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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Feb 10. 2024

대부, 조직관리와 인생의 모순에 대하여

무비랜드 라디오 EP4


영화 이야기를 비전문적으로 다루는 무비랜드 라디오. 첫번째 비전문적인 토크 주제는 영화 <대부>. 어쩌다 보니 영화를 빌미로 한 최근의 넋두리 방송이 되었다. 마피아 영화 혹은 가족 영화로 알려진 이 영화를 '조직 관리의 어려움'이라는 화두로 이야기 나눠 보았다. 눈물주의..



모춘: 또 한주가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냈어요.


소호: 너무 정신없고 바쁘고 떨리고 등등등. 정말로 이제 오픈이 목전으로 다가왔어요.


모춘: 약속의 2월. 미완성인 채로 오픈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은 본격적으로 2월이기 때문에 라디오의 본 목적인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느낌도 드네요. 개관작 첫번째는 <대부>. 사실 두편이죠. <대부 1>, <대부 2>. 


소호: 무려 3시간이 넘는 영화예요.


모춘: 너무 유명한 영화지만 사실 오래된 영화라 어떤 얘기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어떤 얘기예요?


소호: 마피아 가족의 이야기죠.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미국에 건너온 가족이고, 주인공 마이클이 그 마피아 가족의 셋째 아들인데 모범생이에요. 가족이 가는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그러던 어느날 사건을 하나 마주합니다. 아버지가 총을 맞게 되는 사건. 그때 결심을 하는 거죠. 복수를 하겠다.


모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소호: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어둠의 세계로 발을 들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이클 개인의 갈등이나 변해가는 모습을 다룬 영화예요. 처음에는 가족이 하는 마피아 일을 거부하거든요. 그런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너무나 정의롭지 않은 일이잖아요. 근데 영화를 보다 보면 마이클의 심리나 변해가는 모습이 이해되고 납득이 되죠.


모춘: 마피아 이야기가 우리 실생활이랑은 되게 먼 얘기인데 사실은 비유적인 얘기 같거든요. 우리도 조직생활을 하면 사실 똑같아요. 사람을 죽이냐 마냐의 물리적인 사실만 다르지. 회사 생활 하다보면 등에 칼 꼽는다 뭐 그런 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마이클이 가족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하는 것처럼 우리 조직도 마찬가지예요. 팀을 위한 일을 한다면서 정말 팀을 위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죠. 우리 팀이 일에 대해서 재미있게 바라보고 실험하고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사실 드러나지 않는 쪽에서는 갈등도 많거든요.


소호: 양면적이죠.


모춘: 제가 조직에서 리딩하는 역할이잖아요. 억지부릴 때가 많거든요. 친구들한테 '힘들어도 해야지, 이건 당연히 해내야지, 야근해서라도 해야지'. '그게 우리 팀을 위해서야, 더 즐거운 일을 위해서야'라고 하는데 정말로 그런 것들이 맞는 건가? 그런 의문들이 있는 상황에서 <대부> 같은 영화를 보면 좀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보게 되요. 미러링도 되고. 극장을 열면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던 관점이 있었는데 그것과는 다르게 최근 제가 처한 상황에서 다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마디로 이 영화를 얘기하면 지금 제 시점에서 너무너무 슬픈 영화다. 


소호: 마이클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이 너무 슬프죠. 실제로 마이클을 연기하는 알파치노가 이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대요. 고독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모춘: 저도 지금 극장을 준비하면서 멤버들이랑 말을 잘 안 섞고 있잖아요. 으하하. 농담입니다.


소호: 대의를 위한 일을 하면서 겪는 모순에 대한 이야기 같아요. 언제 처음 봤어요?


