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만난 하루
다정함은 F와 T의 차이, 공감과 공감능력 결여,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설명하기엔 뭔가 복잡하다.
난 굉장한 오지랖과 호기심의 소유자인 동시에 한없이 무심한 인간이다. 마음이 쓰이는 상대에겐 그대로 직진해 달려 나가고 잘 모르는 사람에겐 그게 절친한 사람의 누군가 일지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예 모르는 타인에겐 더더욱 관심이 없다. 물론 사회적으로 훈련된 공감능력을 끄집어낼 때도 있는데, 나이가 먹어 그럴 에너지도 낭비라는 생각만 늘었다. 결국 내 사람이냐 아니냐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얼마 전 웨딩 작업을 하다가 기절을 했다.
기절했다는 것도 사고 당시엔 추측일 뿐 내가 어떻게 다쳤는지 기억이 없었다. 내 기억은 갑자기 내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다는 것이고, 신랑신부의 지인인지 일찍 와 있던 하객이 나를 괜찮냐고 흔들고 있던 것이었다. 휴지를 주며 턱에 대라고 해서 긁힌 건가 라는 생각도 잠시 피가 손에 묻어나고 나를 보는 하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일어나 신부대기실에 세팅된 거울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이렇게 심하게 다친 건 처음이라 이게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는데, 보자마자 느낀 건 턱에 구멍 난 건가...라는 생각이었다.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첫 번째 응급실은 접수처에서 봉합은 안되고 소독만 가능한데 그럼 7만원이라고, 접수를 할 거냐고 물었다. 웨딩 작업을 하던 착장 그대로 장갑 낀 손으로 턱에 휴지를 대고 상처가 더 벌어지지 않게 잡은 채, 어벙벙하게 그 사람을 바라봤다. 접수를 해야 될지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운전해서 동행해 준 동료 선생님이 봉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고, 119에 전화해서 안내를 받으라는 답을 받았다.
병원에서 나와 119에 전화를 했다.
난 도봉산역 근처이고, 넘어져서 턱이 찢어졌고, 지금 쌍문동 00 병원에 왔는데, 봉합이 가능한 병원을 여기에서 안내받으라고 했다고 줄줄 읊었다. 119에서는 현재 진료가 가능한 성형외과 병원 리스트를 보내겠다, 단 미리 전화해서 봉합이 가능한지 꼭 확인하고 가셔라- 는 답이 왔다. 그렇게 긴급 재난 문자처럼 병원 상호와 번호가 연달아 문자로 들어왔다. 환자가 직접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게 뭐지. 당황스러웠고 배터리는 10%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그게 꼭 지금 내 상황 같았다. 리스트는 강남, 신사 쪽이었다. 전화를 해도 이미 영업이 끝났다는 AI 음성뿐이라 마음이 조급해져 내 위치 기반으로 근처 병원을 검색해 봤지만 이미 영업을 종료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겨우 영업하는 곳을 발견해 전화를 하면 우리 병원은 봉합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이런 거구나. 소독이라도 우선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다른 곳에 있던 대표님이 의정부 백병원에서 봉합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알렸다. 다만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라서 흉 지는 건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고민하다가 담당자와 다시 통화해 보고 우선 열린 상처를 봉합하는 게 우선이고 상처는 추후 수습하기로 결정했다. 도착한 백병원은 의사 선생님 한 분이 모든 진료를 보고 계셨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내 상처를 보고 의사는 이 정도는 응급한 일 아니라며 밴드를 붙여줄 테니 봉합은 월요일에 성형외과에 가서 예쁘게 꿰매어달라고 하라고 했다. 그 외 여러 가지 이 선생님의 언행이나 태도를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근무 환경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악의가 있다기보다 그저 불쌍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응급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며, 팀장님에게 카톡을 했다.
사실 이틀 뒤인 월요일, 팀에서 중요한 보고가 있었다. 월요일 오전에 성형외과를 찾아 봉합을 하려면 연차를 써야 할 것 같았고, 최대한 빠르게 공유를 해야 될 것 같았다. 턱이 조금 찢어졌고, 응급실 두 곳을 돌다가 봉합은 어려워서 월요일에 해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다소 장황하게 설명했다. 내 차례가 되어 의사를 만나고 다시 치료까지 기다리는 사이 카톡이 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는 놀람과 월요일에 큰 일 없으니 연차를 쓰라는 말, 그리고 월요일에 상황이 어떤지 다시 공유해 달라는 끝맺음이었다. 아.... 하? 그렇구나.
조금의 다정함도 느낄 수 없었다.
직장인들의 기계적인 대답, 넵넵을 보냈다.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얼마나 다쳤고 현재 어떤지 괜찮은지 조차 관심이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을 때 흔히 마무리하듯 카톡 하는 미묘한 그 말투. 본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토하고 아파서 하원을 시켜야 되는데 남편이 대신 가기로 했다며- 모든 상황을 공유하던 그런 분이 말이다. 월요일에 출근했을 때 이렇게 다쳤는지 몰랐다며 매우 걱정하는 톤으로 말하는데 사람한테 정 떨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다행히 나는 그날 봉합을 했다.
영웅 같이 나타난 어떤 의사 선생님 덕분에. 그날 치료한 게 정말 다행일 정도로 내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뼈가 보일 정도로 찢어진 상태라 내부 근육을 봉합하고 2차로 피부를 봉합했다. 그날 나를 걱정해 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이 있다. 그들의 다정함은 본능이자 지능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십 군데를 전화해서 결국 의사를 찾아내고 종로에서 도봉까지 와서 나를 데리고 다시 홍대 병원으로 가고, 응급실에서도 옆에서 불안하지 않게 같이 있어주고 이후에도 괜찮은지 계속 안부를 묻고, 집에서 아이와 있다가 응급 환자가 있다는 말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와서 봉합해 주고- 난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할 거고, 이 사람들의 다정함을 기억할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