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 제작진의 깊은 반성과 방송 폐지를 바라며.
페츨 PETZL. 프랑스의 기계공이자 동굴 탐험가였던 페르낭 페츨이 동료 탐험가 피에르 슈발리에와 함께 1975년에 설립한 클라이밍 및 구조 장비 브랜드다. 페츨에서 만든 여러 장비는 <인간 모험의 지평>을 넓혔다. 이들이 쏟아낸 안전장치나 로프 등 많은 장비들은 전세계 클라이머는 물론 산업 현장에서도 사랑받는다. 현재는 직원 700여 명을 거느린 프랑스의 대형 기업이며, 1991년엔 자회사 페츨 아메리카를 설립했다. 앞서 언급했듯 로프나 카라비너 등은 물론 암벽이나 동굴, 빙벽 등에 박는 볼트나 앵커도 생산한다. 2006년엔 페츨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암벽 등반이나 동굴 탐험, 고산 등반과 같은 활동의 사회-환경적 책임을 고취하고 환경 훼손을 최소화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캠페인과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유튜브가 추천해주는 영상 파도를 타고 말 그대로 서핑을 하다가 페츨에서 만든 영상을 하나 보게됐다. 페츨은 클라이머들을 후원해 세계 곳곳의 암벽을 누비는 짧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곤 한다. 물론 자사 장비 홍보가 주 목적이겠지만 초점은 클라이밍과 클라이머에게 맞춰져 꽤 볼만하다. 이 영상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화감독이자 클라이머인 션 빌라누에바, 탐험가 시에베 반히를 마다가스카르에 보냈다. 둘은 벨기에 국적의 백인이다. 11분이 채 안 되는 이 영상은 마다가스카르의 거벽 짜란누루를 등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800미터나 되는 아프리카의 거대한 암벽은 영상으로 봐도 장관이었다. 그러다 영상의 중간 즈음, 전동 드릴 소리가 암벽에 울려퍼졌다. 이 둘은 단순 등반이 아니라 개척 등반을 하고 있었던 거다. 암벽에 드릴을 들고 올라가며 볼트와 앵커를 박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에 있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렇듯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 마다가스카르를 지배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마다가스카르의 역사는 제국 식민주의의 역사와 나란한 굴곡을 그려낸다. 9세기 오만제국의 세력 확장으로 아랍인들이 대거 들어가 노예무역을 시작했다. 14세기경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유럽에 섬의 존재가 알려졌고, 18세기 말 즈음 프랑스가 첫 식민지 개척을 시도했으나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의 단단한 저항 탓에 실패했다. 19세기 초엔 영국이 마다가스카르 동해안의 도시 토아마시나를 점령했다. 그 사이 마다가스카르의 왕조는 쇠퇴했고 이런 혼란기를 틈타 프랑스가 두 차례의 프랑스-마다가스카르 전쟁을 일으켜 마다가스카르를 통치하던 메리나 왕국의 내정 간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차 프랑스-마다가스카르 전쟁에서 패한 마다가스카르는 완전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그렇게 다시 또 100년 넘는 시간이 흘러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 마다가스카르 전역에서 독립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섬 전역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프랑스는 무려 9만 명의 사망자를 만들어내며 진압했다. 그럼에도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독립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결국 1960년 <아프리카의 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이후 마다가스카르는 공산주의 노선을 택했다. 20세기 후반, 냉전의 종식은 곧 공산국가의 몰락을 가져왔고, 마다가스카르 역시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1990년 즈음부터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공격적인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대거 시도했다. 그러다 1997년에 한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모든것이 물거품이 됐다. 마다가스카르에 진출했던 해외 기업들이 모두 철수했기 때문이다. 이때 마다가스카르는 국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다가스카르 인구의 3.5%가 세계식량기구의 구호로 생활하고 있으며, 인구 중 7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3세 이하 아동의 50%가 영양결핍에 의한 성장 장애를 겪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와 한국의 악연은 10년 뒤인 2008년에 다시 한 번 지속됐다. 대우 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 정부와 맺은 계약으로부터 논란이 촉발됐다. 대우 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의 농지 130만 헥타르를 99년간 무료로 사용하게 됐다는 것이 계약의 골자였다. 130만 헥타르는 벨기에 면적의 절반, 경상남도보다 약 1.3배 큰 규모다. 대우 로지스틱스는 이곳에서 옥수수 등의 작물을 생산해 한국에 공급하고, 마다가스카르는 자국민 고용율을 높여 경제활동 인구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맺은 계약이었다. 뿐만아니라 이런 초대형 농경 사업을 하는 대우 측이 해당 토지에 도로, 전기, 수도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이 마다가스카르 측에게 굉장한 이득이라는 논리 구조였다. 21세기형 제국주의-식민주의 모델이 고스란히 적용돼 있었다. 논란이 일자 대우 측은 도무지 개간할 수 없는 열대우림이었다고 선동했으나 실제로는 경사도 3% 이내의 완벽한 평지 초원이었다. 이를 영국 언론이 <한국의 식민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거세지자 대우 로지스틱스가 결국 손을 떼면서 일단락 됐다.