모춘: 처음 봤던 기억은 거의 초등학교 때. 집중해서 본 것도 아니고 끝까지도 못 봤고. 당시에는 MBC에서 하는 <주말의 명화>가 저한테는 큰 이벤트였어요. 주말이 되면 누나랑 같이 광고 보면서 기다리고. 엄마 아빠는 그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으셨는데 <대부>를 하는 날에는 엄마가 의자를 티비 앞에 두고 안경을 쓰고 각을 잡고 기다리시는 거예요. 그때 엄마 뒷모습이 떠오르거든요. 이게 무슨 영화길래 엄마가 이렇게 집중을 할까? 그정도의 인상으로 남았는데. 고등학교 때 다시 보게 됐고 그때의 인상은 멋있다. 나쁜 남자의 카리스마 같은 거. 대학에서 또 다시 봤는데 수업에서 <대부>를 다뤘어요. 대학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건 아카데믹한 거잖아요. 엄마가 좋아하는 오락 영화로만 알았는데 그걸 아카데믹하게 분석한다는 간극이 신기했던 거 같아요. 교수님께서 교차 편집이나 함의된 것들을 분석해주시는데 소름이 돋았죠. 좀 충격적이었던 건 32라는 숫자.


소호: 그게 뭐예요?


모춘: 대부를 찍을 당시 코폴라 감독님의 나이. 서른 두살. 제가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랑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나이였는데 저도 창작자를 꿈꾸고 있었고 코폴라 감독도 창작자잖아요. 나는 32살에 어떤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달까요.


소호: 아니 근데 너무 거장과 비교하면서 조급해하신 거 아니에요?


모춘: 지금 생각하면 되게 웃긴데. 그랬던 거 같아요. <대부>라는 영화를 보면서 감독은 당연히 나이가 지긋한 거장일 거라고 생각했던? 세월의 풍파를 겪은 60대 정도로 생각했다가 나이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거예요. 압도되는 느낌. 감독이 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고 한번 더 충격을 받았죠. 당시만 해도 취향이란 건 타고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새카맣게 적힌 감독의 노트를 보고 천재의 영역이라기보다 노력의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서른 중반까지는 어떻게든 감독님같은 창작자가 되보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서른 여섯인가 됐을 때는 격차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더라고요.



소호: 라디오 섬네일 아트워크 직접 디자인하셨잖아요. 사람들 얼굴이 다 분홍색으로 가려져있어요. 어떤 의미예요? 


모춘: 결혼식 씬이 <대부>의 첫장면인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대부> 명장면으로 마지막 씬을 얘기해요. 살인과 세례를 번갈아 보여주는 교차 편집 장면이요. 근데 저는 그거보다 첫 결혼식 장면이 너무 좋거든요. 결혼식 장면도 사실 교차 편집이죠. 밖에서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열지만 안에서는 청부 살인을 계획하고. 이 씬이 대부 트릴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일단 장면 자체도 너무 아름답고 음악도 좋아요. 계속 귀에 맴돌고. 그 결혼식 장면을 그린 건데 등장 인물들의 얼굴은 없어요. <대부>가 가족에 의한 영화지만 사실 가족 개개인은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거든요. 가족이란 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아버지를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배신한 형을 죽이기도 하고. 가족을 위하지만 정작 가족이 없다라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소호: 조직 역시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그 조직 안에는 는과연 사람이 존재하는가. 그런 생각까지 연결됐던 거죠? 좋은 결과물, 아름다운 결과물을 위해서 개인은 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모춘: 우리가 극장을 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 팀이 번 돈을 의미있게 쓰기 위한 거잖아요.


소호: 우리 팀의 결혼식 같은 거죠.


모춘: 어제 상황만 봐도 우리가 하는 일을 위한답시고 서로 날카롭게 얘기하고 그랬잖아요. 우리 팀 막내랑 얘기하는데 모두가 날이 서있고. 제가 리더니까 아무리 평등하게 얘기한다 해도 강압적일 수 밖에 없잖아요. 흥분할수록 더 누르게 되고. 그렇게 얘기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씁쓸하더라고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제가 몰랐던 힘든 부분도 있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여러모로 상념에 젖었어요. 일을 나답고 재미있게 하려고 이 팀을 만들었는데 나다운 게 뭐지? 또 잘하고 싶어서 멤버를 모으게 되는데 공동체가 되려면 규칙도 필요하고 그걸 지키다보면 딱딱해지고. 자연인으로서의 내 모습과 팀 리더로서의 모습이 계속 부딪혀요. 그런 상황에서 <대부>를 보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지죠.



