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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Jun 04. 2024

배경음악이 없는 카페

적막감을 이긴 자, 편안함을 얻으리

찾아가고 싶은 카페의 3요소.

신선한 원두, 아늑한 공간, 편안한 음악


연애할 때 광화문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는 우리의 아지트였다. 10평도 채 되지 않을 공간에 입구부터 자리를 차지한 로스팅기계가 그곳의 상징이다. 기계가 쉬고 있을 때도 원두 볶는 향기가 진동을 했다. 시크한 사장님과 어색하게 눈인사를 하고 3미터 정도는 들어와 봐야 안쪽 동굴 같은 공간을 마주한다. 테이블이 네댓 개 있지만 다 합쳐도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운 좋으면 특별 VIP 좌석인 밀실에 앉을 수 있었다. 아마 좁은 붙박이장이 있던 것을 텄는지도 모르겠다. 뚫려있는 쪽만 빼고는 3면에 모두 책이 빼곡한 벽지를 붙였다. 책으로 둘러싸인 블랙홀 같은 느낌이다. 벽에 붙은 좁다란 테이블이 있고, 딱 둘만 앉을 수 있는 붙박이 의자가 있다. 딱 둘만 앉을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적당히 은밀하고 아늑하다. 찾아간 날 딱 맛있게 되었다는 원두를 추천받아 핸드드립한 커피를 마셨다. 거기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한 손을 꼭 잡고 있으면, 몽글몽글한 설렘과 동시에 편안함이 서로에게 전달되었다. 맛있는 커피, 아늑한 공간 그리고 편안한 음악까지 있어야 나에겐 또 가고 싶은 카페가 된다.




단 예외가 있다. 이 3요소 중 무엇 하나가 없는데도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무엇이 없느냐. 바로 배경음악이 없다. 음악이 없는 게 무슨 대수라고? 항상 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한다. 어느 카페에나 항상 음악이 흐른다.


가는 곳마다 원두의 신선도와 커피 내리는 방식, 커피머신의 차이, 심지어 어떤 물을 쓰느냐에 따라 커피 맛은 천차만별이다. 커피 박사도 아니고 그렇게 입맛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커피가 맛있는지 없는지는 먹어보면 안다. 공간도 딱 보면 안다. 번잡스러운지 깔끔한지 아늑한지.


그런데 음악은 없어봐야 안다. 어디를 가든 항상 배경음악이 깔려 있으니까. '음악이 좀 시끄럽네', 혹은 '이 음악 좋네.' 할 순 있지만, 아예 음악이 없는 카페를 경험할 일은 드물다. 음악이 없이도 그 적막감을 이길 수 있어야 비로소 원두와 공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걸 나는 최근에 경험했다.


들어서자마자 적막감이 흐르는 카페. 배경음악도 없고 손님도 별로 없는 곳. 둘째 아이를 데려가면 20분 이내에 100프로 잠드는 곳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주문한 레모네이드와 아이스크림이 올려간 크로플을 순식간에 해치운 후, 책을 펼치고 좀 읽으려나 할 그 타이밍이다. 어느새 아이는 고개를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책 위로 팔을 포개 잠이 들어 있다. 그러면 나는 오히려 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어느 날은 잔잔한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온다. 차이는 그날 카페를 누가 운영하느냐다. 이곳은 한 농인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농인은 청각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과 언어 구사가 어려운 언어장애인을 통틀어 말한다. 음악이 나오는 날은 비장애인인 목사님이 계실 때고, 조용한 날은 농인이 일하고 계실 때다. 주문은 언제나 키오스크로 했고, 처음 간 날과 이후 몇 번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저 손님이 별로 없는 그 편안한 공간에서 책을 읽다 나왔다.


그런데 없어봐야 그 존재를 안다고 했던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음악이 없는 적막감은 카페의 오픈 여부를 지레짐작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 또각 구두를 신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내가 내는 모든 소리에 눈치를 봤다. 그만큼의 적막감이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고, 마주한 남성분과 소리 없는 미소를 나눴다. 아이는 사회화를 통해 그 조용함을 깨뜨릴 수 없었는지 소곤소곤 말하기 시작했다. "(소곤) 엄마, 여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소곤) 엄마, 나는 여기 크로플이 제일 맛있어. 아이스크림을 많이 주시거든.", "(소곤) 엄마는 무슨 책 읽을 거야? 나는 학교에서 엉덩이탐정 빌려 왔어." 나도 덩달아 소곤소곤 말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크게 얘기해도 돼. 괜찮아."


친절하게도 아이스크림을 잔뜩 올려 테이블에 갖다 주셨다. 안면 가득 미소를 띠고 맛있게 먹으라는 듯한 손 제스처를 하셨다. 나도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아이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영수증에 "주차 등록 부탁드려요. 차량번호 : 0000"라고 적어 직원분께 내밀었다. 눈썹을 한껏 올리고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겠다는 대답이다.


카페를 나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지나쳤다. 넓은 공간에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같은 시간대 바로 옆 건물인데 말이다. 내 관점에서 보면 커피 맛의 큰 차이는 모르겠고, 이곳의 커피 가격이 더 저렴하며 더 쾌적한데 손님들은 한 곳에 몰려있다. 선호의 차이는 개인의 취향이지만, 장애인이 근무하는 곳이기 때문에 막연히 부담감을 가지기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커피열매가 향기로운 커피가 되기까지...

작은 커피콩이 한잔의 커피가 되려면
연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로스팅 기계 안에서 뜨거운 열을 만난
커피콩은 타다닥~ 터지는 크렉소리를 냅니다
커피콩의 크렉소리는 향기로운 커피를
만들어내기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확인 과정입니다

크렉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은 어떻게 로스팅을 할까요?
농인은 가장 향기로운 커피콩의 색깔을 찾아냅니다
농인과 청인이 함께 만들어내어 두 배 더 향기로운 커피
카페 125에서 지금 만날 수 있습니다

- 카페 벽면에 부착된 글을 옮김 -




소리를 못 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듣는 사람일 뿐이다.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일 뿐이다. 달리기를 못 하고, 요리를 못 하고, 노래를 못 하는 사람이 있듯이 누구나 어려워하고 못 하는 것이 당연히 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커피콩의 크렉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향기로운 커피콩의 색깔을 찾듯이.


배경음악이 없는 적막한 카페. 하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그곳만큼 집중이 잘 되면서 편안한 곳도 없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고 내가 조금 더 선의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기도 하다. 당신 그대로도 괜찮고, 나도 충분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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