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랜드 라디오 EP5
모춘에게 <대취협>이란? '걸작'. 팀원들에게 <대취협>이란? '별점 2점'.. 권피티의 평에 따르자면 '졸리다가도 웃기다가도 언제 끝나나 싶다가도 이렇게 끝난 건가 싶은 영화'. 수급 비용도 가장 비싸 단 하루 90석 한정으로 상영하게된, 오래된 무협 영화. 도대체 왜 이 영화가 모춘에게 중요한 의미인지 이야기 나눠보았다.
모춘: 너무너무 저에게는 푯대같은 영화. 딱 하루, 3회. 간신히 제가 확보했습니다. 어제 테스트 상영했죠.
소호: 테스트 상영했고, 끝나자마자 저희 권피디가 한 얘기는, "3회면 충분하다." 그리고 같이 본 멤버 준식은 졸았다고 하고.
모춘: 저는 <대부> 다음으로 많이 본 영화입니다.
소호: 진짜요? 근데 저는 <대부>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는 좀 이해가 됐거든요. 공감도 되고. 근데 <대취협>은 참 아무리 공감하려고 해도 공감되지가 않아서...
모춘: 이 영화 틀지 말지 얘기를 한지가 1년 반정도 된 거 같은데 처음에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 설득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친구들이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고 여러분들에게도 소개하겠지만 우선 이 영화는 흥행 실패다. 그리고 왠만하면 예매하지 마세요. 그냥 나 혼자 그날은 오프하고 보겠습니다.
소호: 하지만 그래서 틀고 싶은 영화긴 했어요. 우선 이 영화 줄거리부터 간략하게 설명드릴까요? 줄거리 라인은 심플합니다. 여자 주인공, 여검객 금연이 술에 취한 협객 범대비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예요.
모춘: 그냥 무협 영화 보면 나오는 뻔한 스토리. 부모님의 복수를 갚기 위해.. 그런 것들이에요.
소호: 뭔가 이야기가 더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봤는데 정말 그게 전부더라고요.
모춘: 그리고 이야기도 그렇게 깔끔하지 않아요. 초반 후반 얘기도 그렇고 캐릭터들도. 이 얘기 했다가 저 얘기 했다가 애매하게 끝나는 영화예요.
소호: 저는 그래서 재미가 없었는데. 제가 궁금했던 포인트는 그거였어요. 모춘이라는 사람은 왜 이 영화에 끌렸을까?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 영향을 받았을까. 모춘이 항상 얘기하잖아요. 모베러웍스라는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영감을 준 영화가 <대취협>이다. 제가 모춘이랑 일한 세월이 오래되어서 왠만하면 잘 알거든요? 얘기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영화 같은 경우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라디오를 빌미로 하나하나 여쭤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모춘: 일단 주의.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들은 예매를 권유하는 것 절대 아니고 어지간하면 예매하지 마세요. 개똥철학을 이야기할 거고, 맷집 약하신 분들은 그냥 지금 플레이 버튼을 종료시키십시오.
모춘: 옛날 옛적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저는 자뻑의 왕이었어요. 내가 그림 제일 잘그려, 내가 디자인 제일 잘해. 대학교 때 비록 학점은 제가 2.6이었지만 내가 안해서 그런 거다. 하기만 하면 나는 1등이다. 사회에 나왔을 때도 10개월 정도인가 스튜디오 생활을 했는데 그때도. 나는 누구 밑에 안 있어도 돼, 혼자 할 수 있어. 그런 마인드로 한 4-5년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시기에 본 영화가 <대취협>입니다.
소호: 나 이렇게 잘났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던 시절?
모춘: 일을 1년에 한 3개를 했어요. 그러면 그걸로 한 4달을 쪼개서 사는 거야. 얼마나 시간이 많겠어요. 하루 아침 해가 뜨면 고역이에요. 뭘 해야 하지. 그래서 그때 제가 했던 패턴이 아침마당부터 시작해서 인간극장 그런거 쭉 보고.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거 다 봤어요. 정치 성향이나 이런 거 따라서 커뮤니티가 갈리는데 그런 거 상관없이, 이 사람은 이런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런 생각하는구나 하면서요.
소호: 진짜 킬링타임을 하셨네요.
