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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Nov 23. 2018

왜 흑인 클라이머는 없는 걸까?

흑인들은 클라이밍을 못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흑인 클라이머'는 왜 찾아볼 수 없을까? 나는 꽤 오래 이 질문을 머금고 있었다. 이게 '흑인 수영선수'가 없는 이유와 흡사하지 않을까 싶었다. 흔히 흑인들이 수영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 구조를 가졌다고 말하곤 한다. 정확히 '근육의 밀도가 높아' 다른 인종에 비해 부력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담은 기사들이 유력 일간지에 실리곤 했다. 그러니 나도 이게 어딘가에서 연구된 결과겠거니 했다. 이런 게으름은 어떤 인간에 대한 편파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혹시 클라이밍도 흑인들의 근육에 적합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사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활동에 적합하지 않은 인종적 신체 특성 따위는 없다. 이건 완전히 인종차별적인 편견에서 기인한 가짜 정보였다. 흑인 수영선수가 없는 이유는 극명하게도 불평등과 차별의 역사-사회적 구조 때문이었다. 19세기까지 잔존하던 노예 제도를 먼저 살펴보면 이렇다. 노예의 탈출은 백인들에게 재산의 유실이었고, 수영은 탈출, 즉 재산의 유실을 야기하는 활동이었다. 때문에 과거 흑인 노예를 부리던 백인들은 흑인들의 수영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20세기로 넘어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1908년에 벨기에, 영국,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헝가리, 스웨덴이 국제수영연맹을 조직했다. 이들이 만드는 대회에 당연히 흑인은 출전할 수 없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참전국에 국제수영연맹의 규정들이 전파됐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에서 수영이 생활 스포츠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됐던 1950년대나 1960년대에도 수영은 흑인들이 차별을 겪는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흑인에게 수영이 생활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스마트폰이 개발된 이후였을지도 모른다. 미국 수영연맹의 통계에 따르면 부모가 수영을 못 할 경우 자녀가 수영을 배울 확률이 13%에 불과하다. 2010년에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미국 흑인 학생들의 약 70%가 수영을 못한다고 한다. 한국에 처음 스마트폰이 들어온 것은 2008년이었다.


1964년, 백인만 이용 가능한 모텔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며 시위 중인 흑인들을 향해 수영장 물에 염산을 부은 모텔 매니저 James Brock. 


흑인들은 굳이 수영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 구단이 있는 종목, 그러니까 미식축구나 농구, 야구, 축구를 하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영장이라는 인프라가 반드시 받쳐줘야 하는 수영을 할 바에는 육상을 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결국 경제적 이유로도 수영은 흑인들에게 친화적인 활동이 아닌 거다. 이런 실체를 가리기 위해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만들낸 거다. 흑인의 몸이 원래 수영에 불리하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흑인 클라이머가 드문 이유가 흑인 수영선수가 드문 이유와 흡사하다는 것을 안다. 다만 전과는 다른 차원의 이유라는 것을 재인식했다. 알피니즘이라고 하는 등산의 역사도 17세기 유럽의 백인 사회에서 비롯됐다. 이후 등산은 부유한 백인 지식계층의 여가활동으로 인식되며 유행했다. 이런 맥락의 틈새에서 클라이밍이 튀어나왔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세계적인 클래스에서 호명되는 선수들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이런 선수들은 빠르게는 10대 이전에 처음 시작해 이미 10대 후반에 엄청난 기량을 선보였고 20대와 30대를 거치며 기록을 세웠다. 부모가 클라이머가 아닌 경우 클라이밍 선수가 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일 것이다. 게다가 이제야 막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 클라이밍인데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불평등과 차별을 격는 흑인들에게 클라이머를 직업으로 선택할 이유가 없다.


클라이밍을 포함하는 등산이라는 활동은 '백인 남성'으로부터 시작되어 여전히 백인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스포츠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클라이밍 크루 BOC(Brothers of Climbing)의 창립자들은 "흑인의 스포츠라 하면 육상과 농구를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우사인 볼트나 르브론 제임스가 흑인 청소년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흑인들도 등산을 하고 클라이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흑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등반 교육을 한다. 라티노, 아시아인, 여성, 성소수자 등 누구든 클라이밍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흑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BOC는 평등과 문화 차원으로써의 클라이밍을 사회에 전파하고 있다. 사진 출처 : BOC


나는 더 다양한 사람들이 클라이밍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에서 클라이밍은 여전히 아저씨들의 취미다. 물론 여성 산악인들도 있고 김자인이나 사솔 처럼 여성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만 여실히 이 세계의 기저에는 '남성'이 있다. 락앤롤 프로젝트 라는 채널 혹은 플랫폼이 종국에는 BOC와 비슷한 사회적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 많은 청년이, 많은 여성이, 많은 LGBT가, 많은 장애인이, 많은 외국인이 여기 한국에서 클라이밍을 하길 바란다. 자일 하나를 매개로 삼아 나와 타인이 신뢰를 바탕으로 암벽을 오르는 멋진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제보다 꽤 괜찮은 오늘을 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족.

나는 아킬레스건이 보통 사람들보다 짧다. 그래서 제대로 쪼그려 앉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 동작을 아예 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난 나름의 방식으로 쪼그려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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