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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에이티브 런던 Dec 13. 2018

그리스의 이드라섬에 가야하는 이유

느긋하게 나이들어 가는 비밀의 섬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얻는가. 다음 여행에 대한 영감? 바쁜 직장일상의 탈출? 바쁘게 살아온 대견한 내자신에 대한 일종의 선물을 함으로써 느끼는 만족감? 진정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영감?


누군가 "꿈에도 그리던 산토리니" 라고 하고 그리스 산토리니로 여행을 간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산토리니를 책, 사진,영화, 광고 또는 꽃보다 할배에서 보고 산토리니로 향한다. 그렇게 산토리니에 가서 그분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산토리니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 꿈에도 그리는 산토리니같은 사진들?

이번 여름에 찾아간 그리스의 섬 "이드라"


"Travels with Epicurus: Meditations from a Greek Island on the Pleasures of Old Age" 

대니얼 클레인의 책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을 읽고 알게 된 섬.

한국에서 30년을 살다 어떻게 런던에서 다시 반십년 이상을 살고 나서도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에 대한 물음표는 끊이질 않았다. 그것은 어디서 사는지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토리니가 아닌, 처음 들어본 '이드라' 라는 섬에서는 대니얼 클레인이 던지는 "인생의 노년을 즐기면서 보내는 법"을 한 장면이 선명하게 눈으로 보고 느껴질 수 있을것 같아서, 그래서 직접 가보기로 결정한 섬.


그리스 이드라 섬 Hydra Island. 


나처럼 30대 중반을 넘어 남은 반평생을 어떻게 살까라는 뭔가 심오한 이유가 아닌, 젊은 20대 친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레오나드 코헨이 살면서 음악과 시를 지었던 곳. 클로에 셰비니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애정하던 곳이라는  정도라면, 뭔가 예술적인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이제 아테네에서 약 2시간여 보트로 도착한 이곳은 어떤 곳일까? 득도한 미소를 가득띤 사람들이 내게도 그 미소를 보여줄까?

 


첫인상은 작고, 조용한 시골섬같은 분위기였다. 


이 마을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공사등 일부 꼭 차가 필요한 때만 허가받은 차를 제외하고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은 이 육지에는 말과 당나귀가 전부이다. 페리 관광객이 없는 저녁은 마을이 더욱 좋다. 
당나귀 동키들이 항구에 일렬로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할만했지만,그다지 철학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항구의 모습보다, 그저 전형적인 지중해의 관광지같은 느낌이다. 


먼저 도착해 약 1주일여를 보낸 조가 항구로 우리를 마중나왔고, 그에게서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약 450여개의 계단을 땀을 홍수난듯 엄청 흘리면서 도착한 우리의 풍차빌라에 도착해서 조금씩 비밀을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드라마틱하게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매직 아워가 시작되었다.선셋. 

선셋. 히드라 항구를 마주보는 광경은, 450여개의 계단을 오르며 '불편한 여행지가 이 섬의 비밀이었나?' 하는 의문을 한번에 잊게 만들었다. 


이곳 이드라 섬의 매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바로 느리게, 그렇지만 정확한 시간에서 살아가는 하루.



우리는 이곳 이드라에서 매일 거의 똑같은 루틴을 가진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매미소리 또는 바람소리에 잠을깨, 아침 수영으로 완전히 잠을 깨고 일어나 신선한 그리스 요거트와 과일로 마을 항구와 바다를 바라보는 야외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마을로 내려가 신선한 식재료와 빵, 먹거리를 사거나 마을의 가게를 둘러보거나 갤러리를 갔다.

마을에서 빌라로 올라오기 위한 450개의 계단. 땀이 홍수다. 그저 운동일 뿐이다. 빌라에 도착하자마자 풀장에 몸을 던져 몸을 식히고 조금 쉬다가, 마을에서 사온 신선한 식재료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수상택시를 타고 근처 비치로 가서 놀다오던지. 아니면 우리 빌라에서 수영을 하던지, 책을 읽던지, 또는 마을 근처 다이빙 절벽에서 수영을 하고 논다.


밤 8시 무렵에 맞춰 빌라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도 하고 밤 8시를 지나 9시쯤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우리는 저녁 8시 무렵에는 꼭 빌라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매직 아워- 선셋. 일몰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드라의 해는 온 마을을 오렌지로 물들이기 시작해서,  선셋 직전에 온 마을을, 그리고 이 하얀 빌라를 빨갛게 물든인 후 사라진다 . 


그리고 어둠이 오면, 마을은 오랜 전구색같은 불을 하나씩 밝히기 시작하고 , 이곳 풍차 빌라의 우리들은 저녁 마실을 준비한다. 마을 돌길은 오래된 길이 그대로 간직되고 닳아 맨질맨질할 만큼 부드러워 맨발로 다녀도 좋다. 물론 해진후라 돌길은 참 시원하다.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고, 마을에서 또 450 계단을 올라오면 해진후라도 덥다. 그래서 또 수영장에 뛰어들어 몸을 식힌다. 