정글의 법칙. SBS의 이 예능 프로그램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태국에서 멸종 위기종인 대왕조개를 잡아 먹는 장면이 방송됐고, 이를 본 태국인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해 며칠 뒤 곧장 태국 정부 차원에서 문제삼았다. 현재 태국 정부 측은 대왕조개를 잡아 먹은 출연자를 형사 고발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논란이 일었을 최초의 순간에 <불법 행위를 하거나 불법적 요소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태국 정부 측의 대응이 시작되자 <현지 코디네이터와의 소통 착오였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오늘 태국 정부는 제작진이 <촬영 중 사냥하지 않겠다>는 조항에 동의한 계약서 원본을 공개했다.
<정글의 법칙>은 <생존>, <부족>, <족장>과 같은 표현을 쓰며 연예인들이 세계 오지를 누비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열매를 따거나 낙시 등 수렵활동을 통해 끼니를 해결하는 <원시 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평소 보지 못했던 연예인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인기를 얻어냈다. 정글은 물론 초원, 툰드라, 무인도를 가리지 않는다. 제작진과 연예인들은 2012년 7월에 마다가스카르에도 갔다. 당시 아웃도어브랜드 노스페이스가 메인 협찬사로 나서 제작을 지원했다. 제작 기간과 겹쳐서 마다가스카르에선 군사 봉기가 일어나 총격전이 벌어졌다. 2012년 6월에 치러졌어야 하는 대선이 차일피일 미뤄진 것과 관련이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7월 22일 새벽에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의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일부 군인들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이를 정부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총격전이었다. <정글의 법칙> 제작진과 연예인들은 7월 19일에 마다가스카르에 입국해 있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난항을 겪으며 회생을 위해 진통을 견뎌내며 마다가스카르는 지난 2001년부터 <마다가스카르 혁명>을 치르던 중이었다. 안에선 혁명을 치르는데 아웃도어 브랜드를 입은 해외의 연예인들이 몰려와 <오지 부족 코스프레>를 하며<오지 체험>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존>, <부족>, <족장>과 같은 수식어를 보탰다.
프랑스의 페츨사로부터 지원을 받은 백인 탐험가 둘이 아프리카의 암벽에 드릴로 구멍을 뚫으며 <클라이밍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자연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사회적 소요 혹은 내전 등으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세계의 도시인들이 그들 문명의 첨병인 방송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에 들어가 부족 코스프레를 하는 것에 <생존>이라는 말을 장난처럼 붙여 쓰는 것도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개척>과 다를 게 없다. 1세계 국가의 아웃도어 브랜드가 넓힌 <인간 모험의 지평>은 다분히 우리를 위해서만 넓혀졌고,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연예인의 털털함은 온전히 우리에게만 즐겁다. 이런 끔찍한 태도가 창피하지 않다면, 21세기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연예인들이 <재미>로 제3세계의 야생동물을 사냥해 먹는 걸 관람하며 털털하다는 찬사를 내보내는 그 사이에 아무도 이 프로그램의 본질적 문제를 비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문명과 문명이 확보한 경험과 지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다.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www.behance.net/gallery/44239359/Tattoo-illustrations?tracking_source=search%257Ctatt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