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고 싶다면
아이들을 바이링구얼로 키우겠다는 내 계획의 핵심은 어떻게 보면 매우 간단하다. 그냥 원어민 놀이를 하는 것이다.
나와 와이프가 원어민이 된 것 처럼 아이들에게 영어로만(거의 영어로만) 말을 하고 생활을 하면 된다.
참고로 나와 와이프는 전혀 원어민이 아닌 그냥 한국사람이다.
이 부분에서 이 글 독자의 절반이상은 떠나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떻게 미화해서 써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솔직한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맞다. 내가 한 이 바이링구얼 페어런팅은 부모의 영어실력이 필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품이 상당히 많이 드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성공은 확실히 보장되는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성공하지 않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차차 자세히 다루어보려 한다.) 아이의 입에서 영어가 흘러나올 수 밖에 없는 방법이다. 품이 많이 들지만, 다른 여러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랄까. 품이 많이 들어서 품이 많이 들지 않는 역설이라고나 할까.
시리즈의 처음에 다루었듯이, 이런 방법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고,
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거나
당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또 영어와 전혀 관계가 없더라도 또는 자녀에게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는 분들이라도,
이렇게 조금은 미친(?) 방법을 해오고 있는 내 이야기가 읽을거리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글을 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데 있어 조건인 나와 와이프의 객관적인 영어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내 영어실력을 내가 늘어놓아야 하다니, 조금 재수가 없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는게 역시 가장 좋은 것 같다.
먼저 나는 한국에서만 영어를 배운 완전한 토종이다.
토익 만점을 20대때 두번 받은점이 있고, 회화학원에 가면 가장 높은 반에 배치가 되며(요즘은 안간지가 오래되긴 했다), 영어로 필요한 말은 꽤 할 수 있고, 동시통역사를 기르는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한 적이 있다(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실제로 다니지는 못했다). 원어민과 대화해서 5분정도는 내가 원어민인것 처럼 속일 수 있는 정도의 영어실력이다.
흔히 말하는 영어권 경험이란 미국에 30대 후반이 되어서 일주일 여행갔다온것과 군생활을 미군에 파견된 한국군 즉 카투사로 했다는 것 정도이다. 카투사, 물론 도움은 되었지만 조금 특이했다. 나는 번역병이었기 때문에 아침 조회에서만(군대는 점호) 미군과 잠깐 교류가 있고, 하루종일 한국말을 하는 카투사들과만 한 사무실을 썼다. 그래서 카투사 시절에 카투사로서는 정말 특이하게도 독해실력이 많이 늘었다. 문서를 번역해야 하니까. 안타깝게도 영어를 듣고 말할일은 정말 적었다(이것도 역시 기회가 되면 군생활에 대해 써보겠지만..누가 읽을까?)
이러면 내가 영어를 엄청 잘하는 것 같은데 그런것도 아니다. 내가 원어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때는 다음과 같은 때이다. 이런 것들은 시험점수와 별반 관계가 없다.
-동작에 대한 표현을 하기가 어렵거나 금방 떠오르지 않을때: ex) 고개를 "까딱까딱"한다. 차를 삐딱하게 댔다.
-간단한 수학수식 같은 것을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울때: 2의 세제곱, 2+4x6=24 이런것들
-가정에 있는 사물들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모를때: 주방에 있는 뒤집개, 믹서기, 강판. 또는 과자봉지, 쓰레기 봉투
-일상에서 흔히 쓰는 개념들: 아파트 분양, 물건살때 할부, 물은 셀프입니다
위의 예시들 중에는 내가 충분히 영어로 '설명'할 수 있지만 딱 맞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내가 의식적으로 찾아내거나 연습해서 나아진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은 끊임없이 나온다. 영어권 국가에서 실제로 살거나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와이프도 완전한 한국사람이다. (와이프의 영어실력을 평가하다니, 와이프한테 미안한데 그래도 객관적 사실을 최대한 전달해야 하니까..)
토익 점수는 900점대 중반, 영어로 필요한 말은 어느정도 할 수 있다. 나처럼 영문과를 나왔고 나와같은 대학원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초등학교에서 영어 방과후 수업을 하고 있으니 영어를 가르치는 직업이다. 어릴때 윤선생 영어를 좋아하고 열심히 해서 발음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학생때 미국 교환학생 경험이 1년이 있다. 원어민과 룸메이트도 했었고, 나보다는 현지 생활 경험이 있어서 내가 많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외에 비원어민으로서 나와 겪는 어려움은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어민이 아니라도 다음의 조건이라면 해볼만하다.
1.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거나
2. 영어 전공자이거나(영문과전공자가 얼마나 많은가)
3. 해외에서 1년 또는 그 이상 살다온 경험이 있다면
4. 영어를 좋아하는 편이라면
이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할 마음이 있는가' 이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영어로 소통하다보면 자신의 영어에 구멍이 느껴진다. 절감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구멍을 안다는 것은 메울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모자란 부분을 모른다면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요즘은 내가 시작했을때와는 달리 너무나 강력한 친구 ChatGPT가 있기 때문에 정말정말 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끊임없이 표현을 찾고, 공부하는 과정을 성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지난한 과정이 단순히 힘들지만은 않다.
모든 페어런팅은 부모 자신의 성장이다.
바이링구얼 페어런팅은 부모 자신도 바이링구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