그리고 우리는 잠이 든다. 


선셋은 우리 하루의 정점의 시간이었다. 일몰을 보면서 와인을 마시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축복에 감사하는 시간을 보낸다. 

잔뜩 기대를 하고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더이상 쓸 이야기가 없다.

아침에 매미소리나 바람소리에 잠을 깨고, 수영을하고 아침을 먹고, 450개의 돌계단을 내려갔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450개의 돌계단을 올라와 수영하고 쉬고 책을 읽고, 당나귀나 고양이와 놀다가 해돋이를 보고 다시 마을로 내려가 저녁을 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별을 보다 잠들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도 확인하지 않고 해시계를 따라 1주일을 보냈다.  


이렇게 매일 매일 하루를 보내고, 그렇게 떠날 시간이 되니 마음이 뭔가 찡했다. 

이 섬을 떠나서 찡한것만이 아니었다. 바로 내가 얻은 생각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내나이 30중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무엇이 중요한가? 


이 섬에서 만난 사람들 중 우리가 지낸 빌라의 주인인 마리아. 만나는 순간 틸다 스윈튼을 떠올리게 한 그녀는 전직 모델로 화려한 삶을 살다가 모든것을 접고, 전재산을 털어 이 풍차를 사서 빌라로 개조하였다.

그렇게 동키와 고양이를 키우고 강아지들과, 그리고 전남편 (지금은 혼자) 과의 아들이 가끔 찾아오는 이 곳 그리스 이드라섬에서 자신을 히피처럼 살고 있다고 소개한 그녀.   


내가 이드라 섬에서 얻은 생각들. 

'60대가 되면 마리아 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쌓인 멋진 빌라에 살고 싶다? ' 

물론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드라섬의 해시계에, 온도시간에 맞춰진 그 일상들의 건강함. 
보다 내 감정에 내 생각에 솔직해 질 수 있는 그 일상에서 얻는 행복감. 충만감.


이 섬에서 고작 7일을 보내고, 판단을 내리기엔 이른것 같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음에 좀 더 길게 와서 지내면서 이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무엇이 나를 이토록 평안하고 충만하게 만드는지. 마리아의 아름다운 풍차빌라인지, 이 마을인지, 이렇게 자연에 맡겨진 나의 루틴 시간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나는 런던에 와보지도 않고 살다보니 나의 가장 창창한 시절 30대와 40대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스에서는 유명한 산토리니는 가본적이 없지만, 우연하게 일주일을 보내게 된 이 곳 이드라섬에서 나는 
"은퇴를 하고나면, 꼭 이드라섬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연이 주는 알람 - 일출. 일몰. 최고기온 시간, 바다. 밤. 별. 달- 을 보면서 루틴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느림의 삶을 살면서도, 나의 꿈을 지속해갈 수 있는 그런 삶" 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꼭 이민이 답은 아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게도 '꼭 이드라 섬이 답이 아니라'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삶이란 꼭 절대적인 기준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목적적인 개인적인 기준으로 행복을 맞춰나가기도 하기때문에. 

그렇지만 우리는 좀 더 세상을 넓게 보고, 때로는 우연하게 행복을 찾을수도 있고, 지금 있는곳에 행복하지 않다면, 그 장소와 상황보다, 내 삶의 목적을 바꿔감으로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에 있어서, 이드라섬에서의 나보다 행복한것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속의 삶. 느리게 살 수 있는 삶.아름다움 바다.  부산 사람인 나는 이 3가지가 충족한 삶을 원하는 것이다. 지금 30대인 나는 직업이 필요하고 아직 런던에서 할일이 많이 있기에 당장 이드라섬으로 이주는 생각할 수 없겠지만 내 삶이 조금은 더 천천히 갈 수 있도록, 자연속의 삶의 방식이 조금은 내 바쁜 시티라이프에 스며들 수 있도록 뭔가 바꿔나갈 수 는 있을것 같다.  


남들이 그리스하면 "여긴 꼭 가야해!!! "하는 산토리니, 이아 마을을 가지 않고,

내 인생의 궁금증을 찾아 도착한 이곳 이드라섬에서의 해시계를 따라 사는 행복을 처음 느껴본 나처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만의 이드라섬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세상은 넓고, 자연도 엄청나니까. 

전직 모델. 지금은 풍차빌라 주인인 마리
5일간 우리집인 풍차에서 바라본 이드라섬의 마을









석양을 바라보며 수영을 즐기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이집에 얹혀사는 고양이도 함께 석양을 즐긴다.








작가소개
런던생활 8년차영국 광고미디어에서 기획 디렉터로 근무중이나, 퇴근 후에는 런던에서 스타트업을 준비하며 인생 3챕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창업을 준비하며 경험하고 얻는 인사이트와 비지니스 아이디어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며, 가끔 "슬로우 여행"이야기, 트렌디하지 않은 취향의 여행기를 기록합니다. 

인스타그램 @london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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