모춘: 그리고 점심 먹고 영화 한편 때리고. 보면 시간도 쭉 가고 몰입도 돼고. 그리고 그때 제가 정신승리 했던 게, 이건 허송세월이 아니다. 영감을 얻는 시간이다. 인간사에 대해서도 배우고 시각적으로 디자이너로서 소양도 갖추고. 그런 훈련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는 취향이라는 거에도 고급과 저급이 있다, 뭐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무협 영화 장르는 싼마이다, 예술성 같은 건 없다며 폄하했었어요. 알량하게. 그런데 무협 영화도 굉장히 오랫동안 사랑받은 장르고 매니아층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폄하하면서도 뭔가 이유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천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을 자극하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그게 되게 궁금했고 도전 정신으로 무협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2010년 즈음인데 그때 영화부터 조금씩 거슬러올라가기 시작한 거죠. 2000년대 영화에서 90년대로, 80년대로. 처음엔 저도 왜 이런 영화를 좋아하지? 라는 생각이었어요. 조악하고.
소호: 그러면 언제 그 관점이 바뀌었는지?
모춘: 볼수록 무협 영화에서 패턴을 비트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작품마다 크루가 있잖아요. 그거를 살짝씩 비트는 거죠. 뻔한 클리셰의 흐름 속에서 이렇게 색을 표현하는구나. 그게 보이기 시작하니까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가 <태양의 서커스>같은 거 보면 서사도 있지만 그냥 '쇼'라는 걸 가정하고 몰입을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무협 영화의 조악한 CG들도 그냥 연극적으로 느껴지는 거죠. 객잔이라는 장소에서 사건이 시작되고 그런 클리셰들이요.
소호: 그런 주어진 제약 안에서 변형되는 것들을 보는 재미라는 거죠?
모춘: 네. 그리고 이 영화에 나왔던 사람이 저기 나오고, 그런 것들도 괜히 반갑고. 무협영화에 그렇게 빠지다가 거슬러 올라가 <대취협>을 봤는데 그것들의 원형같은 거죠. 그래서 이걸 처음 봤을 때 숨이 턱 막히고.
소호: 저희는 졸려서 숨이 턱 막혔는데...
모춘: 백수 생활할 때 했던 고민들하고도 맞닿아 있었는데, 일을 못했어요. 1년에 일을 3개 하는 이유가 있었겠죠. 커뮤니케이션도 못하고. 일할때 클라이언트한테 엄청 끌려다니고. 왜 더 좋은 방향으로 설득하지 못했을까 항상 후회되고. 저를 가로막는 제약사항들이 너무 많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대취협>에서는 그런 불리한 제약사항들을 뛰어넘는 거죠. 이 감독만의 색으로. 그걸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바로 한번 더 보고, 한 2시간 동안 글을 썼어요.
소호: 그 글 되게 궁금하네요.
모춘: 찾아볼게요. 너무 감상적이어서 부끄럽긴한데. 제가 비공개 블로그가 있어요. 일기장같은.
소호: 몇 문장만 읽어줘봐요.
모춘: 그럼 낭송 한번 해보겠습니다.
"걸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걸작. 내가 막연히 꿈꿔왔던 이상적인 모습의 무협 영화를 드디어 만났다. 무려 반세기 전에 제작된 영화에서 이런 감동을 받아 먼저 인생을 살아낸 선배들에게 큰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장면 장면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정리하고 싶어 때때로 영화를 멈추고 싶었는데 이제와 감상평을 남기자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순간의 기억을 놓칠 것 같다 불안하다."
소호: 진짜 찐이네.
모춘: 제가 여기에 얼마나 큰 영감을 얻었으면, 여기에 나오는 악당 중에 '소호'라는 사람이 있어요. 소호에 대한 글도 있어요.
"소호. 웃는 호랑이. 이 아저씨가 진짜 마음에 든다. 날건달패 넘버 3 정도인데 이름처럼 진짜 웃고 있는 호랑이 같다. 이 아저씨는 사람 괴롭힐 때도 웃고 사람 죽일 때도 웃고 자기가 뒤질 때도 웃는다. 마음에 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춘: 마지막 결론도 한번 읽어드릴까요?
"결론. 자영업을 하는 나는 생활을 함에 있어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굉장히 드물어 진로에 대한 것이든 뭐든 상담을 받거나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멘토가 없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생판 처음 가보는 길을 이정표도 지도도 없이 가는 기분. 최근 나의 고민 중 하나는 아시아적 디자인, 한국적 디자인 나의 디자인은 무엇일까였다. 나 스스로 매일 베끼거나 하는 와중에도 좀 더 지역적인 멋을 낼 수는 없을까 하는 본능과 함께 아니 대체 왜 과연 그것은 필요한 일일까 하는 의문도 계속 들어왔었다. 잘은 모르겠으나 그런 고민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인생의 큰 선배를 만난 기분이다. 호금전 만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호: 만세!
