했다.
그래서 회화를 도입하기로 했다 나의 과외에도.
나: "어머님, 영어는 입시가 전부가 아닙니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거든요. 결국 의사소통이 되면 영어가 됩니다. 문법도요."
어머님: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선생님이 회화도 봐주실수 있나요?"
나:"아니요. 저는 원어민도, 유학파도 아니라서 좀 그렇구요. 문법이랑 독해는 제가 지금처럼 잘 할테니까, 원어민 과외를 따로 붙여주시던가 원어민 회화학원에 보내시면 어떨까요?"
어머님: "아직 애가 중학생인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되나요?"
나:"네 그럼요, 지금부터 준비해야 나중에도 영어를 쭉 잘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어머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때 과외하고 있던 2,3명의 어머님에게 나는 회화선생님 또는 회화수업을 자녀들에게 별도로 붙여줄것을 권했다. 그리고 나는,
잘렸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잘 가르치던 내가 왜 하나씩 둘씩 잘렸는지.
내가 가르쳤던 곳은 강남이 아니다. 강남 이외의 지역을 절대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강남출신 아니고.
자식에게 과외시키는 부모 마음이란(물론 형편이 넉넉한 분도 있겠지만), 영어과외 선생님이 영어를 전반적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이지, 또 다른 비용을 발생시키게 만드는 과외선생님을 환영할 리 없다.
더불어 시험과목도 아닌 회화를 굳이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당연히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꿨다. 내가 회화를 하자.
수업의 1/2을 과감히 영어로 진행했다. 외고 갈 중학생도 아닌데, 학교시험에 회화도 없는데 그냥 했다.
부모님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학교성적의 변화를 지켜보시라고 했다.
그러자, 적어도 잘리진 않았다.
학생의 성적이 많이 올랐냐고? 음.. 반반이다. 오른 애들도 있고, 그대로인 애들도 있었다. 다행이 많이 떨어진 애들은 없었다.
그런데 애들이 나를, 내 수업을 좋아했다. 그 이후 나는 학교 교사가 되어서 과외를 할 수 없게 될 때 까지,
과외시장에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중 상당한 시간을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데 썼다.
처음 영어로 영어를 가르쳤던 것이 2004년쯤으로 기억한다. 과외한지 4년쯤 되었을 때,
그리고 2년있다가 나는 교육대학원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영어교육학을 배웠다.
나는 영어교육학이 좋았다.
영어학습을 학습한 사람들, 대가들의 이론이 있었고, 실험이 있었고, 이유와 논리가 있었다.
나는 영어교육학의 논리적인 설명이 좋았다. 왜 이렇게 영어를 공부하면 늘고, 저렇게 하면 늘지 않는지를.
내가 왜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는지,
그렇지만 왜 여기서 더 잘하기는 힘든건지,
영어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고,
미국에서 평생을 살아도 영어를 더듬거리는 사람은 뭐가 문제인지,
영어교육학에는 논리적인 설명이 있었다.
세상에 영어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영어공부방법이 검증없이 여전히 통용되는 것 같다.
영어교육학이라는 것이 결국은 매우 상식적인 전제로 시작해서 상식적인 결론으로 끝난다.
영어교육학을 차근차근 배운 사람이라면,
'뭐야, 이걸 꼭 이론으로 배워야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이 꼭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설명해야지만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사과는 어쨌거나 떨어지지만,
우리는 설명을 원하고, 설명에 감탄하다.
그래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영어학습을 학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