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딴지 걸기
(소제목을 읽은 사람은 알것이다. 이 글은 괜한 딴지다. 걸러듣길 미리 권유한다.)
시*스쿨 이라는 분이 있다. 귀엽게 생기신 강사분이 나와서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영어를 탁 튀어나오게 해주신다는 분.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더니 이제 사업이 번창하셔서 홈쇼핑에서도 자주 보이신다.
먼저 밝힌대로, 이 글은 이 공부법에 대한 실증적 검증이 아니다. 실증적 판단을 하려면 이 공부법으로 공부하신 분들이 이 공부법으로 공부하기 전에 영어실력을 측정한후, 이 공부법으로 공부를 하시고 그 이후 영어실력을 다시 측정해서 비교해야 되고, 대조군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절대 실증적 검증은 될 수 없다. 다만, 이 계기에 시중의 영어공부법을 이론적 배경을 한번 살펴보자는 이야기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자신이 효과 본 방법이 있으면 그게 좋은 방법이다. 난 절대 효과 본 방법을 폄하할 생각이 없다. 그냥 이론적 배경을 한번 따져보는 것 뿐이다.
나도 약간 맛만 보았는데, 시*스쿨, 참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무언가 가르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말로 짧은 문장을 선생님이 영어로 하나 던져주고, 비슷한 우리말 문장을 계속 던져주면서 그 말을 영어로 내뱉을 수 있도록 반복을 시켜주고 있었다. 잠깐 흉내내보면 이런 식이다. 진짜처럼 해보고 싶으면 왼쪽의 우리말만 보고 머릿속으로 영어문장을 생각해본뒤 오른쪽의 영어를 보자.
"나는 학교간다"는 I go to school 이에요.
그럼 "너는 학교간다"는요? ---> You go to school
"그는 학교간다"는요? ---> He goes to school
"그녀는 학교간다"는요? --->She goes to school
(여기서 쫌 쉬고..)
"나는 학교갔다"는 I went to school 이에요.
그럼 "너는 학교 갔다"는요? --->You went to school
"그는 학교 갔다"는요? --->He went to school
"그녀는 학교 갔다"는요? --->She went to school
이 방법의 효용을 따지려면, 2차 세계대전으로 좀 가보는게 좋겠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수퍼파워로서의 미국은 세계 2차대전즈음부터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전의 미국은 1차세계대전까지만 해도 강한 나라이기는 했지만 아직 수퍼파워는 아니었다.
해외에서 스페인 좀 부수고 필리핀을 차지한 정도(1898년)이지, 유럽제국들처럼 세계 전면에 나서서 식민지를 구축하던 수준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자국민들은 그냥 자국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도 그냥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문자위주의 문법위주의 독해위주의 학습법이 주류였는데...
빵! 일본이 진주만을 치고 들어오면서 미국은 2차세계대전에 거의 자동개입하게 되고,
드넓은 태평양으로, 유럽전선으로 가며 프랑스 러시아 등의 동맹국들과 또 독일과 일본등의 적들과 맞딱뜨려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포로라도 잡으면 심문이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손들어, 머리숙여, 대장나와 해야 할 것 아닌가? 한마디로, 외국어의 필요성이 '갑자기' 증대되었다. 그래서 이런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지 생각하다가 만들어낸 것이 '군인정신' 학습법 Army Method 였다.
군대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텐데, 군대에서는 무엇이든 분절적으로 잘라서 짧게, 그리고 반복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차렷 열중쉬엇만해도 얼마나 많이 반복시켰는가) 이 특성을 그대로 언어학습에 도입해서, 복잡하고 장황한 문법설명은 개나 줘버리고, 실전적으로, 즉 실제로 쓰이는 대화문을 듣고 따라하게 하면서 반복 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Audiolingual Method, ALM으로 발전하게 된다.
ALM은 근본없는 방법이 아니었다. 있어보이는 학습법들은 다 나름의 이론적 근거가 있는 법이다.
ALM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려면, 개를 불러야 한다.