모춘: 눈물이 난다. 근데 내가 왜 호금전 감독에 꽂혔냐면 그 감독 스타트가 미술부였어. 그리고 이 분 사진 보잖아요. 눈이 약간 맛탱이가 가있어. 생긴게 조금 음흉하기도 하고 그게 너무 매력적이더라고. 그리고 내가 이 감독의 인상에 대한 평도 했는데.
"호금전 감독의 비릿한 가르마를 보니 영화 초반에 나오는 객잔 결투신에서의 아기자기함과 소소함 같은 것이 이해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 소리 하는 거야?
소호: 비릿하다는 표현이 진짜 대박이다. 근데 인생 멘토를 만난 기분이라는 게 너무 인상적이다.
모춘: 너무 답답했어요. 스스로 나는 잘하는 사람이라는 건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거죠. 누구를 만나서 일을 따야 될지, 어떤 식으로 나의 의견을 전할지. 협업도 안되고, 그런 것들이 나를 미치게 하는 거예요. 기회만 한번 와라 그러고 있었는데 기회가 오면 뭐해요, 그거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근데 그때 되게 핑계를 많이 댔어요. 근데 이 영화에선 그런 핑계가 안통하는 거죠. 누가봐도 제약 그 자체인 세트장인데, 그 안에서 비장하게 연기를 하는 모습이라던가.
소호: 그거 되게 새로운 관점이네요.
모춘: 누가봐도 조악한 장면인데 저한테는 시적으로 느껴졌달까요.
모춘: 무협이 힙합이랑 궤를 같이 하는 것 아세요? 랩도 샘플링 하잖아요. 플로우를 타다가 자기만의 펀치라인을 날리는 게 저는 무협영화 같기도 했어요. <대취협>도 객잔이라는 공간적 제약 안에서 엽전을 꽂는 특수 효과를 하나 보여주잖아요. 그런 게 상황 안에서 자기만의 색을 내는 것 같거든요. 호금전 감독 같은 경우도 별명이 '마스터 오브 젠'이에요. 무협 영화를 많이 안보신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 투박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 감독의 영화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되게 곱거든요. 여성적이라고 하고. 감독만의 색을 내는 것, 힙합 가수들이 자기만의 색을 내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소호: 뻔한 서사 속에서 어떤 극적인 장치들을 하는가, 그게 무협 영화의 재미 포인트군요. 실제로 말씀하신 것처럼 무협 장르가 힙합 장르에 영향을 줬더라고요.
모춘: 우탱클랜, 너무 유명한 힙합 가수죠. 우탱이 무당파라는 뜻이에요. 소림사 무당파. 멤버들 이름도 다 무협 영화에서 따온 등장인물들이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도 무협 요소가 많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게 재미있어요. 흑인 음악이랑 아시아 무협 영화랑 교류가 되고. 위아더월드 같은. 해석되고 다시 재해석되는 거죠.
소호: 그런 것들이 당시 좁은 세계 속에서 내가 짱이라고 믿으며 살던 모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모춘: 남들이 똥이라고 해도 금으로 만들 수가 있구나. 그런 태도를 배웠달까요. 그리고 저때 내가 찾았던 멘토에 대해서도 최근엔 다른 생각이 들어요. 멘토라는 단어가 달콤하지만 이 세상에 멘토는 없다. 어쩌면 멘토를 찾았던 게 상황에 대한 탓이었던 거 같아요. 결국 스스로 해야하는 일이잖아요.
소호: 그래서 이 영화를 어떤 분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모춘: 훈택이. 이 영화가 힌트가 되진 못하겠지만 선배는 이 영화를 통해서 방향성을 얻었다. 너도 너만의 <대취협>을 한번 찾아봐. 그런 마음으로요.
소호: 결국 각자의 연극 무대를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너무 웃겼습니다. "걸작".
모춘: 오늘 에피소드는 유난히 부끄럽네요.
소호: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또 만나요.
Moderator: Soho, MoChoon
Producer: Jiwoo Kwon
Engineer: Hoontaek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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