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소 Jan 03. 2019

[3화] 국제중재와 (미국) 소송, 어떻게 다를까?

제35회 ICSID, ICC, ICDR-AAA 콜로키엄 후기 by 김다애

지난 12월 7일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ICSID), 국제상공회의소 국제중재법원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미국중재협회 국제중재센터 (American Arbitration Association International Center for Dispute Resolution)에서 공동 주최한 제35회 콜로키엄 행사에 일부 참석했다.[1]


지난 글에서 언급되었듯이 1983년부터 시작된 콜로키엄은 매년 국제중재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올해는 ‘Advancing Innovation in International Arbitration’이라는 주제로 국제 중재 업무를 함에 있어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 논의하고 선례들을 소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윤리적인 문제, 중재판정(award) 집행의 어려움, 효율적인 반대신문 (cross-examination) 등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 중 반대신문에 대한 세션에서는 국제중재와 일반 소송의 차이점이 논의되기도 해서 여기에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해당 세션은 중재 당사자를 대리하는 법률가의 입장 및 중재재판부의 입장에서 어떤 방식의 반대신문이 효과적인 지에 대한 논의를 위해, 실제 중재인, 법률가, 전문가 증인 (expert witness)이 모의 반대신문을 진행하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내용은 바로 중재 절차의 유연성 (flexibility)이었다. 절차법 (American Rules of Civil Procedure), 증거법 (Federal Rules of Evidence) 등을 기반으로 엄격하게 진행되는 소송과는 달리, 국제중재는 형식이나 절차가 유연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중재의 당사자 자치 (party autonomy) 원칙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중재 당사자가 중재 절차에 직접 관여할 수 있고 그 합의 내용에 따라 중재재판부는 더 유연하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모의 반대신문 모습

예를 들면, 국제중재에서 분쟁 당사자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 절차를 분리(bifurcation)할 수 있다. 이를 “bifurcation”이라고 하는데, 일부 쟁점에 대해서 선결적으로 판단하여 그 결과에 따라 중재 절차를 빠르게 종료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중재판정부의 관할권에 대한 판단에 대한 절차를 우선 판단하고 관할권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중재 당사자가 책임이 있는지 여부(liability)를 우선 판단한 후,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서 배상액(damage)에 대한 판단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증거 채택이나 증인신문에서도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는데, 일례로 중재재판부는 소송과는 달리 전문증거(hearsay evidence) 등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 이는 중재 실무에서는 증인의 진술보다는 서면에 의존하는 특성 때문이기도 한데, 국제중재의 경우 전통적으로 구두변론 (oral advocacy)보다는 서면 변론 (written advocacy)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2] 중재에서도 구두변론이나 증인신문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재의 경우 중재판정부가 증인의 출석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심리 기간에도 증인의 증인진술서(written witness statements)가 구두 증언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덧붙여 내부자료를 요구하는 증거개시 절차(discovery)의 범위 또한 제한할 수 있고 선서증언(deposition)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심리 절차가 조금 더 관대할 수 있다는 논평이 있었다.


소송에서는 더 엄격하게 사용되는 유도신문도 더욱 유연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모의 심리에서 패널로 참여한 한 법률가는 전문가 증인을 개방형 질문들(open ended question)과 짧고 간결한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들을 주로 사용해서 반대신문을 하는 방식을 보여준 후, 사실상 후자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세션을 진행했던 중재인은 보통법체계에서 훈련받은 법률가들이 종종 대립적으로 증인신문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많은 경우 중재인들은 신빙성과 상관없이 증인을 궁지에 모는 (“boxing in the witness”) 형식의 신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평했다.[3]


마지막으로 한 법률가는 중재재판부가 일반 재판과는 달리 반대신문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신문의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되 중재인의 개입에 적절하게 반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필자가 참관한 심리기일[4] 중에도 중재재판부가 반대신문 중간중간에 질문했는데, 보통의 경우 주신문 (direct examination), 반대신문 (cross examination), 재주신문 (redirect examination) 후에 이루어지는 일반 재판에서의 판사의 개입과는 상이함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제중재 분야의 진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일단 소송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라"라는 조언을 많이 듣게 되는데, 그만큼 국제중재 분야로의 진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국제중재 업무에도 일반 송무 업무를 위한 실무 능력이 중요하다는 평이 많기도 하다. 한 로펌 파트너는 국제중재 분야는 분쟁금액이 큰 경우가 많고 그만큼 ‘고급 (high-end)’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5] 일반 송무 업무에서 요구하는 실무 능력을 제대로 갖춘 변호사들에 대한 수요가 크다고 보았다. 실제로 저년차 변호사들을 만나보면 국제중재 업무만을 하는 변호사도 있지만, 공정거래법 등 일반 소송 업무를 함께 맡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국제중재 업무가 소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는 볼 수 없는데, 이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제중재가 태생적으로 일반 소송과 다르기 때문이다. 중재 절차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중재 심리 절차에 대한 이해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

[1] 위 기관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지난 글 ([2화] 어떤 중재 기관을 이용할까?)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전형적인 중재 절차에서는 심리기일 사전에 몇 차례에 거쳐 주장 서면 교환, 서증 및 증인진술서 제출이 이루어지고, 심리기일에는 구두변론 및 증인신문이 이루어진다. 

[3] 참고로 국제중재에서 서로 다른 법률체계, 즉 유럽대륙식 대륙법(civil law)과 영미식 보통법 (common law)이 충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 절차에 있어 영미법계의 재판과 대륙법계의 재판을 절충한 형태가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는 세계변호사협회(IBA)에서 제정한 국제중재 증거조사에 관한 규칙이 있다. 

[4] 참고로 ICSID에서는 인턴 기간 중 비공개 심리를 원칙으로 진행되는 심리(hearing)를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재 당사자들 (ICSID의 경우 국가와 투자자) 및 중재재판부의 사전 동의를 받아 보통은 일주일 정도 소요되는 심리를 참관할 수 있고, 이 경험을 통해 중재 심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특히 중재재판부, ICSID와 같은 사무국(secretariat)의 중재 기관 법률가, 중재 당사자, 증인 등이 어떻게 상호 작용 (interact) 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중재와 일반 소송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ICSID에서 진행되는 심리의 경우 보통은 1주일에서 2주일, 길게는 3주까지 진행이 되는데, 심리의 종류에 따라 (예를 들면 annulment proceeding의 경우) 하루 또는 이틀 안에 끝나는 경우도 있다. 

[5] 현재 변론 종결되고 내년 봄 최종 선고를 앞둔 론스타 분쟁 (LSF-KEB Holdings SCA and others v. Republic of Korea (ICSID Case No. ARB/12/37)을 살펴보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요구한 분쟁 금액은 46억 7950만 달러 (약 5조 17000 억 원)에 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화] 어떤 중재 기관을 이용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