모춘: 저는 1편보다 2편을 좋아해요. 저한테는 아킬레스건 같은 질문이 이거예요. '모티비 초반 생각나요'라는 말. 그거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 <대부 2> 같아요. 거기서 마이클의 아버지가 어떻게 처음 마피아가 됐는지 나오거든요. 그런데 보면 엄청 귀엽고 사소해요. 우연히 어떤 건달이 총을 맡기면서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사소한 동네 잡일들부터 처리하다가 점점 비즈니스적으로 살인청부를 하게되거든요. 저희 팀이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가면 마찬가지로 엄청 사소해요. 퇴사를 하고 우연히 유튜브를 하게 되고, 팀이 점점 커지고 멤버들도 늘어가고. 어쩌다 극장까지 오게된 것 같거든요. 


소호: 이동진 평론가님이 하시는 영화 리뷰 채널 보니까 그러시더라고요. 1편이 우연히 나온 아름다운 작품이라면 2편은 그걸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아름답게 설명한 작품이라고. 저는 그게 되게 공감됐어요. 저희 작업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모티비 초반의 작업물도 어떻게보면 우연히 나온 것들인데, 극장을 만든다는 게 이것들을 말이 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모춘: 이 영화가 관람자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해석할 여지가 많은 거 같아요. 


소호: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모춘: 저는 진로를 고민하는 팀장들. 제가 팀장이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엄청 도망치고 싶었어요. 실제로 도망쳤고. 팀장이 됐다는 건 한 조직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건데 그때부터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리잖아요. 하기 싫은 일도 많이 해야 하고 마음 같지도 않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대부>를 보며 조금은 객관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여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괴롭죠. 해피엔딩도 아니고. 그냥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할까요. 


소호: 산다는 건 모순이구나..


모춘: 모베러웍스 시작하고 잘됐잖아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그래서 잘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되게 컸어요. 조직도 그럴싸하게, 사무실도 근사하고 일하는 사람도 많고. 팀에는 팀장도 있고 파트도 있고 그런 것들. 성장이라는 포인트에 꽂혀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그 명제에 대해 생각이 많아요. 조직이란 성장해야만 하는 것인가. 어제 얘기로 다시 돌아오는데. 우리 멤버랑 그렇게 목소리 커지고 갈등을 겪으면서 더 나은 방식은 없었을까, 어떤 부분을 더 잘했어야 했나 계속 신경이 쓰이고 생각이 나거든요. 한편으로 부질없는 일 같기도 하고요.


소호: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위로 받은 포인트는 그런 거 같아요.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는 거 같은? 저는 조직의 갈등 상황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외로움이나 고독함. 사실 그런 갈등 상황에서 되게 괴롭거든요, 죄책감도 들고. 리더가 날카롭게 이야기를 해야 할때 잘못한 느낌도 많이 들고 그 지점에서 외롭잖아요. 그럴때 마이클을 보고 있자면 한없이 더 고독하잖아요. 그러면서 인생이란 게 원래 힘들고 고독하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모춘: 영화를 소개하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네.. 


소호: 인생에는 어두운 면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아름다운 결혼식과 그 이면의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한편에 함축한 것 아닌가. 


모춘: 이 영화에서 또 재밌었던 포인트는 코폴라 감독이 <대부 1>을 만들때와 <대부2>를 만들때의 입지 차이. 1을 만들 때는 신인이었어서 제작자들 입김도 세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이 많았대요. 그런데 1이 메가 히트를 하면서 2편을 찍을 때는 완전한 창작의 자유권이 계약 조항에 있었다고. 우리 꿈이 '비주류의 방식으로 주류가 된다'는 건데 그런 지점에서 또 느끼는 바도 많더라고요. 그런 비하인드를 보면.


소호: 그게 1편과 2편을 동시에 틀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모춘: 사실 3편까지 하고 싶었는데. 우선은 2편만 상영해보겠습니다.


소호: 3시간을 이 어둠 속에 흠뻑 빠질 준비가 되신 분들은 무비랜드로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Moderator: Soho, MoChoon

Producer: Jiwoo Kwon

Engineer: Hoontaek Oh


© MOVI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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