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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agirl Jul 01. 2020

만인을 위한 마스크

요네하라 마리(1950~2006),  발명 마니아



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무척이나 늘어났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꽃가루 알레르기의 계절이 도래하는 시기가 꽤나 이른 것 같다.


하기야 머잖아 '꽃가루 알레르기의 계절' 같은 말은 '겨울'과 함께 사어死語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따뜻해지다가는 1년 중 절반은 여름, 나머지 절반은 봄이 될 테니까. 항상 꽃이 만발해 있다 보면 '콧물 줄줄, 눈물 주룩주룩'도 일시적인 증상이 아닌 그 사람의 속성이나 개성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그럼 마스크도 안경처럼 신체의 일부가 될 게 뻔하다. 이제부터 일회용 마스크도 수요가 점점 늘어나겠지만, 내구성이 좋아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마스크가 필요할 것이다. 분명 의류 회사들은 이미 개발에 착수했을 것이다. 옷을 사면 같은 천으로 된 마스크가 세트로 따라오게 한다든지 말이다. 반대로 화장품 회사의 경우 립스틱의 판매가 뚝 떨어지고 눈 화장 제품의 매상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마스크를 늘 착용하면 본인도 귀찮겠지만, 얼굴 아랫부분이 보이지 않으니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 주위 사람들에게도 어쩐지 기분 나쁜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 집단이 되면 기분 나쁜 것을 넘어 무서울지도 모른다. 얼굴은 그 사람이 세상으로 낸 창문과 같다. 대낮부터 덧문을 닫고 있는 집이 한 채면 몰라도 그런 집들이 즐비하면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과 매한가지다. "눈은 입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라는 속담에서 입은 말을 뜻하지만, 살짝 미소 짓거나 가볍게 입 끝을 내리고 불만을 표현하는 등 실은 입 자체도 말 없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고는 사랑 표현의 대표격인 입맞춤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고로 이번에 내놓을 아이디어는 투명한 마스크다. 투명한 마스크를 사이에 두면 입맞춤도 가능하다. 옛날 영화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꽃가루는 코와 입뿐 아니라 눈도 공격하는 모양이니, 투명 섬유로 된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덮어버리면 이보다 더 마음이 든든할 순 없다. 아니, 어차피 하는 것, 이왕이면 얼굴이 원래보다 예쁘게 보이게 하면 꽃가루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판로가 확대될 것이다. 성형보다 저렴하고 안전해 폭발적으로 유행할지도 모른다. 미모가 뛰어난 연예인은 초상권으로 돈벌이가 더 늘어날 것이다





여성용 나일론 스타킹처럼 투명한 섬유 제품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왜 그걸 지금까지 마스크에 응용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실제로 마스크를 써보고 알게 되었다. 마스크를 하고 있으며 따뜻한 날숨 속 수분이 마스크 안의 좁은 공간에 쌓여 축축하게 젖는다. 마스크가 투명하면 그 볼품 없는 모양새가 노골적으로 드러날 우려가 있다. 마스크가 불투명한 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투명 섬유로 된 마스크 버전은 어이없이 탈락.


얼굴을 숨기지 않고 꽃가루로부터 호흡기와 눈을 지키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자니, 공기의 막을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등에 매는 배낭형 장치로 눈, 코, 입 주위에 음이온이 든 공기를 계속 내보냄으로써 꽃가루가 눈과 코, 입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공기 마스크.


이거라면 식사할 때마다 마스크를 벗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음식이 입에 들어가기 전에 공기 흐름 때문에 날아가버릴 우려가 있으니, 흐름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식사 중에는 과감하게 스위치를 끌 수도 있겠다. 바람이 계속 불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과 입맞춤을 할 때에도 역시 스위치를 끌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본인과 공기 마스크를 쓰고 있을 경우 입맞춤은 어떤 모양이 될지 기대된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하루 종일 공기 배낭을 등에 지고 있자니 귀찮고 무겁고 어깨가 결린다는 여성을 위해서 브래지어형 장치도 마련한다. 비밀 패드를 넣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슴 확대 효과를 낳지 않을까. 남성용으로는 가슴과 어깨 패드형 공기 장치를 만들면 어깨 폭이 넓고 가슴팍이 두꺼운 남자다운 체형이 가능하다. 요컨대 전보다 훨씬 섹스어필할 수 있는 셈인데, 이를 위해서라면 사람은 다소 귀찮고 무거운 것도 감수하는 법이다.


하지만 가장 간단하고 저렴하게 보급할 만한 것은 콧구멍용 필터지 싶다. 콧구멍에 거름망으로 만든 마개를 끼워, 공기는 통과시키고 꽃가루는 거르는 것이다. 마개 중심부는 필터지만, 가장자리는 콧구멍 내부의 피부에 흡착되는 소재를 쓴다. 콧구멍 크기나 형태는 천차만별이니까 맞춤형 주문으로 하자. 그리고 빠지지 않으면 곤란하니 콧구멍에 끈을 늘어뜨리게 되겠지만, 디자인만 잘하면 액세서리로 유행할지도 모른다. 물론 착용자는 공기를 철저히 코로만 들이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건 몸에도 좋아 일석이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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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발명 마니아: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심정명 역, 마음산책, 2010) 중 '만인을 위한 마스크'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60900776&orderClick=LAG&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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