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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물꾸물 Oct 12. 2021

우물꾸물하다가 이대로 죽진 않겠지

27살을 두 달 앞둔 생일날, 위기감을 느끼다

우물꾸물- '우물 안에서 꿈을 찾는다'.


라고는 했지만 '우물꾸물거린다'의 우물꾸물이 오히려 나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너는 어떤 사람이야?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내가 만든 콘텐츠들을 이야기하더라. 


'이런 단편 영화를 만든 사람이고요, 이런 글을 썼어요.'


나는 결국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와 뜻이 통했으면 하지만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것을 느낄 수 있게끔 하고 싶다.

콘텐츠는 하나의 세계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이렇게 콘텐츠를 사랑함에도, 나는 자주 만들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 많았다.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문제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 이 주제들에 대해 글을 쓰겠노라고 수없이 친구들 앞에서 선포했으나 실행한 적은 없었다. 슬쩍 시작하고 금방 포기했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여자 생활 축구 유튜버 키킷, 브런치 매거진 '젊은 ADHD의 슬픔', 신지수 작가의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모두 내가 보자마자 질투가 폭팔할만큼 내가 해보고 싶었던 작업들이었다. 내가 아예 생각도 못해본 것이었다면 마냥 동경했을 텐데 생각해본 것만으로도 손에 쥔 듯한 착각이 들어 아쉬워 죽을 지경이었다. 웃기지만 질투가 난 나머지, 시간이 꽤 지난 뒤에 그 콘텐츠를 볼 수 있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우물꾸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가 생기면 일단 시작하고 봤다. 내 기억의 첫 콘텐츠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쓴 역사 소설이었는데, 계기는 교과서 학습활동이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짧은 교과서 속 소설과 함께 적힌 학습활동은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 만들기"였다. 당시에 사이가 좋던 남-녀 짝궁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을 부부로 만들어 글을 썼더니 친구들에게 폭팔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때가 아마 콘텐츠를 만들고 희열을 느꼈을 때였던 거 같다. 다른 과목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멈출 수가 없어 교과서 아래다가 공책을 깔아놓고 썼다. 


내 창작 활동은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강남스타일 뮤비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 독서실에서 공부하다말고 친구랑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올래?" 해서 총 세 명이서 찍었다. 고등학교 때 축제 영상제도 당시 유행하던 슈퍼스타k를 따라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그게 이유였다. 만드는 내내 깔깔 웃었고 가슴이 뛰었다. 재밌었다. 내가 이걸 좋아하는 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즉흥과 직관에 기댄 창작 방식은 어느 순간부터 흔들렸다. 무계획으로, 삘에 기대서 나오는 퀄리티에는 한계가 있었다. 머리가 클수록 주변에서 기대하는 퀄리티가 달라졌다. 나 또한 더 큰 세계가 보였다. 보는 것이 달라지니 내 안의 만족도 끓는 점이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부담도 강해졌다. 콘텐츠를 만들기 전 미리 설계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계획을 만들고 지켜야 했다. 내 자신을 경영해야만 괜찮은 콘텐츠가 나왔다. 창작은 전처럼 즐거움만 가득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미루고, 회피하며 살아왔다. '내가 왜 이럴까, 나 원래 창작 좋아하는데...' 에서 '나 원래 안 좋아하나?'에서 '나 창작할만한 그릇이 안되는데 괜히 욕심냈구나'에서 다시 '아냐 나 창작 좋아하는데...'로 몇 바퀴 돌았는지 모르겠다. 그저 돌고 돌다보니 우습게도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것도 27살을 두 달 앞둔 26번째 생일날.


이렇게 몇번만 더 하다보면 20대도 끝날 거고, 30대가 올 거다. 그리고 그 30대도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겠지. 인생은 생각보다 더더 짧고 내 인생도 별 것 없을 거라는 게 새삼 다가왔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많이 떠들고 설치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있는 우물들을 비워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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