바로 이 사진.
심리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분은, 아니 관심없는 분도 딱 보면 감이 오실 그 그림, 맞다.
파블로프의 개실험이다. 다시 떠올려보자면,
잘 지내던 개를, 실험실에 데려온다.
밥을 준다. 개는 침을 흘린다.
그러다가...
종을 치고, 밥을 준다.
종치고 밥주고 종치고 밥주고
이것을 반복하면
개는 종만 쳐도, 즉 밥이 없어도, 침을 흘린다.
종
개
"그가 종을 치기 전에는
종은 다만
하나의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밥주며 종을 쳐주었을때,
종소리는 나에게로 와서
밥이 되었다."
개가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되었다는 말은, 아무 상관도 없던 종(자극)이 침(반응)과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고전적 조건형성이라고 한다. 이 고전적 조건형성에, 즉 개가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데 깊은 생각따위는 없다. 그냥 종 치면 침이 흘려지는 것이다.
학습법이 개실험에 근거했다고 하면 유난히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간도 분명 생물학적으로는 동물이고, 동물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교육학이나 영어교육학에서는 이 실험이 빠지지 않고 반드시 나온다. ALM의 학습법은 당시 유행하던 파블로프의 개실험과 같은 행동주의에 기반하고 있었다. 자극과 반응을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필요한 상황이 되면 탁하고 외국어가 튀어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반복을 시켜주는 것이다. ALM에서는 군대에서 열중쉬엇! 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손이 포개져 등뒤로 가고 양발은 약간 벌려서게 되는 것과 같이, 외국어를 말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자극) 아무생각없이 그 말이 외국어로 튀어나오도록(반응) 정해진 문장을 무한반복한다. 그래서 문법설명은 필요없고 오히려 발음이 중요해진다.
시*스쿨은 내가 보기에는 ALM과 상당히 유사하다. 발화(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반응이라면, 그럼 개실험에 나온 "종(자극)"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말이다. 이 점이 나는 이 학습법의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영어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국말이 머릿속에 떠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한국말이야! 그 말을 영어로 미리 연습해두는거야. 그리고 한국말이라는 자극이 머릿속에 떠올랐을때 반복한대로 탁하고 영어가 튀어나가게 하자"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말은 결국, 이 방법은, 우리말이 완전히 자리잡혀있고 우리말의 영향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학습자, 즉 성인용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이 방법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성인이고, 또 주 광고층도 성인으로 사실상 설정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ALM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말문이 터진다는데 있다. 반복을 통해서 한 문장만을 여러번 입밖으로 내뱉으며 연습했다고 하자. 닳고 닳은 한문장을 외국인앞에 꺼내놓는 것은 연습하지 않은 다른 문장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서 꺼내놓는것 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김밥천국의 깁밥 달인 이모님이 있다고 하자. 김밥주문이 들어온다. 아무리 신기의 기술로 주문을 받자마자 김밥을 싸서 내놓는다고 한들, 내가 몰래 미리 말아놓은 김밥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 빨리 내놓을 수는 없는거다. 그래서 시*스쿨을 학습한 분들은 정말 말문이 터지는 놀라운 경험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영어로 말을 하고 싶은데 한국말만 머릿속에서 뱅뱅돌거나, 영어단어 한두개만 입술에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끝내 자괴감을 맛본 분들에게, 이 방법은 매우 좋은 방법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ALM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음, 살아있기는 한데 그대로 살아있지는 않다. 적어도 영어교육학교과서에 따르면 주류는 아니다. 이유는 왜? 좀 많이 올드한 농담으로 답을 대신해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차를 운전해가던 한국사람이 사고가 났다. 다행히 죽진 않았는데, 머리에선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
지나가던 친절한 미쿡사람이 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물어봤다. 피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미쿡사람: "Hey, are you ok? how are you?"
한국사람: "아임 파인.. 탱큐.. 앤드 유?"
그나저나 우리 어머니도 시*스쿨 책 사드렸는데,
지금 좀 시원하신지, 전화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